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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안절부절했었지?

   1978년 밴드 사랑과 평화가 부른 <한동안 뜸했었지>(이장희 작사 작곡)는 그때까지 생소했던 16비트의 통통 튀는 리듬이었다. 그건 펑크(funk)라는 흑인음악 장르였는데, 젊은이들은 이 파격적인 리듬을 소화한 프로 밴드의 환상적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다. 가사도 재미있다.

 

 

                             밴드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한동안 못 만났지 서먹서먹 이상했었지
 혹시 맘이 변했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밤이면 창을 열고 달님에게 고백했지
 애틋한 내 사랑을 달님에게 고백했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안절부절했었지…(하략)
             <한동안 뜸했었지> 가사

 

 한데 가사에 옥에 티랄까, 문제가 있다. ‘안절부절했었지’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했었지’가 맞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문교부 표준어 규정에 따라 그렇다. 안절부절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란 부사지만, 동사로 쓸 때는 ‘안절부절하다’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하다’가 옳은 표기다. 비슷한 경우로 ‘주책이다’가 아니라 ‘주책없다’가 맞고, ‘칠칠하다’가 아니라 ‘칠칠치 못하다’라고 써야 한다. 이 노래는 계속 리메이크 되면서 지금도 대중에게 친숙하다. 당연히 ‘안절부절했었지’란 잘못된 표현도 계속 사용되면서 ‘언어 의미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 처음엔 헷갈리다가 계속 틀리게 쓰다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진다는 뜻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는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가사가 문법·맞춤법에 어긋나면 감동은 반감된다. 문맥상 뜻이 아리송한 가사도 그렇다. 크고 작은 가사의 오류들을 모아본다. 다양한 오류들엔 몇가지 유형이 있다.

 

 요령부득형

 

 첫째, 문맥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가사다. 노래 가사란 게 시처럼 함축적, 운율적인 것임을 감안해도 그런 것이 눈에 띈다. 1953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가사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와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부분의 주어·술어 관계가 모호하다. 누가 누구를 동정한다는 말일까. 뜻은 통하지만,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다. 경상도 아가씨의 애틋한 마음씨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가사 말이다.

 

 진방남이 1940년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가사에도 처음에 큰 실수가 있었다.

 

 

                                 <불효자는 웁니다> 신문광고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이국의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어푸러져 한없이 웁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가사

 

 진방남(나중에 작사가 반야월이 된다)은 일본에서 이 노래의 취입을 앞두고 기다리던 시간에 ‘모친별세’란 전보를 받게 된다. 그는 통곡을 삼키며 노래를 불렀으나 목이 메여 실패하고, 결국 다음날로 연기한 끝에 울음 섞인 절창으로 녹음을 마쳤다. 녹음실에서 그는 일본으로 떠나던 아들을 배웅하러 지팡이를 짚고 마산역까지 나오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오는 날 우산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3등 차표를 손에 쥔 아들을 향해 연약한 손을 흔드시던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녹음을 끝낸 뒤 마침내 통곡하며 온몸으로 울었다.


 하지만 2절 가사에서 모순이 발견된다. ‘드디어 이 세상을’이란 대목이다. ‘드디어’라는 말은 마치 어머님이 빨리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된다. 그렇다면 대단한 망발일 수 있다. 그래서 가수는 취입 이후 이 노래를 부를 때 ‘드디어’ 대신에 ‘어이해’ 혹은 ‘한 많은’으로 바꾸어서 불렀다고 한다. ‘기어이’로 표기된 가사도 있다.【주1】

 

 1952년 장세정이 부른 <샌프란시스코>(손로원 작사, 박시춘 노래)에 등장하는 비너스 동상은 상당히 뜬금없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꿈틀되던 그 시대에, 그것도 미항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꿈을 노래한다는 건 이해할 만 하지만 웬 비너스 동상일까.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니까 뭔가 동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주2】


 그러나 작사가 손로원이 무식해서 이런 노랫말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손로원(1911~1973)이 누군가. 그는 일제 치하에서 절필을 할 만큼 강단이 있는 고집쟁이로 알려져 있다. 그랬다가 해방과 함께 손석봉이 부른 <귀국선>(1946·이재호 작곡)을 필두로 활동을 재개했다. <물방아도는 내력>(1953·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홍콩 아가씨>(1952·이재호 작곡, 금사향 노래), <님 계신 전선>(1953·박시춘 작곡, 금사향 노래), <경상도 아가씨>(1953·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봄날은 간다>(1953·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1956·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 등 명곡들을 작사했다.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서민의 심정을 대변하고 그들의 애환이 절절히 녹아있는 가사로 사랑을 받았다.

 

 

                          금문교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샌프란시스코> 1절 가사

 

 전쟁 피란민의 애환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1953·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에도 요령부득의 표현이 나온다. 2절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가 이상하다. ‘고향이 그리워 꿈을 꾼다’는 뜻으로 쓴 걸로 추측되긴 한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문법이탈형

 

 이문세의 <옛사랑>(1991)은 작사·작곡자 이영훈이 “이 곡의 가사를 쓰고 난 후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가사에 애착을 표시했던 노래다. 가사 소절마다 떠나간 옛사랑의 추억이 절절하게 흐른다.

 

 

이문세의 <옛사랑>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거리 흰 눈에 덮혀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중략)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하략)
                                                           <옛사랑> 가사

 

 그런 만큼 더더욱 셋째 줄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란 표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여미우다’는 ‘남의 옷을 여미게 하다’란 뜻이므로 여기선 맞지 않는 표현이다. 가사를 보면 자기 옷깃을 여미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미다’ 또는 운율을 맞추려면 ‘여미다가’가 맞다. ‘여미우다’처럼 ‘-우-’ 같은 접사(接辭)가 들어간 동사를 사동사(使動詞)라고 하는데, 사동사란 ‘남에게 그 행동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다.【주3】

 

 이런 가사는 어떤가. <남성 넘버원>(1958·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박경원 노래)에서는 “남에겐 친절하고 겸손을 하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굳세어라 금순아> 1절에서는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3절에서는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본들’ 등 불필요하고 부자연스런 ‘을·를’이 첨가됐다. 신카나리아의 <무궁화 강산>(1932·전수린 작사 작곡)도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아라”라고 운율을 맞추기 위해 ‘를’을 붙였다. 이 노래는 해방 후 <삼천리 강산 에라 좋구나>로 제목이 바뀌었다.

 

 노래엔 날다(飛)란 말이 자주 쓰인다. 그런데 이 단어를 서술언으로 ‘나는’으로 변형하면 거의 예외 없이 ‘-으-’를 첨가해 ‘날으는’이라고 쓴다.
 이태원은 <솔개>(1982·윤명환 작사 작곡)에서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이라고 했다. 이정선은 <섬소년>(1974·이정선 작사 작곡)에서 “바다 저 멀리 갈매기 날으면/ 소년은 꿈속의 공주를 불렀네”라고 노래한다.
가곡이면서 윤연선도 부른 <얼굴>(1967·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 2절엔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이라고 돼있다.

 

 김홍석은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이 노랫말 중 ‘날으는’은 ‘나는’으로, ‘날으면’은 ‘날면’, ‘날으던’은 ‘날던’으로 고쳐 써야 옳다. 이 중에서 ‘날으는’의 경우는 ‘나는’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이는 1인칭 대명사 ‘나’와 보조사 ‘는’이 붙은 형태와 똑같다. 따라서 문장 속에 구현되는 경우,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언중들은 의도적이거나 그 역으로 무의식중에 ‘날으는’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어 이런 혼동을 막기 위해 예외적 변용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놀다, 살다’ 등도 ‘놀으는, 살으는’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주4】

 

 ‘여울진다’란 노랫말도 정체불명으로 쓰일 때가 있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으로, 급류와 비슷한 뜻이다. 따라서 여울지다는 ‘여울처럼 감정 따위가 힘차게 설레거나 움직이다’라는 뜻이 된다. 이선희는 <J에게>(1984·이세건 작사 작곡)에서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J 지난 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속 깊이 여울져 남아있네”라고 노래했다. 손색없는 용례다.

 같은 이선희가 부른 <나 항상 그대를>(1988·김민정 작사, 송시현 작곡)에도 여울지다가 나온다. “나 항상 그대를 그리워 하는데 그대는 어디로 떠났나/ 다정한 그 모습 눈물로 여울져 그대여 내게 돌아와요.” 이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나미

 

 

 나미의 댄스음악 <빙글빙글>(1984·박건호 작사, 김명곤 작곡)에도 나온다.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여기서는 세월이 여울져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굉장히 모호하다. 그런 채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스팝이라는 이 노래는 레전드가 되어 오늘도 불리고 있다.


 조용필은 <슬픈 미소>(1980·유현종 작사, 조용필 작곡)에서 “장미꽃 피는 날엔 돌아오마던 당신/ 여울지는 꿈속에서 그 미소를 찾아 헤맸지”라고 한다. 이것도 ‘여울지다’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말이다.

 

 뇌 과학자의 변호

 

 미국의 뇌 과학자이자 레코드 프로듀서인 대니얼 레비틴은 노랫말과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미국 록그룹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1976)를 두고 자신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상당히 긴 이 노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의견이 분분했다. 여기 나오는 ‘호텔’이 사이비 종교단체, 마약 또는 미국을 상징한다는 둥, 퇴폐한 미국 사회에 대한 경종이라는 둥…. 한데 음악 전문가인 레비틴도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돈 헨리(이글스의 보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른다고 해서 ‘원할 때면 언제라도 체크아웃해/ 하지만 떠날 수는 없어(You can check out any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하는 대목의 정서적 울림이 퇴색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즉 리듬, 선율, 화성, 음색, 가사, 의미가 노래에서 하나로 묶이기 때문에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애매하고 모순된, 혹은 노골적으로 얼버무린 대목이 등장해도 몇몇 요소가 이를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의미가 완벽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청자들이 각자 자발적으로 노래의 이해과정에 참여한다”고 썼다. 바로 그것이 노래가 엄청난 위력을 행사하는 이유라고 했다.【주5】
 

 

 난해하고 알아먹기 힘든 가사에 대한 레비틴의 태도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알쏭달쏭한 가사라도 통하며, 그렇다고 해서 노래의 위력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노래는 문학도 시도, 그렇다고 엄정한 학술논문도 아니며 그냥 노래일 뿐이다. 애써 고상해 보이려 할 필요도 없다.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다. 정답은 없다. 자유다. 그럼에도 다양한 가사 오류 사례들을 살펴본 이유는 그것이 관행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으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이란 고통스런 작업에 흠집을 내자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가사도 중요하지만 틀리지 않은 가사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는 거다.


 <월남의 달밤>(1966·반야월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 노래)란 곡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원래 노래 가사가 ‘남 남 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시작됐다. 월남이 섬나라가 된 거다. 나중 음반 제작사는 발매된 음반을 전량 폐기하고 새로 녹음을 했다. 가사를 ‘남 남 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수정해서였다.【주6】최희준이 부른 <내 사랑 쥬리안>(1961·손석우 작사 작곡)의 실수도 어처구니없다. 여기선 엄연히 서양 남자 이름인 쥬리안이 여자(‘내 사랑 쥬리안은 마음씨 고운 여자’)로 나온다.


 지금 시대에 그런 ‘촌스런’ 실수는 빚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복병이 생겨났다. 가사에 영어를 남용하는 문제다. 글로벌 시대에 자연스런 현상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 일부 언더그라운드 록그룹들은 ‘영어로 가사를 지으면 괜찮아 보이는데 한국어로 지어놓으면 왠지 유치하다’는 말도 한다.【주7】게다가 영어답지 않은 영어가사도 많다.

 

                                                        투르게네프

 

 “의혹의 날에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날에도 너만이 나의 안식처요, 의지였다. 강하고 참되며 자유로운 러시아어여! 네가 아니었다면 고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어떻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군들 그런 언어가 위대한 민족에 대한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러시아 최고의 미문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러시아어’란 시다. 이 정도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가 자기 말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주1】매일신문 웹페이지 2012년 5월 31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진방남 편
【주2】이영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민음인, 2002) 82쪽
【주3】김홍석의 논문 ‘대중가요 노랫말 속의 정서법 소고(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2007)’ 17쪽. 이 글을 쓰는 데는 이 논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현재 천안여고 국어교사로 재직중이다. 그는 비슷한 예로 이종용의 <너>(은빛처럼 날리우고  되돌아선), 조용필의 <태양의 눈>(구름에 가리워진 희미한 꿈)을 들었다. 여기서 ‘날리우고, 가리워진’은 ‘날리고,  가려진’으로 써야 올바른 표현이다. “이렇게 노랫말에서 곡의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을 위해 ‘-우-’를 첨가하는 경우는 흔한 편이며, 시어(詩語)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행 맞춤법으로는 옳지 않은 표현이다.”
【주4】같은 논문 19쪽
【주5】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 39~40쪽
【주6】이동순, 번지없는 주막(도서출판 선, 2007) 169~170쪽
【주7】이영미, 전게서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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