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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매달리는 이별, 쿨한 이별

 인생이란 걸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 이건 어떨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안 그런가. 평생을 함께 하는 반려자(伴侶者)와의 만남을 포함해서 산다는 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쉽게 입에 올리는 만남과 이별은 꽤나 묵직한 철학적·종교적 주제인 것이다. 당연히 만남과 이별은 수많은 노래의 소재가 된다. 노래에선 그것이 어떻게 그려지는가.


 노사연은 <만남>(1989·박신 작사, 최대석 작곡)에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노래한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상대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 한다. ‘너는 내 운명’이란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일 게다. 그러나 이 노래에선 그 운명적 만남이 헤어짐으로 끝나는가 보다. 후렴에서 후회, 눈물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이 암시만으로도 우리는 해피엔딩이 아님을 안다. 수많은 사랑 노래의 귀결이 이별인 것에 익숙해 있으므로.


 

                                                                          노사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하략)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1994·강승원 작사 작곡)에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노래했다. 만남과 헤어짐 가운데 헤어짐에 방점을 둔 건 떠나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확 와닿는 가사다. 2007년 대중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 1990년 이후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하략)
                           <서른 즈음에> 가사


 이 노래 속의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그치지 않는다. 더 포괄적이다. 떠나보내는 것 가운데 제일 큰 건 청춘이다. 그 속에 사랑도 무엇도 다 들어있다. 문득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란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박건이 부른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1971·신명순 작사, 김희갑 작곡)이다.


 


 

                                박건의 앨범 재킷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하략)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1절 가사


 태진아는 <동반자>(2004·조성현 작사, 태진아 작곡)를 불렀다. 가수인 아들 이루(조성현)가 작사하고 태진아가 작곡한 부자 공동 작품이었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잘 살고 못 사는 건 타고 난 팔자지만
 당신만을 사랑해요 영원한 동반자여…(하략)
                     <동반자> 가사


 사랑했기에 운명, 동반자라고 믿었던 사람도 사랑이 식으면 하루아침에 원망의 대상이 된다. 도성이 부른 <배신자>(1971·이인섭 작사, 김광빈 작곡)가 그런 노래다. 가사에 나오는 더벅머리는 ‘더부룩하게 난 머리털’이다. 왜 하필 더벅머리 사나이라고 썼는지 못내 궁금하다.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짓밟아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하략)
                                                     <배신자> 가사


 시 속에서 이별은 어떻게 그려져 있나.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의 화자는 이른바 애이불비(哀而不悲-아파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라고 해서, 소리 내지 않고 숨죽여 흐느낀다. 이걸 이별의 정한(情恨)을 극적으로 내면화했다고 한다. 이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가 마야의 <진달래꽃>(2003·우지민 작곡)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것이 이별을 맞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였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1926)은 이별의 정한을 달리 표현한다. 화자는 여성적이며 체념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이별을 부정 또는 극복하는 것이다. 시 속의 ‘님’이 단지 남녀간 사랑의 대상을 넘어선 조국, 절대적 존재로 해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 시에는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이 들어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가 그것으로, 출전은 열반경의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라고 한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깨닫기는 어려운 말이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회자정리도 그렇지만,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의 거자필반은 함부로 쓰기 어렵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에서 보듯 시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연애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만해가 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런 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보다 한층 심원한 종교적 신념이 바닥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해는 시인, 선승, 독립운동가로서 치열하게 살며 3년간 감옥살이도 했다. 그러나 해방 한 해 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속의 가요에 연애감정을 이렇게 차원 높은 신앙의 경지로 승화시키라고 주문하는 건 무리다. 노래는 그렇게 고상할 필요가 없는 대중예술이며 때로는 유치함이 강점이 되기도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별 노래도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특히 사랑이 끝난 뒤 미련(未練)에 대한 접근 태도에서 그렇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1938·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엔 신파적 태도와 미련이 뒤섞여있다. 옛사랑을 깨끗이 잊지 못하고 자꾸 끌리는 건 미련 탓이다. 그러면서도 이별과 패배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신파적 태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모도 다 흘러가면 덧없건 만은
 외로이 느끼면서 우는 이 밤을/ 바람도 문풍지에 애달프고나
                           <애수의 소야곡> 1·3절 가사


 최헌은 <가을비 우산 속>(1979·이두형 작사, 백태기 작곡)에서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라고 노래했다. 눈물로 달래는 건 아니지만 미련 때문에 우산을 쓰고 헤맨다. 옛날 이별 노래들의 정서는 대부분 이런 선에 머문다. 나훈아가 부른 <님 그리워>(1969·손진석 작사, 심형섭 작곡)는 떠난 님을 ‘울며 불며’ 찾는다.


 물어 물어 찾아왔오 그 님이 계시던 곳/ 찬가운 밤바람만 몰아치는데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저 달 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 불며 찾아봐도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님 그리워> 1절 가사


 여진은 <그리움만 쌓이네>(1979·여진 작사 작곡)에서 변심한 사람에게 이런 노래를 보낸다. 이별이 그리 쉽냐고. 그리움만 쌓인다고, 보고 싶다고.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대 지금 그 누구를 사랑하는가/ 굳은 약속 변해 버렸나
 예전에는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이젠 맘이 변해 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아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아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하략)
                    <그리움만 쌓이네> 가사


 최호섭은 <세월이 가면>(1988·최명섭 작사, 최귀섭 작곡)에서 이별 순간의 허탈한 심정을 노래한다. 두 사람은 서로 원하면서도 헤어져야 한다. 화자는 “그리운 마음은 잊더라도, 사랑했던 것만은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이건 둘 다 같은 말 아닌가. 미련이란 관점에서 보면 미련을 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중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다.

 

 

최호섭이 부른 <세월이 가면>

 


                                                최호섭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
 힘없이 뒤돌아서는 그대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만 보네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은/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하략)
                                <세월이 가면> 가사


 이 노래는 변진섭이 부른 <홀로 된다는 것>(1988·지예 작사, 하광훈 작곡)을 연상하게 한다. 후렴구의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란 대목이 그렇다. “이별하는 건 괜찮지만, 혼자가 되는 건 싫다.” 무슨 뜻일까. 이걸 이기심의 발로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좀 얕은 이해 아닌가 한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기 싫은 심정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라고 본다. 즉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아주 덤덤한 얼굴로 나는 뒤돌아 섰지만/ 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아직 못다한 말들이 내게 남겨져 있지만/ 아픈 마음에 목이 메어와 아무 말 못했네
 지난 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하략)
                                 <홀로 된다는 것> 가사


 윤수일은 <사랑만은 않겠어요>(1978·안치행 작사 작곡)라고 노래한다. 이것도 미련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렇게 다짐할까. 통음한 이튿날 후회하며 술 끊겠다고 다짐하듯이? 그게 될까.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하략)


 지난 칼럼에서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1992)이 남자들의 찌질함을 대변하는 노래라고 쓴 바 있다. 애인의 결혼식장까지 찾아가 우는 것은 참 뭐랄까, ‘찌질함의 종결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이별 노래의 흐름에 2000년 들어 변화 조짐이 보인다. 이별 노래는 곧 질질 짜는 노래란 천편일률적 등식의 변화다. 임현정은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2003·임현정 작사 작곡)에서 상대의 이별 통보를 자못 꿋꿋이 견뎌내는 ‘나’를 노래한다.


 묻지 않을게 니가 떠나는 이유/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야윈 너의 맘 어디에도/ 내사랑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
 이해해 볼게 혼자 남겨진 이유/ 이젠 나의 눈물 닦아줄 너는 없기에
 지금 나의 곁에 있는 건/ 그림자뿐임을 난 알기에
 …(중략)
 기도해볼게 니가 잊혀지기를/ 슬픈 사랑이 다신 내게 오지 않기를
 세월 가는 대로 그대로/ 무뎌진 가슴만 남아있기를…(하략)


 이 노래도 “왜 머물 순 없는지 떠나야 하는지”라고 야속해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하며 애걸하는 식은 아니다. 그보다는 닥쳐온 이별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모습이다. 임현정의 다른 노래 <첫사랑>(2000)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첫사랑을 추억한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와 행복하기를”이라고 ‘지나버린 사랑 그대’에게 말한다. 화자에게 첫사랑은 이로써 “오래 전 영화 속에 소설 속에 주인공 이름처럼 이제 아련한” 사람이 되었다. 내게 <첫사랑>이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이례적인 딕션(발음, 어법)이다. 노래 시작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와…”인데 딕션은 “햇살처럼 눈부/ 시게다가와…”이다. 통상적인 딕션을 깨뜨린 이 대목이 아주 신선한 느낌을 준다.

 

 

임현정의 <첫사랑>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2002·한경혜 작사, 윤건 작곡)을 들어보자. 이별한 뒤로 슬픔에 익숙해지고 편해져가는 자신을 고백한다. 이제 두렵고 불편한 건 “점점 너의 얼굴도 생각이 안나고 내 슬픔도 멀어져 가는 것”이란 사실임을 고백한다. 자기에게 솔직한 가사다.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          

 

           브라운 아이즈의 나얼(왼쪽)과 윤건 
                  

 점점 넌 멀어지나 봐 웃고 있는 날 봐/ 때론 며칠씩 편하게 지내
 점점 널 잊는 것 같아 먼 일처럼/ 점점 넌 떠나가나 봐
 하루는 미치고 다음 날이면 괜찮아졌어/ 다만 슬픔에 익숙해질 뿐인걸 점점
 어쩌다 또 생각나 너를 그릴 때가 오면/ 숨막히게 지쳐 애써 참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널 버려 내 아픔도 점점/ 점점 넌 멀어지나 봐
 그게 편해지나 봐 너의 얼굴도 생각이 안나/ 점점 너를 버릴 것 같아 …(하략)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2001·한경혜 작사, 윤건 작곡)도 이별 뒤에 부르는 노래다. 하지만 <점점>과는 반대로 여전히 너를 그리워한다.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 년이
 너와 만든 기념일마다 슬픔은 나를 찾아와
 처음 사랑 고백하며 설렌 수줍음과/ 우리 처음 만난 날 지나가고
 너의 생일에 눈물의 케익 촛불 켜고서 축하해
 I believe in you I believe in your mind/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일 년 뒤에도 그 일 년 뒤에도 널 기다려/ 너무 보고 싶어 돌아와 줘 말 못 했어
 …(하략)


 이때까지는 젊은 세대의 이별 노래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이른바 ‘쿨’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2010년에 들어와선 그 틀도 깨지는 것 같다. 쿨하려 애쓰는 단계를 넘어선다. 레이디제인의 <이별 뭐 별거야>(2010·이경민 등 작사, 이관 작곡)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별 뭐 별거야 다시 시작하면 되지/ 신경 꺼 시원 섭섭해도 goodbye
 잊을래 그래 별거 아냐 너의 모든 기억 버릴거야
 미안하다는 니 말에 딱 알았어 구차하게 붙잡으면 뭐해
 맘이 떠났다는 이유가 I don’t know 진심인지 모르겠어
 …(중략)
 너 땜에 못한 짧은 머리도 하고 밀린 로맨스 영화도 보고
 나름 이것도 나쁘지 않아 (I don’t know) 니가 자꾸 떠오른다
 딱 한번 실컷 추억하고 잊을래 지긋해 백 번 잘 한 일이라고
 
너 없으면 못 살겠다고 했던 말 오늘부터 취소


 씨스타는 <So Cool>(2011·용감한 형제 작사 작곡)에서 ‘웃기고 앉아있네’라고 코웃음친다. 날 버린 네가 불행해지기를 빌기까지 한다. 노래에서 보이는 이별에 대한 이런 태도 변화는 놀랍고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변화엔 필시 자유연애나 성적 개방 등 사회적 요인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랑의 아픔의 근원을 사회학적 맥락에서 분석한 에바 일루즈의 책 ‘사랑은 왜 아픈가’ 등을 참고해 추후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략) 웃기고 앉아있네 무슨 사랑이 장난이니/ 왜 자꾸만 맘대로 하는데
 네가 뭐 그리 잘났는데 내 맘 아프게 하니/ 헛소린 집어치울래
 난 빌고 빌었어 네가 네가 불행하라고/ 속상해서 그땐 그땐 그땐 정말 그랬어
 난 빌고 빌었어 네가 네가 망가지라고/ (It’s Party Time Party Time)
 돌아보니 웃음만 나와 …(하략)

    

 에일리가 부른 <보여줄게>(2012·강은경 작사, 김도훈 이현승 작곡)는 실연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원망보다는 냉정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쿨함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에일리

                                                     

 내가 사준 옷을 걸치고 내가 사준 향술 뿌리고/ 지금쯤 넌 그녈 만나 또 웃고 있겠지
 그렇게 좋았던 거니 날 버리고 떠날 만큼/ 얼마나 더 어떻게 더 잘 해야 한 거니
 너를 아무리 지울래도 함께 한 날이 얼마인데/ 지난 시간이 억울해서 자꾸 눈물이 흐르지만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바보처럼 사랑 때문에 떠난 너 때문에 울지 않을래
 더 멋진 남잘 만나 꼭 보여줄게 너보다 행복한 나
 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 무너지지않아 boy you gotta be aware
 산뜻하게 머릴 바꾸고 정성 들여 화장도 하고/ 하이힐에 짧은 치마 모두 날 돌아봐
 우연히라도 널 만나면 눈이 부시게 웃어주며/ 놀란 니 모습 뒤로 한 채 또각 또각 걸어가려 해
 …(중략)
 니가 줬던 반질 버리고 니가 썼던 편질 지우고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잊어 줄 거야 너를 잊을래 너를 지울래…(하략)
                             <보여줄게> 가사


 이별 노래의 변천사를 간략히 살펴봤다. 옛날 노래들은 이별의 슬픔을 여과없이-<동백아가씨>처럼 숨죽이며 슬픔을 삼키는 것도 있지만, 그것도 크게 보면 같은 범주다-토로하는데 반해, 젊은 세대 노래는 이별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의연해지려는 태도가 강하다. 그건 젊은이들의 사랑이 덜 뜨거워져서일까. 아닐 것이다. 인터넷에서 ‘쿨한 이별 노래’를 쳐보니 수많은 노래를 소개하고 평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헤어지고 슬픈 노래만 들으며 울다가 처량해 보여서 쿨한 노래들을 찾아 들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글도 눈에 띈다. 세대, 또는 시대가 다르다고 사랑의 기쁨, 그리고 이별의 아픔도 달라질까.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