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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비처럼 음악처럼-비와 노래

 나는 지난번 칼럼 ‘노래, 자연의 친구’를 쓸 때 비는 뺐다. 왜냐하면 수많은 자연현상 가운데 비의 정서를 담은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따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가 나오는 노래는 왜 이렇게 많을까. 어쩌면 이것도 우문일 거다. 비만큼 인간과 친밀하고 우리 정서에 영향을 주는 자연현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창밖에 쏟아지는 빗소리’란 말만 들어도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지 않나.  

유리창엔 비

 비와 소리

 푸에르토리코 출신 맹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비)>(1969)은 1980~90년대 비 오는 날이면 음악다방·카페에서 어김없이 틀어주던 노래다. 가사는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키워드가 되고 있다. ‘pouring rain’은 그야말로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연상시키는 통기타 반주와 효과음 속에 애조를 띤 호세의 목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호세 펠리치아노

 Listen to the pouring rain listen to it pour
 and with ev’ry drop of rain you know I love you more
 Let it rain all night long Let my love for you grow strong
 As long as we’re together Who cares about the weather

 Listen to the falling rain listen to it fall
 and with ev’ry drop of rain I can hear you call
 Call my name right out loud I can hear above the clouds
 And down here among the puddles You and I together huddle
  Listen to the falling rain Listen to the rain

 It’s raining it’s pouring the old man is snoring
 Went to bed and he bumped head
 he couldn’t get up in the morning  …(하략)

 쏟아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요 쏟아지는 소리를 들어요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처럼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해요
 밤새 내리도록 두세요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강해지도록 두세요
 우리가 함께 있는 한 날씨야 아무려면 어때요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요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요
 떨어지는 방울 속에서 당신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내 이름을 크게 불러봐요 난 구름 위에서도 들을 수 있고
 여기 물웅덩이 속에서도 들을 수 있어요 당신과 내가 옹송그리고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요 빗소리를 들어봐요
 비가 내리고 있어요, 퍼붓고 있네요. 노인은 코를 골고 있어요
 자러 가다가 머리를 부딪쳐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실 거예요
                                          <Rain(비)> 가사

 필자의 친구 자명은 이 노래에 얽힌 자기만의 추억이 있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서울 대학로 모퉁이에 바르비종이란 카페를 열어 장사를 했다. 지붕 일부가 함석으로 된 2층 카페였는데, 비가 오면 이 음악 신청이 쇄도했다. 함석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그것은 영락없이 애절한 <Rain> 멜로디에 맞춘 드럼 반주였다. 실연한 누군가에게는 타닥타닥 소리가 몹시 아프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인상적으로 묘사한 소설의 한 장면이 있다.

 “그러니까 옛날에 영화 찍고 나서 어느 날인가 극장에 영화가 걸리고 어쩌고 하는데 충무로 다방에서 만난 정 감독님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갈 곳이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따라나섰다가 그만 서귀포까지 가게 됐거든. 맞아, 사랑의 줄행랑이었던 거지. 요즘 같으면 어디 파타고니아나 마케도니아 같은 곳으로 도망쳤을 텐데, 그때는 외국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시절이니까 나름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까지 간 셈이지. 그렇게 서귀포시 정방동 136-2번지에서 바다 보면서 3개월 남짓 살았어. 함석지붕 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 석 달 동안 밤이면 감독님 품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있었지.” (김연수 단편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빗방울 소리를 모티프로 만든 음악으로 유명한 것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다. 작곡할 때는 전주곡 24개 가운데 그냥 15번 D♭조였는데, 언제부턴지 사람들이 빗방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왼손의 반주가 곡 전체에 걸쳐 반복하는 A♭(계이름으로는 솔→미)음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일화도 전해진다. 쇼팽은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와 지중해 섬 마요르카에 머물고 있었다. 쇼팽은 결핵으로 각혈을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빴다. 어느 날 상드가 외출한 사이 비가 왔다. 쇼팽은 빗소리를 들으며 이 곡을 작곡해 상드에게 들려주었다. 이 에피소드에 따르면 몸이 몹시 쇠약하고 곤궁한 시기에 연인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이란 얘기다. 그런 배경을 알고 들으면 더 우울한 음악이다.

쇼팽 빗방울 전주곡, 손열음

 빗소리라는 제목의 노래도 많다. 주찬권은 <빗소리>(2012·주찬권 작사 작곡)에서 “빗소리 들으면 잊혀져 간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떠올라 나를 데리고 가네”라고 노래했다. 조동진은 <빗소리 바람소리>(1982·조동진 작사 작곡)에서 “메마른 나의 맘속에 빗물 적시며/ 어둡고 깊은 잠에서 나를 깨우는 아 저 빗소리 아 저 빗소리”라고 했다. 소리·청각이 기억을 일깨우는 힘은 크다. 나는 작년 11월 ‘노래는 추억이다’란 칼럼에서 “뇌의 반응은 시각보다 청각에서 오는 자극에 더 민감하다”고 썼는데 비의 경우도 그런 것일까.

 송창식은 <비의 나그네>(1972·이장희 작사 작곡)에서 밤비 내리는 소리를 님이 오는 소리, 님이 가는 소리라고 여긴다. 이걸 두고 ‘비도 오는데 제정신이 아니어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만큼 님이 그리워서다. 이것도 광의의 감정이입이다. 빗소리에 자기 감정은 아니지만, ‘님이 오고 가는 소리란 착각’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다.

 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따라 왔다가 밤비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주룩 끝없이 내려라 …(하략)
                                                        <비의 나그네> 가사

 김세환의 <비>(1974·이장희 작사 작곡)는 쏟아지는 소낙비, 그리고 천둥소리까지 담고 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비가 몹시 내렸지/ 쏟아지는 빗속을 둘이 마냥 걸었네
 함박 젖은 머리에 물방울이 돋았던/ 그대 모습 아련히 내 가슴에 남아있네
 먹구름아 모여라 하늘 가득 모여라/ 소낙비야 내려라 천둥아 울리렴
 오늘 비가 내리네 추억처럼 내리네/ 내 가슴에 내리네 눈물처럼 내리네…(하략)
                                       <비> 가사

 비와 계절

 계절과 결합한 비의 노래도 많다. 단연 봄비 노래가 압도적이며 그중에서 클래식과 같은 존재는 박인수의 <봄비>(1969·신중현 작사 작곡)다. 그가 절규하듯 부른 이 노래를 어렸을 적 흑백 TV로 본 기억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박인수 <봄비>

   이슬비 나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우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 비
  …(하략)                      <봄비> 가사

 가사도 곡조도 슬프다기보다는 서럽다. 외롭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실연 때문인지 무언지. 왠지 단순히 사랑을 잃어버려서 보단 더 복잡한, 실존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곡을 만든 사람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다. 그는 <봄비>에 흑인음악의 전유물이던 소울을 담아 처음엔 이정화에게 주었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자 1970년 다시 박인수가 녹음하도록 했다. 이게 단숨에 대중을 매료시켰다. 1946년생으로 한국전쟁 중 어머니와 헤어져 미국에 입양까지 갔다 돌아온 박인수가 백인들도 이해 못하는 흑인들의 소울을 제대로 불러낸 것이다. 신중현은 회고록에서 박인수에 대해 “흑인보다 더 흑인의 영혼을 지닌 아티스트”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만큼 가장 소울풀한 목소리와 창법을 가진 가수였다고 할 수 있다.

 가을비를 노래한 것으로는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1979·이두형 작사, 백태기 작곡)이 있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따라 잊혀진 그 얼굴이/ 왜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가을비 우산 속> 1절 가사

 지금 이 글을 쓰는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에 비 노래는 안 어울리나. 김종서의 <겨울비>(1993·신대철 작사, 김종서 작곡)도 있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
 별들과 저 달빛 속에도 사랑이 있을까/ 애타는 이내 마음과 멈춰진 이 시간들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 이제 다시 오지 않는가
 내게 떠나간 멀리 떠나간 사랑의 여인아
 겨울비 내린 저 길 위에는 회색빛 미소만/ 내 가슴 속에 스미는 이 슬픔 무얼까
   …(하략)                              <겨울비> 가사

 여성 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은 2003년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불렀다. 사랑과 이별이란 정반대 상황을 봄비와 겨울비의 대조적 이미지로 그려냈다.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임현정

 묻지 않을게 네가 떠나는 이유/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야윈 너의 맘 어디에도/ 내 사랑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
 이해해 볼게 혼자 남겨진 이유/ 이젠 나의 눈물 닦아줄 너는 없기에
 지금 나의 곁에 있는 건/ 그림자뿐임을 난 알기에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 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 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하략)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1절 가사

 여름비란 말은 별로 안 쓰고 노래도 없다. 여름엔 장마도 있고 원래 여름엔 비가 많으니 굳이 여름을 붙일 까닭이 없어선가. 김광석의 <사랑했지만>(1993·한동준 작사 작곡)엔 계절이 안나오지만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란 노랫말로 보아 여름인 듯하다. 내가 과거 신문에 쓴 글 ‘내일은 비’를 소개한다.

 긴 장마 속에 김소월의 시 ‘왕십리’가 떠오른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시의 계절은 여름 장마철이다. 시인이 구태여 밝히지 않았어도 ‘(비가)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거나,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란 구절이 그렇다. 하여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있는 왕십리’에서 우리는 시가 노래하는 이별의 정한에 공감한다. ‘한 닷새 왔으면 좋지’란 표현에 대해서는 엇갈린 해석도 나오나 보다. 하나는 “(이별 때문에 가슴 아픈데) 닷새 정도만 오면 됐지 왜 자꾸 오느냐”라는 거고, 다른 건 “기왕 올 거면 좍좍 닷새는 쏟아져라”란 뜻이라는 거다. 하지만 시인은 이 부분을 모호하게 남겨놓았다. 어떤 쪽으로 읽어도 좋다는 뜻일 터.
 비만큼 사람과 가까운 자연현상도 없다. 사랑할 때 그리고 이별할 때 비처럼 절절히 다가오는 게 있을까. 당연히 비는 가요와 문학의 단골 소재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도 비에 관한 노래인데, 접근법이 독특하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버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도 비는 중요한 설정이다. 소설 마지막은 “나는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로 끝난다. 이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다 숨지는 비극적 장면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비는 비극, 허무, 죽음을 상징하지만 작가는 수십 번 고쳐쓴 끝에 감정표현이 절제된 이 문장을 완성했다고 한다. 
 장마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중부지방은 지난달 중순 장마가 시작된 이래 7월 들어서는 그제까지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서울은 겨우 사흘만 갠 날씨였다. 일기예보에서 ‘내일은 비’란 말을 듣는 게 일상이 돼버린 셈이다. 거기에다 스콜현상 같은 국지성 호우가 잦아 가령 강남엔 비가 오고 다른 곳은 맑기도 했다. 모두 기후변화의 양태들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극값’ 경신 빈도도 높아졌다. 잠시 주춤한 듯하지만 이번 장마는 다음달 초까지 계속될 거라 한다. 기왕 오는 비, 지루한 장마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비 한번 시원하게 내린다, 더러운 것들 씻어버린다고.【주1】

 비 노래가 많은 이유는 그것이 이별의 정한(情恨)을 담기에 딱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이 피어오르는 건 맑게 갠날, 화창한 날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제격이다. 여기엔 과학적인 근거도 있을 거다. 심수봉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시작되는 노래 <그때 그 사람>(1978·심수봉 작사 작곡)을 불러 호소력을 인정받은 것도 진한 공감을 전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 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하략)
                                           <그때 그 사람> 가사

   아닌 게 아니라 비 노래는 ‘팔할’이 떠난 사랑을 그리는 노래일 거다.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1986·박성식 작사 작곡)을 들어보자.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오
 …(중략)
 오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 오 오 오
                <비처럼 음악처럼> 가사

 주옥같은 비 노래는 너무나 많다. 1982년 대학가요제 동상을 받은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1982·오주은 작사, 오주연 작곡)은 가사와 멜로디, 화성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노래다.

우순실 <잃어버린 우산>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이젠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 같지만
 하얀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라랄 라라라랄 랄랄라랄라 랄라 라라라랄라
 잊혀져간 그날의 기억들은/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내겐 우산이 되리라
   …(하략)                            <잃어버린 우산> 가사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1948·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은 비가 등장하는 것으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려왔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어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이 노랫말이 나온 경위에 대해선 2개의 설명이 있다. 하나는 이 곡이 크게 히트하고 나서 작사가 유호가 어쩌다 지도를 보니 대구 밑에 실제로 고모(顧母)란 역이 있는 걸 알게 됐다는 우연설로, 작사가 정두수의 말이다.【주2】 다른 것은 작사가 유호가 부산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이곳 고모역에서 잠시 멈추었을 때 멀리 산모퉁이 부근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이별 장면을 본 것에서 가사 착상을 얻었다는 것으로 이동순 영남대 교수의 말이다.【주3】어쨌든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 고모령에는 2001년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세워졌다. 비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를 향한 영원한 사모곡(思母曲)으로 널리 애창되기를 바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주1】경향신문 2013년 7월 25일자 여적 ‘내일은 비’(김철웅 논설실장)
【주2】정두수, 노래따라 삼천리(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3) 93쪽
【주3】오마이뉴스 2006년 11월 13일자 ‘이별과 눈물의 고모역 어디서 찾을까’ 이동순 기자. 고모령 인근 고모역이 안타깝게 폐쇄되고 말았다는 르포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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