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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기타 코드의 추억

 

 요즘 노래는 화성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옛날 노래는 단순 질박했다. 이걸 기타 코드로 얘기하자면 옛날 노래는 서너 개, 많아야 대여섯 개 정도의 코드만 구사하면 부를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통기타 시대를 연 1970년대 포크송을 예로 살펴보자.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1973·이장희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드 네 개(Em-D-C-B7)로 코드가 진행된다. 

 

 

                           이장희 <그건 너> 앨범


 

 Em      D         C                B7  Em      D         C            B7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Em      D          C          B7      Em       D         C   B7    Em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보이질 않나
         D         Em        D          Em          D        Em        D           Em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1절 가사

 

 이런 단순한 멜로디(코드가 단순하다는 건 멜로디가 그렇다는 말과 같다)와 가사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첨엔 ‘듣보잡’ 같은 노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친숙해졌다. 그만큼 잡아끄는 힘, 호소력이 있었다. 당국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결정을 했지만 참 웃기는 구실이었다.

 

 조용필은 자작곡 <단발머리>(1980·박건호 작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른바 ‘패밀리 코드’ 5, 6개로 모든 음악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른 코드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세븐 코드를 <단발머리>에 적용해 리듬과 멜로디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 노래에 당시에는 쓰지 않던 메이저 세븐 코드를 사용한 이유가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주1】그가 패밀리 코드라고 한 건 장·단조의 기본 코드 6개 정도를 말한 것 같다. 가령 C장조의 C, F, G와 나란한조의 Am, Dm, E7 등 총 6개 코드다. 세븐 코드를 절묘하게 구사한 노래로 기억나는 것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강인원 작사 작곡,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노래)가 있다. 비오는 거리 풍경 묘사에 세븐 코드가 동원된 것이 몽환적 느낌을 강하게 준다. 마치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 같은.
 

 

 1970년대 포크송엔 즐겨 사용되는 몇 가지 코드 패턴이 있었다. 앞서 예를 든 <그건 너>의 패턴을 여러 곡에서 발견할 수 있다. 편의상 이 패턴을 다장조 C(또는 나란한조인 Am)로 조바꿈하면 Am-G-F-E7가 된다. 4월과 5월의 <화>(1972·백순진 작사 작곡)가 그 경우다.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애 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 태우며
 Am       G                    Am               G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Am      G         Am     G         Am       C            E7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된다 더 가지마
                                         <화> 1절 가사

 

 1971년 당대 최고의 춤꾼 김추자가 부른 <그럴 수가 있나요>(김희갑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같은 코드 진행, Am-G-F-E7을 반복한다. 그래서 지루하냐 하면 리듬과 선율, 도발적 창법에 스르르 도취되고 만다. 이 경우 반복은 상당한 중독성을 발휘한다.

 

 

                                                 김추자

 

 Am              G            F            E7 Am          G           F           E7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사랑하고 헤어지지만
 Am  G  F   E7
 아  아  아  아(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파도처럼 왔다가는 눈물만 주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둘이 뜨겁게 둘이 뜨겁게 사랑하다가/ 혼자 그렇게 혼자 그렇게 가시겠다니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럴 수가 있나요> 가사

 

 1971년 은희가 노래해 그해 최고 히트송이 된 <꽃반지 끼고>(은희 작사, 외국곡)와 1972년 양희은이 부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김정신 작사 작곡)은 화성 진행이 매우 비슷하다. C-Am-Dm-G7 패턴이 반복된다. <꽃반지 끼고>는 F장조로 돼 있지만 그걸 C장조로 조바꿈하면 똑같은 패턴이다. 박자도 같은 4분의 4박자이기 때문에 아르페지오로 기타를 치면 어느 곡에도 맞는 반주가 될 수 있다.

 

     F    Dm Gm    C7         F           Dm Gm        C7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끼고
        F       Dm      Gm         C7          F       Dm Gm    C7     F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꽃반지 끼고> 1절 가사

 

 

                                                             은희

 

 

     C        Am    Dm            G7       C              Am  Dm                G7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C        Am        Dm            G7     C    Am  Dm              G7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C   Am    Dm   G7          C Am Dm G7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절 가사

 

 우리 가요사에서 김민기는 <아침 이슬>(1971)과 같은 사회의식을 드러낸 작곡가로 자리매김 돼 있지만,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음악에 다양한 코드를 구사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은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일련의 코드 진행을 사용하여 뛰어난 음악적 형상화를 이룩한다. <친구>(1971)의 첫 소절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의 반복되는 ‘미’ 음은 끝없는 바다를 의미하고 여기에 부여되는 C-CM7-C7-F의 코드 진행은 끝없는 바다 위에 내리는 비를 연상하게 하여 가사의 시각화·공간화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인다.”【주2】이영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 <애인>(1972·이장희 작사 작곡 노래) 같은 작품은 화성적인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주 선율이 재미가 없다. <친구>는 무려 11음절의 가사를 ‘미’ 한 음으로만 일관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율 재미로 노래를 부르는 당시 우리나라 대중이 매우 부르기 어려운 노래이며…”【주3】요컨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반복을 풍부한 화성진행으로 극복했다.

 

     C         CM7   C7          F       C       Am          D7          G7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C          CM7    C7             F        Fm      C Am     Dm   G7   C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C    Gm6   A    Dm      G7     C   Gm6     A  A7     Dm D7   G G7
 눈 앞에 떠오 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 잎  위에 어른거리오
     C   Gm6    A     Dm     G7     C   Gm6    F A     D7   G7   C
 저 멀리 들리 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친구> 1절 가사

 

 <친구>는 김민기가 고교 시절 만든 작품이다. 동해안에 여름 야영을 갔다가 후배 한 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났다. 돌아오는 야간열차 안에서 참담한 심경을 담은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고교생이 작곡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성 진행이 세련되고 가사가 깊이 있다. 원래 죽음은 가요의 친숙한 주제는 아니다. 대중음악이 죽음을 주제로 다루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 점만으로도 이 노래는 독보성을 인정할 만하다. 이 때문에 70·80년대 학원 사태로 대학을 떠난 동료들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노래는 다양한 화성과 코드가 절대적 기준인 건 아니다. 이른바 쓰리코드란 게 있다. 주요 3화음의 코드만 쓰는 노래다. C장조일 경우 C-G-F-C로 진행하는 식이다. 산울림의 <아니 벌써>(1977·김창완 작사 작곡)가 대표적인 곡이다. A장조인 이 곡은 딱 A, E, D 3개 코드만으로 연주된다. 이렇게 화음 구성을 극소화시켜 단순하면서도 힘 있고 질주하는 음악을 펑크(punk), 펑크 록이라고 한다. 산울림은 최초의 펑크 밴드인 셈이다.


 “펑크는 일부러 단순한 음악을 만들었다. 록의 기준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음악이었다. 밴드의 연주는 바로 어제 결성한 듯 엉성했고 보컬은 초절정 고음 대신 악다구니를 써댔다. 곡은 대부분 3분 이내에 끝났고 쓰리코드를 고집하는 경우도 많았다.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1996·이상혁 작사 작곡)을 들어보자. 왜 펑크라 불리는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주4】

 

 

                                        산울림의 <아니 벌써> 음반

 

 

          E                  A           E                       A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
     E                   A           E                      A
 가벼운 아침 발걸음/ 모두 함께 콧노래 부르며
 D              A             D             A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D             A              D               A
 이리 저리 지나치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
                    <아니 벌써> 1절 가사

 

 그런가 하면 ‘머니코드’라는 코드 진행이 있다. C장조 기준으로 C-G-Am-Em-F-C-F-G로 나가는 캐논 변주곡 코드를 말한다. 캐논은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파헬벨이 만든 실내악인데 대중음악으로 다양하게 편곡돼 굉장히 친숙한 선율이다. 더 짧게는 C-G-Am-F 진행으로 간다. 머니코드란 이름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코드라 많이 팔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간단히 4 Chord로 부른다고 한다.
 이 진행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노래는 무척 많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1988·이영훈 작사 작곡),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1991·오태호 작사 작곡), 임재범의 <너를 위해>(2000·채정은 작사, 신재홍 작곡), 부활의 <Never ending story>(2002·김태원 작사 작곡) 등이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머니코드가 꼭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코드의 큰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코드란 것은 연주자의 취향과 곡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현식

 

 

 G             D            Em        Bm  Em                            C            D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G             D            Em         Bm  Em                Am7      C    D    G  D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G            D             Em        Bm  Em                           C            D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G             D        Em         Bm    Em          Am7     C     D     G  G7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C             D           G              Bm   Em Am Am7      Am    A     D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G             D      Em         D        C           G        Am          D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G            D    Em           D   C            G            D7          G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하략)
                                               <내 사랑 내 곁에> 가사


【주1】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조용필 207쪽
【주2】김창남 엮음, 김민기(한울, 2004) 484쪽
【주3】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민속원, 2006) 기타와 화성중심적 사고 235쪽
【주4】윤호준,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바람의 아이들, 2011)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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