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래가 위로다

<가거라 삼팔선> 이야기

 노래는 그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는 건 당연하지만, 가요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짧지만 그 안에 나름의 사회사적 의미가 간결하게 녹아 있다. 1947년 나온 <가거라 삼팔선>(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은 해방의 감격도 잠시, 강요된 분단 상황을 맞은 국민들의 좌절감과 아픔이 잘 그려진 노래다.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아 아아아아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

 

 아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아 아아아아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 글자는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더냐
 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삼팔선아 가거라
                                        <가거라 삼팔선> 가사

 

                         <가거라 삼팔선>이 실린 SP판과 남인수

 

 

 이 노래엔 이런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6·25 이전에 이미 이런 노래가 나왔다는 것은 지금의 상식적 감각으로서는 꽤나 놀라운 일이다. 분단의 아픔은 일러야 정부 수립 즈음, 본격적으로는 6·25 이후에야 작품에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서민들에게 분단이란 미군정 때부터 이미 피부로 느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주1】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과 소련이 대한민국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해 버렸다. 삼팔선은 순전히 타의로 책정된 것이며, 우리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 원한 맺힌 비극의 분단선이다. 그걸 노래는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이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다는데 현대사에서 분단처럼 한스런 역사가 또 있을까. 그때 그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시절 나온 신문을 살펴보자.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 27일자부터 ‘어떻게 살아갈까?’를 주제로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기사들은 약 70년 전 해방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보여준다. 해방은 됐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미군정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차부(짐수레꾼) 길삼룡씨는 “못 살겠다 하면서도 죽지 못해….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르면서 살아가지요”라고 했다. 그는 “나라가 서면 우리 같은 놈도 좀 안심하고 살게 해주었으면…”이란 소망도 밝힌다.


 고학생 최원희 양은 이렇게 말했다. “어서 빨리 삼팔선이 깨져야겠어요. 삼팔선이 깨지는 날이면 독립도 되는 날이겠지요.”【주2】그는 삼팔선이 있는 한 진짜 독립은 안 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팔선에 대해 “어서 깨져야 한다”고 한 것은 노래 2절의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와 비슷한 표현이다. 혹시 그도 이 노래를 들어 알고 있었던 걸까. 당시 <가거라 삼팔선>은 음반이 3만장이나 팔린 국민 애창곡이었다는데.

 

 이 노래는 정치적 입김에 시달리기도 했다. 노래는 강토가 ‘삼팔선으로 갈라진다’는 소문과 함께 월남한 사람들도 널리 불렀을 만큼 한동안 북녘에서도 애창되었으나, 1948년 9월 9일 김일성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전면 금지된다. 남한에서도 시련을 겪었다. 당시 남북 간에는 교전이 벌어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1절 마지막 부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가 문제가 됐다. 왜 삼팔선을 헤매느냐, 월북을 부추기느냐는 거였다. 당국은 개사(改詞)를 권고했으나 이에 격분한 작사가 이부풍이 잠적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 노래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작사가 반야월이 1절 끝 부분 ‘헤맨다’를 ‘탄(嘆)한다’로 바꿨다. 또 2절을 새로 지어 삽입했다.【주3】1949년의 일이다. 2절 가사는 다음과 같은데, 마지막 소절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에서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느낌이 확 온다.

 

               <가거라 삼팔선> 악보

 

 

남인수가 구성지게 부른다.

 

 아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 아아 아아아아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
 보따리 등에 메고 넘던 고갯길/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가거라 삼팔선>은 후대에도 두고두고 반추된다. 한국전쟁 중에는 종군하는 외신 기자들까지 전선에서 함께 불렀을 만큼, 대유행의 물결을 더욱 거세게 탔다.【주4】<가거라 삼팔선>은 이정환의 소설 ‘샛강’에서도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샛강’은 1975~76년 창작과 비평 연재 소설로 사형수 출신인 작가는 서울 난지도 부근 샛강가에 흘러들어온 도시 빈민들의 척박하지만 건강성을 잃지 않는 일상을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 문단과 대학가에 화제를 모았다.


 어느 날 갑자기 7·4 공동성명이 발표된다. 라디오는 거리 시민들의 기대에 찬 목소리를 전했고, 비행기가 저공으로 날며 삐라를 뿌렸다. 공동성명 전문과 직통전화 가설운영 합의서가 실려 있었다. 가난하고 소박한 샛강 사람들은 환호하며 술판을 벌인다. “됐어 되어, 이번 통일되면 평양 가서 시계 장사 해야지… 기분이다. 내 술 한 병 샀다. 야, 영권아 OB로 다섯 병만 사오너라. 옛다 돈!” 술판에서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부른다. “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아, 아아아아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야, 통일 났다.” “통일이다. 통일….”

 

                                이정환의 소설 ‘샛강’(단행본)

 

 샛강 사람들 입에서 이 노래가 터져나온 건 삼팔선이 곧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지해삼이 <가거라 삼팔선>이 나온 1947년 삼팔선 이북에 위치한 강원도 양구에 살면서 남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이 노래를 듣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이 노래를 들을 때나 부르게 될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을 때 북한 장전항에서 금강산 여관으로 가는 200여대의 버스에는 자동 노래 반주기와 남한 노래 6천여 곡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북한 측에서 갑자기 자신들의 체제에 맞지 않는다며 71곡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 명단에는 <가거라 삼팔선>을 비롯해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전선야곡> 등이 들어있었다. <가거라 삼팔선>의 경우 북쪽에서 50년째 금지곡인 게 확인된 셈이다.【주5】

 

 해방공간에서 분단 상황을 아파한 노래가 <가거라 삼팔선>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49년 남인수가 부른 <흘겨본 삼팔선>(김건 작사, 박시춘 작곡)은 지금 들어도 비장감이 느껴진다.

 

 임진강 나루터에 소 멕이는 아해야/ 오늘도 삼팔선에 파수병이 섰드냐
 이북도 우리나라요 이남도 내 땅인데/ 파수란 웬말이냐 꼴을 베는 아해야

 삼팔선 가고 오는 눈물 겨운 길손의/ 험한 길 험한 산을 가슴 조여 거닐 때
 나룻가 저 마을에 등불이 비치더냐/ 삼팔선 언덕 넘어 북두칠성 보이더냐
                                                       <흘겨본 삼팔선> 가사

 

 역시 남인수의 <달도 하나 해도 하나>(1947·김건 작사, 이봉룡 작곡)도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비애와 안타까움을 노래했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마음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우리들은 단군의 자손
 물도 하나 배도 하나 산천도 하나/ 이 나라에 뻗친 혈맥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민족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이 겨레의 젊은 사나이
                              <달도 하나 해도 하나> 가사


【주1】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민속원, 2006) 전쟁·분단의 슬픔과 트로트의 재생산 129쪽
【주2】경향신문 2014년 12월 5일자 오피니언 ‘경향으로 보는 그때’, 1947년 11~12월 ‘어떻게 살아갈까’ 시리즈 소개 기사
【주3】네이버 오픈백과, 가거라 삼팔선(三八線) 2008년 2월 13일자, 필자 미상이나 고증이 충실해 보인다.
【주4】같은 글
【주5】선성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대중가요(현암사, 2008) 444~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