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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경제민주화 실현할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

4·13 총선 공천 문제로 요 며칠 여야 두 곳 모두 큰 파동을 겪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야기된 사태가 그것이다. 계파갈등인 새누리당의 옥새투쟁도 흥미로웠지만, 더민주당 구원투수 김종인의 거침없는 행보가 정치적으로 이보다 훨씬 더 유의미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김 대표가 "사람을 그 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 가서 일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당무를 거부했을 때, 처음 느낌은 "올 것이 왔다"였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개그 유행어가 떠올랐다.

총선이 코앞인데 왜 이러나. 이번 총선이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볼 때 이건 안철수 분당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이래가지곤 정권교체란 대의는 언감생심 아닌가.

김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이 노욕의 발로이고, 문제적 인사들에 대한 공천은 더민주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그 따위 대접' 운운 발언은 주인 아닌 객(客)의 몽니로 비쳤다.

다행히 김 대표가 당무에 복귀해 공천파동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절제되지 않은 발언들이나 권위주의적 행태는 그가 발휘했던 강력한 리더십을 상당 부분 훼손했다.

김 대표는 1월 더민주에 영입된 뒤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종료케 했고 정청래·이해찬 의원을 컷오프시켰다. 그가 큰 탈 없이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사심 없음'의 이미지가 큰 자산이었다. 그런데 셀프 공천은 총선 뒤로도 계속 역할을 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가 대권 도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문제가 드러났지만, 사람은 부분적 흠결보다는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 만들어넣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후보자 공천장 수여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76세인 김 대표가 평생을 경제민주화라는 화두에 매달려왔다는 사실이다. 그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핵심적 요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그의 전력이라는 말이다. 1987년 개헌 당시 민정당 의원으로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을 만들어 넣었다. 이른바 '김종인 조항'이다. 독일 유학 시절 국가의 조정기능을 중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연구에 심취한 영향이 컸다.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과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겸하면서 경제민주화를 핵심공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이 공약은 폐기되고 만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것이 집권 첫해인 2013년 11월이었다.

그는 그해 말 새누리당을 떠난다. 한껏 이용당하고 '팽(烹)' 당한 셈이다. 그는 "경제민주화 약속의 책임을 못 지게 돼 국민들께 미안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직업정치인보다는 이데올로그에 가깝다고 본다. 김 대표가 더민주로 온 것도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성싶다. 얼핏 연상되는 게 정치적 이상 실현을 위해 주유천하를 한 공자의 행보다.

김 대표는 연초 더민주 을지로위원회 행사에서 경제민주화를 "경제적인 강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의 총선 전략도 이 언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번 총선을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패를 심판하는 경제선거"로 규정했다. "불평등 해소와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시급한 문제를 이 정부는 철저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잘사는 경제' 외면한 한국사회

한국의 거의 모든 정치·경제·사회적 지표들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엊그제도 1인당 국민소득(GNI) 6년 만에 처음 감소, 성장률 2.6%도 3년 만에 최저라는 발표가 있었다. 한국의 현실은 한마디로 역동성을 잃어버린 헬조선이다.

월드컵 때의 '다이내믹 코리아' 함성은 이미 까마득한 옛일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지난 3년 평가는 자화자찬 일색이다. 청와대는 올 초 박 대통령의 경제성과 중 하나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의 실천"을 꼽았다. 헛웃음만 나온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 전반의 흐름이 경제민주화로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그 경제민주화는 정권교체를 하지 않고는 요원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 분석이다.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종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김철웅 언론인,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2016-03-28 11:5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