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래가 위로다

대중가요+클래식=잡종 음악?

 1981년 민해경은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를 발표한다. 이 곡은 원래 박건호가 가사를 쓸 땐 정미조에게 주려고 ‘사랑에 빠진 여인’이란 제목으로 만들었지만 정미조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부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민해경 나이에 맞게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로 제목이 고쳐졌다고 한다(민해경은 당시 19살이었다). 곡이 서서히 인기를 얻어갈 쯤, 표절 논란이 일어난다.【주1】여기에 대해서는 당시 동아일보에 비교적 상세한 기사가 나와 있다.

 민해경의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 2009,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민해경이 불러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에 표절 시비가 붙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와 ‘미소를 띠어봐도 마음은 슬퍼져요’ ‘이 마음 다 바쳐서 좋아한 사랑인데’ 등 세 곳. 관계자들은 이 부분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흡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이범희씨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중 2악장에서 2소절을 인용했다. 그렇지만 고의적인 인용은 아니며 표절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4분의 4박자의 경우 주제동기의 첫 2마디가 같으면 ‘표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노래는 교향곡 5번 2악장의 2소절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전체 주제동기에서 4소절을 인용했다고 클래식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주2】
 
 기사에 따르면 작곡자는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 2악장에서 2소절을 ‘인용’했음을 인정했다. 음악에서 인용은 흔히 있는 일이다. 원래 인용이란 클래식 음악에서 남의 작품이나 자신의 과거 작품에서 특정 선율, 모티브를 끌어다 쓰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다른 음악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멜로디가 나타난다면 그건 십중팔구 인용의 결과다.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의 경우 작곡자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일부를 인용했음을 인정했으므로 더이상 표절 시비를 확대시킬 이유는 없었다(다만 기사에 따르면 작곡자는 ‘고의적인 인용은 아니’라고 했다는데 이 말은 좀 이상하다. 인용이란 것은 통상 고의적으로, 즉 일부러 하는 것이므로).

 또 한가지, 이 교향곡 2악장엔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와 비슷한 멜로디가 전혀 없다. 1악장과 4악장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주제가 ‘그대를 만날 때면 이렇게 포근한데’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인 건 맞다. 취재 과정에서 착오가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그런 것으로는 크로스오버와 샘플링이 있다. 크로스오버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섞임’의 음악이란 뜻이고, 샘플링은 기존 팝·클래식 음반의 연주 음원을 그대로 따서 쓰는 작곡 기법을 말한다. 대중음악에는 그 수많은 사례가 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대중적인 것은 6번 비창이지만 선율미가 단연 뛰어난 것은 교향곡 5번이라고 할 수 있다. 민해경 노래 표절 논란을 꺼낸 김에 덧붙이면 미국 가수 존 덴버도 이 교향곡 2악장의 특정 선율에 가사를 붙여 곡을 만들었다. 2악장의 지시어는 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천천히 노래하듯이, 약간 자유롭게)인데, 덴버가 이 지시에 맞추기라도 한 듯 작곡한 것이 <애니의 노래(Annie’s song)>(1974)이다. 2악장은 혼이 연주하는 아련한 멜로디 ‘도시라도시 솔라시레도’로 시작한다. 누군가 이 악장에 대해 인터넷에 “아마 5번 교향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일 것입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 어린 시절 밥 먹으라고…”라고 감수성 있는 평을 올렸다. 존 덴버는 이 모티브를 집중적으로 살려 곡을 만들었다.

존 덴버의 <애니의 노래(Annie’s song)>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the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숲속의 밤처럼 봄의 들녘처럼 빗속의 산책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사막의 폭풍처럼
 잠든 파란 바다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내게 다가와 날 채워 주세요
 
 Come let me love you/ Let me give my life to you/ Let me drown in your laughter
 Let me die in your arms/ Let me lay down beside you/ Let me always be with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 인생을 당신께 드릴께요 당신의 웃음에 흠뻑 빠지고 싶어요
 당신 품에서 생을 마감할래요 당신 곁에 눕겠어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겠어요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게 다가와 다시 나를 사랑해 주세요

 Let me give my life to you/ Come let me love you/ Come love me again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night in a forest/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orm in the de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y senses/ Come fill me again
 내 인생을 당신께 드릴께요 내게 다가와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게 다가와 날 다시
 사랑해 주세요 숲속의 밤처럼 봄의 들녘처럼 빗속의 산책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사막의 폭풍처럼 잠든 파란 바다처럼 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 내게 다가와 날 채워 주세요
                                                  <애니의 노래(Annie‘s song)> 가사

 대중가요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게 클래식과 국악이다. 많은 대중가요 가수, 싱어송라이터들이 그런 경험을 밝히고 있다. 왜 그럴까. 큰 틀에서 보면 클래식과 국악, 대중가요가 결국은 같은 음악현상을 다루는 것이란 사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음반 프로듀서 겸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의 말을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고전음악은 다른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음악이란 것이다. “어떻게 로큰롤이라고 하는 반복적이고 요란한 쓰레기를 감히 위대한 거장들의 숭고한 음악에 갖다 댈 수 있다고 하는 거지?” 이런 입장은 위대한 거장들에게 기쁨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원천이 바로 당대의 ‘흔해빠진’ 대중음악이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모차르트와 브람스, 바흐조차 방랑시인의 발라드와 유럽의 민속음악, 동요에서 많은 선율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리듬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선율은 계급이나 교육,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주3】“어떻게 로큰롤이라고 하는…”이라는 그의 말에서 로큰롤 대신 ‘뽕짝’이나 ‘유행가’를 집어넣어보면 우리 현실과도 통하는 얘기임을 알 수 있다.

 문화에 있어 끊임없이 편을 가르려는 경향이 존재해온 건 사실이다.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 ‘유행의 시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선천적으로 ‘고급문화’라는 것, 엘리트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고, 전형적인 중류층의 평범하거나 ‘속물적인’ 취향과 하류층이 열광하는 ‘천박한’ 취향이 존재했다. 그것들을 뒤섞는다는 것은 물과 불을 섞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은 진공을 꺼리지만, 문화는 혼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문화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유용한 도구로 드러내 보이고, 의식적으로 계급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것을 보호하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문화란 계급 구분과 사회적 계층을 만들어내고 보호하려고 고안된 기술이다.【주4】

 그러나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론에도 불구하고 문화에는 순혈주의를 거부하고 뒤섞이려는 경향도 뚜렷이 존재한다.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으로 구분돼온 음악 두 분야의 크로스오버가 뚜렷한 현상이 그 증좌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지속된 문화적 변동과정에서 이른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은 점점 흐려지고 있고 양자의 뒤섞임과 상호작용이 중요한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이분법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클래식과 재즈, 팝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합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클래식과 재즈, 국악, 대중음악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연주되는 것이 더는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주5】물과 기름 같았던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장르 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크로스오버와 샘플링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1964·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의 가수 곽순옥도 일찌기 클래식음악과 크로스오버된 노래를 불렀다. <비창>(1964·백운춘 작사)이 그것이다. 이 곡은 델라 리스란 미국 흑인 여가수가 부른 <The Story Of a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의 이야기)>을 번안한 것으로, 저 유명한 차이코프스키 비창 교향곡 1악장의 주제 선율 중 ‘미레도솔미도미 라솔솔/ 솔파미미레 파미레레도…’가 바탕이 된다.

 비바람 마른 잎을 날릴 때/ 서글픈 그 목소리 스미네
 그대는 가고 사랑은 남아/ 허무한 이 마음을 울리네
  …(중략)
 구름 낀 하늘가 홀로 슬픈 노래를/ 불러도 메아리는 없구나
                                          <비창> 가사

 ‘클래식을 샘플링한 가요’는 신승훈의 발라드곡 <보이지 않는 사랑>(1991·신승훈 작사 작곡)이 국내 효시격이다. 신승훈이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봤던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이 노래는 방송 프로에서 무려 14주 연속 1위라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성악곡 ‘솔미레도도시도레 솔파미레레도레미’의 선율이 도입부에 깔리며 노래가 시작된다. ‘사랑해선 안될 게 너무 많아(미미파미파미파미파솔미)…’

 그 후로 샘플링을 잘 한 곡은 많이 나왔다.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1997·이현우 작사, 김홍순 이현우 작곡)은 비발디의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의 제4곡인 겨울에서 선율을 빌려왔다. 이것이 곡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크로스오버곡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원곡 사계의 겨울 2악장 라르고엔 이런 소네트가 붙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난롯가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밖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헤어진 다음날의 공허함과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닌가 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어제 아침에 이렇진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수는 없나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하략)
                                                  <헤어진 다음날> 가사

 여성 3인조 씨야가 부른 <사랑의 인사>(2007·황성진 이지은 작사, 김도훈 이상호 작곡)는 엘가의 동명 바이올린 소품인 사랑의 인사의 선율을 가져다 썼다. ‘미솔미레도시도파파파…’, 원곡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사랑스런 멜로디다.

씨야의 <사랑의 인사>

 비 내리는 거릴 좋아했었죠/ 우산 없이 나와 함께 걸었죠
 다시 내리는 비에 그대 생각나/ 눈물 날 것 같은데
 둘이 걷다 보면 나를 위해서/ 습관처럼 왼쪽 편에 세웠죠
 내 여자라서 내가 지켜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했죠
 좋은 사람 꼭 만날 거라 했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내겐 그대가 하나뿐이라/ 다른 사랑 못할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가슴에 멍드는 말을 하고서
 지나가는 발소리 그대이기를/ 원하고 또 원하죠
 가끔 그대 어깨 기대 잠들면/ 아무 말도 없이 안아주었죠
 고마웠다고 이젠 말할 수 있는데/ 그댄 어디 있나요
 …(중략)
 보고파 소리쳐봐도 그리워 불러도/ 닿을 수가 없는 그댄가 봐
 이젠 나를 잊었나 봐/ 그대가 못난 바보라고 할까 봐/ 내 사랑 너무나 아낀 것 같아
 괜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사랑한단 말도 못했어요
 못 잊어 그립다는 말도 못하고/ 그대가 나를 또 찾지 않을까
 지나가는 발소리 그대이기를/ 원하고 또 원하죠
                           <사랑의 인사> 가사

 특이하게 3인조 힙합 그룹인 더 골드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클래식을 기반으로 해 2003년 낸 앨범 12개 전곡을 만들었다. 그 중 <2년 2개월>(조은희 작사, DR.G 작곡)은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주선율로 군에 입대하며 애인과 작별하는 남자의 심정을 잘 그렸다. 또 박지윤이 2000년 부른 <달빛의 노래>(박진영 작사, 박진영 방시혁 작곡)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의 선율을 빌렸다.

                                               박지윤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2007·휘성 작사, 박근태 김태현 작곡)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이미 친숙해 있는 클래식 멜로디를 샘플링하는 것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이분법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참신성을 희생해야 하며 쉽게 식상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그 성패는 결국 작품성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는 정치성을 띤 노래의 성패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다.

 에릭 카멘이 1975년 작사 작곡한 발라드풍의 노래 <All By Myself(오로지 나 홀로)>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에서 주선율을 빌려왔다. 1악장 모데라토의 폭풍처럼 격정적인 연주가 지나가면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이 선율이 잔잔하게 흐른다. 고독한 느낌이 전해지는 악장이다. ‘솔레미솔 솔레미파…(All by myself, don’t wanna be/ all by myself any more)’ 딱 이 두 소절을 갖고 와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 셀린 디온 등도 불렀다.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오로지 나 홀로)>

 When I was young I never needed anyone
 and makin’ love was just for fun Those days are gone
 Livin’ alone I think of all the friends I’ve Known
 but when I dial the telephone nobody’s home
 All by myself, don’t wanna be all by myself any more
 All by myself, I don’t wanna live all by myself any more.
 Hard to be sure sometimes I feel so insecure
 and love so distant and obscure remains the cure…(하략)

 내가 한참 때에는 아무도 필요치 않았어
 사랑하는 것도 그냥 재미 삼아 했었지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가버리고 말았어
 홀로 살아 가면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생각하지만
 다이얼을 돌려 보면 아무도 집에 있지를 않아
 홀로이고 싶지 않아 이젠 더 이상 홀로이고 싶지 않아
 홀로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이제 더 이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불안함이 다가옴을 느끼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사랑만이 남아
 내 맘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을 뿐
                   <All By Myself(오로지 나 홀로)> 가사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2악장 Adagio cantabille의 멜로디를 따서 만든 팝송이 루이스 터커의 <Midnight Blue(깊은 밤의 고독)>(1982)이다. ‘미레솔파미솔도레솔/라레미파솔미 파미파미도레미레도…’의 서정적 멜로디가 반복 변주된다.

 Midnight Blue So lonely without you
 Dreams fed by the memories Oh let the music play
 Midnight Blue Those treasured thoughts of you
 Gone now and forever Please let the music play
 Midnight Midnight I forgave you Couldn’t save you
 Drove you from my mind
 Midnight Blue So lonely without you
 Warms word from a fantasy Oh let the music play
 Midnight Blue The tears come flowing through
 I’ll never forget you Please let the music play…(하략)

 깊은 밤의 고독 그대 없는 밤이 너무도 외로워요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꿈들 오 음악을 들려주세요 
 깊은 밤의 고독 그대가 영원히 가버렸어도
 그대의 생각들이 소중해집니다 제발 음악을 들려주세요
 깊은 밤의 고독 나는 그대를 용서했지만
 그대를 구해 줄 순 없어요 그대를 내 마음에서 몰아낼 수 없어요
 깊은 밤의 고독 그대 없이는 너무도 외로워요
 환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세요 오 음악을 들려주세요
 깊은 밤의 고독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고
 그대를 잊을 수가 없네요 제발 음악을 들려주세요

<Midnight Blue(깊은 밤의 고독)> 가사

루이스 터커의 <Midnight Blue(깊은 밤의 고독)>

 터커는 영국 출신으로 런던의 길드홀 음악원에서 오페라 수업을 받은 메조 소프라노 가수다. 그녀는 신스 팝과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이든 프로젝트(Eden Project)’에 합류하면서 팝 음악의 세계로 영역을 넓히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다. 터커와 함께 노래한 남자의 목소리는 이 음반의 제작자이기도 한 찰리 스카벡이다. <Midnight Blue>는 발매되자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며 각국 싱글 차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에 많은 사랑을 받는 히트곡이 된다.

 그밖에 훌륭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샘플링 사례는 미국 흑인 소울싱어 퍼시 슬레지의 <When a Man Loves a Woman(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될 때)>(1966)가 있다. 이 노래의 전주 ‘미레도시라솔라시’는 유명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멜로디를 그대로 빌린 것이다. “He’d give up all his comforts/ And sleep out in the rain/ If she said that’s the way(여자가 원한다면 남자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빗속에서도 자지요)”라는 극진한 사랑이 인상적인 노래다. 또 하나 생각나는 건 영국 5인조 밴드 프로콜 하럼이 부른 명곡 <A Whiter Shade Of Pale(더 창백해진 그 얼굴)>(1967)이다. 이 곡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제2악장 멜로디(나중 바이올린곡 G선상의 아리아로도 편곡된다)를 부분적으로 가지고 와 작곡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가 듣기에 바흐에게서 영감을 강하게 얻은 ‘바흐풍의 멜로디’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을 샘플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프로콜 하럼이 부른 <A Whiter Shade Of Pale(더 창백

해진 그 얼굴)>

 이승철은 “대중가요는 그림이나 클래식하고 다른 종류의 상품입니다. 대중가수가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유일한 답이라면 대중이 좋아하는 걸 해야 하고 대중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음악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란 말을 한다.【주6】이것도 나름의 프로다운 소견이 담긴 말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대중음악과 클래식은 각각의 특색이 있지만 본질은 같은 음악현상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민기의 음악에 대해 이런 평이 있다.

 “김민기의 음악은 클래식 연주로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이 음반은 김동성의 편곡과 지휘로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김민기의 대표곡들을 연주한 음반이다. <아침이슬>에서 <상록수>와 <봉우리>에 이르는 그의 대표작들이 클래식 연주자들에 의해 완벽한 연주곡으로 재창조되어 있다. 이 음반을 들으면 김민기의 음악이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지, 이른바 대중음악과 고급음악을 구분하는 구태의연한 기준이란 것이 한 뛰어난 예술가의 음악적 성취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십분 느끼게 된다.…러시아 국립교향악단의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로 녹음된 이 앨범은 김민기의 음악이 단지 1970년대의 청년문화, 혹은 통기타 대중음악의 좁은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 한국 현대 문화사의 가장 풍성한 자원이자 유산 가운데 하나임을 잘 보여준다.”【주7】

【주1】Wikipedia,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2014년 11월 11일 최종 수정
【주2】동아일보 1982년 8월 3일자 12면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표절 시비 기사
【주3】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 18쪽
【주4】지그문트 바우만, 유행의 시대(오월의봄, 2013) 13쪽
【주5】김창남 엮음, 대중음악의 이해(한울, 2012) 클래식과 대중음악 14쪽
【주6】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이승철 77쪽
【주7】김창남 엮음, 김민기(한울, 2004) 디스코그라피 중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음반 소개글, 323쪽

 

 

'노래가 위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노래  (0) 2015.03.12
한국적인 노래의 정체  (0) 2015.03.08
매달리는 이별, 쿨한 이별  (0) 2015.02.22
<빈대떡 신사>-조바꿈의 미학  (0) 2015.02.16
<가거라 삼팔선> 이야기  (0) 201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