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노래들
1960년대에 ‘돈보다 사람이 먼저’임을 일깨우는 노래가 나왔다. 남진이 부른 <사람 나고 돈 났지>(1969·이성재 작사, 백영호 작곡)다. 속담을 동원해 돈을 사람보다 중시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돈이란 돌고 도는 거라며.
사람 나고 돈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 드냐
급하면 돌아가라 말이 있듯이/ 부귀영화 좋다지만 덤벼선 안돼
돈이란 돌고 돌아 돌아가다가/ 누구나 한번쯤은 잡는다지만
허겁지겁 덤비다는 코만 깨지고/ 잡았다고 까불다는 사그라진다
사람 나고 돈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 드냐…(하략)
<사람 나고 돈 났지> 가사
이에 앞서 김상국이 1965년 부른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에도 똑같이 ‘돈이란 돌고 돌아’란 표현이 나왔다. 돈이란 돌고 돌아 없다도 있는데, 돈 없다고 괄세 마라고 한다.
쥐구멍도 볕들 날 있소 하 하 하 하
돈 없다 괄세마오 무정한 아가씨/ 캄캄한 쥐구멍도 볕들 날 있소
모를 건 사람의 팔자라고 하는데/ 그렇게 쌀쌀할 건 없지 않겠소
돈이란 돌고 돌아 없다도 있는데/ 세상을 그 뉘라서 알 수 있갔소
꽃이란 시들면 아무 소용없는데/ 무정한 아가씨들 괄세를 마소
하 하 하 하 하 하 하…(하략)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가사
그런가 하면 김용만은 <회전의자>(1964·신봉승 작사, 하기송 작곡)에서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한다. 옛날엔 회전의자가 출세를 은유하는 말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
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버렸다/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하략) <회전의자> 가사
<월급 올려 주세요>(1963·안희진 작사, 백영호 작곡, 도민호 노래)란 더 직설적인 노래도 있었다.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이것 참 미안하지만/ 월급을 올려주세요 박사장
황소같은 자식놈이 여덟명인데/ 부모님 합쳐서 열두 식구입니다
물가는 비싸지고 자식들은 커져서/ 정말로 살아가기 힘드니 어찌합니까
사장님 사장님 미안하지만/ 월급을 올려주세요 박사장 박사장…(하략)
<월급 올려 주세요> 가사
이 노래는 박정희 정권 최초의 금지곡이 됐다. 곡이 나오자마자 레코드사 대표 등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노랫말의 ‘박사장’이 박정희 장군을 지칭하고 ‘황소 같은’에서 황소가 당시 집권 공화당의 로고라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선 1962년 방송윤리위원회가 발족해 방송가요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 이 곡 등 116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된 게 가요 검열의 시작이다.【주1】
1960년대에 나온 이 노래들엔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배금주의에 물든 세상을 개탄하고, 심지어 월급이 적다고 항의까지 하고 있다. 개탄과 항의의 수준이 초보적이긴 하다. 가사가 다분히 교훈적이고 해학적인데, 그건 그만큼 낙관적 정서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란 말은 출세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패자부활전마저 봉쇄된 세상이라면 그 말마저 생뚱맞다. 이영미는 “서민들의 계층상승 욕망과 결핍으로 인한 아픔 역시 이 시대의 대중가요는 담고 있다. 이러한 욕망의 표현은 비교적 솔직하며, 그러면서도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한다.【주2】
노래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비단 노래만이 아니다. 예술가 자신이 사회 밖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이상 모든 예술가의 창작 속에 사회적 현실과 정치적 상황은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주3】특히 대중과 애환을 함께 하는 가요가 시대현실과 솔직히 대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모든 가요가 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할 까닭은 없다. 사랑의 노래는 그것으로 족하다. 거기에 괜시리 사회적 의미를 덧칠하면 도리어 역효과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키는 노래,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노래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메시지와 질문의 동력을 나는 비판, 분노,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열매>를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
이상한 열매, 이매진
눈을 외국 가요로 돌려보자. 1939년 미국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에이벨 미어로폴 작사 작곡)를 불러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남쪽지방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렸네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이파리에 묻은 피와 뿌리에 고인 피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검은 몽뚱이가 남풍을 받아 건들거리네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이상한 열매가 포플러 나무에 매달렸네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당당한 남부의 전원적인 풍경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부어오른 눈과 뒤틀린 입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목련의 향기 달콤하고 신선한데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어디선가 풍겨오는 살 타는 냄새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여기 까마귀들이 뜯어먹을 열매가 있네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비를 모으고 바람을 빨아들이는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햇볕에 썩어 문드러지고 나무에서 털썩 떨어질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여기 이상하고 쓰디쓴 열매가 하나 있네
<Strange Fruit> 가사
이 노래에서 ‘이상한 열매’는 흑인들의 시체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실제로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1930년 미국 인디애나 주 마리온에서 흑인 청년 두명이 백인을 강도·살인·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성난 백인들이 이들을 끌어내 린치하고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누군가 흑인들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진을 찍고 팔아 전국에 퍼졌다. 백인 교사이자 시인인 에이벨 미어로폴이 이 사진을 보고 분노해 시를 썼다. 그리고 나중에 곡까지 붙였다. 그게 이 노래다.
이 노래를 당대의 재즈 디바 빌리 홀리데이가 뉴욕의 나이트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불렀다. 비참한 노래를 담담하게 기도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불렀다. 큰 반향이 일어났다. 그해 음반 백만장이 팔려나갔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1999년 <Strange Fruit>를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선정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존 레논(1940~1980)은 국가, 소유,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고 호소하는 노래 <Imagine(상상해보세요)>(1971)를 불렀다. ‘Imagine no possessions(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란 가사에선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라는 인식까지 드러난다. 소유, 즉 부(富)가 자본주의의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황당하다. 하지만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노래니까 이런 황당한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다.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It’s easy if you try
쉽게 할수 있는 일이지요
No hell below us
우리 발밑에 지옥은 없고,
Above us only sky
머리 위엔 하늘 뿐이라고 말이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모든 사람들이 지금을 위해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It isn’t hard to do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Nothing to kill or die for
누군가가 죽거나 죽을 필요도 없고
And no religion too
종교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고 하겠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걸요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언젠간 당신도 함께 하기를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온 세상이 하나 되기를
Imagine no possessions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I wonder if you can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No need for greed or hunger
욕심도 궁핍함도 사라지고
A brotherhood of man
모두 형제처럼 살 수 있겠죠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나눈다고 생각해보세요
…(하략) <Imagine> 가사
존 레논은 아내 오노 요코와 반전과 평화 운동에 앞장서며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영국이 미국의 월남전을 지원하자, 몇 해 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았던 대영제국 공로훈장을 1969년 미련 없이 반납했다. 1970년 <Working Class Hero>란 곡에는 욕설까지 적나라하게 담아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현실을 비판했다.
비소츠키, 빅토르 최
미국·영국 대중음악에만 사회비판이 있는 게 아니다. 러시아에도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빅토르 최 같은 가수들이 있었다. 비소츠키(1938~1980)는 소련 체제 속에 살면서도 체제를 거스르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강제노동수용소(굴라크)도 건드렸고, 전쟁문제를 풍자적으로 다뤘다. 당연히 전쟁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정서를 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참전군인들은 비소츠키의 노래가 공식적 ‘애국’ 송가보다 더욱 정확하게 전쟁의 진실을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의 노래는 거의 일인칭이지만, 그가 해설자로 나오는 건 아니다. 범죄자에 관해 노래할 때 그는 액센트와 억양을 모스크바 도둑처럼 흉내 냈다. 옛날이었으니까 가능한 얘기겠지만, 이게 너무 그럴 듯 했기 때문에 활동 초기엔 많은 팬들이 그가 범죄자이거나 참전자 출신일 거라고 착각했다. 참전자들은 작사자가 자기들과 함께 전투를 벌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산악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비소츠키는 산에서 숨진 사람들의 묘비에 그의 노래 가사가 새겨진 사진들을 여러 차례 선물 받았다. 당연히 권력에게 미운털이 박혀 소련 음반 독점회사인 멜로디야에서 레코드 제작을 할 수 없었다.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녹음 질이 나쁜 음반이 유통됐지만 인기는 매우 높았다. 우주비행사들까지 그의 노래 카세트를 갖고 우주로 나갔다고 한다.【주4】
비소츠키의 <길들여지지 않은 말들> /유튜브
비소츠키의 노래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길들여지지 않은 말들(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1971)을 소개한다. 이 노래는 영화 ‘백야(1985)’에도 쓰였고 2014년 우리 드라마 ‘미생’에서도 등장해 비교적 친숙하다. 영화배우이기도 했던 비소츠키는 그해 블라디미르 오브루체프의 과학 픽션에서 주연을 맡기로 해 이 곡을 만들었는데 주연 역할은 갑자기 취소됐고 파멸적 서사를 담은 이 노래만 그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러시아어 해독자를 위해 원어 가사를 병기한다.
Вдоль обрыва, по-над пропастью, по самому краю
계곡 안 틈새, 좁디 좁은 언저리를 따라
Я коней своих нагайкою стегаю, погоняю
나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리네, 세게 세게 내려치며
Что-то воздуху мне мало, ветер пью, туман глотаю,
숨 쉴 공기가 없어 바람을 마신다, 안개를 삼킨다
Чую, с гибельным восторгом, пропадаю, пропадаю
죽음의 황홀경에 빠질 것 같다, 길을 잃고 길을 잃고
Чуть помедленнее, кони, чуть помедленнее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Вы тугую не слушайте плеть
예전 너를 옥죄던 가죽끈은 잊어버려
Но что-то кони мне попались привередливые,
하지만 이 놈의 말들은 시키는대로 하질 않아
И дожить не успел, мне допеть не успеть
그러니 내겐 살아갈 시간도, 노래 부를 시간도 없네
Я коней напою,
이 놈들이 물을 마시게 해야지,
Я куплет допою,
그래야 난 이 노래를 마저 부를 수 있다
Хоть немного еще постою на краю
그럼 난 조금 더 살아있을 수 있겠지
Сгину я, меня пушинкой ураган сметет с ладони,
흉폭한 회오리바람이 나를 쓸어안아 마치 파편처럼 흩날려버린다
И в санях меня галопом повлекут по снегу утром
아침이면 난 썰매에 끌려 뒹굴고 있을 거야
Вы на шаг неторопливый перейдите, мои кони
천천히 달려다오, 내 말들아, 차분하게 달려다오
Хоть немного, но продлите путь к последнему приюту
그리하여 나의 여정이 마지막 은신처에까지 이를 수 있게 해다오
Чуть помедленнее, кони, чуть помедленнее
말아,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자꾸나
Вы тугую не слушайте плеть
예전에 너를 옥죄던 가죽끈은 잊어버려
Но что-то кони мне попались привередливые,
하지만 이 놈의 말들은 시키는대로 하질 않아
И дожить не успел, мне допеть не успеть
그러니 내겐 살아갈 시간도, 노래 부를 시간도 없네
Я коней напою,
이 놈들이 물을 마시게 해야지,
Я куплет допою,
그래야 난 이 노래를 마저 부를 수 있다
Хоть немного еще постою на краю
그럼 난 조금 더 살아있을 수 있겠지
Мы успели в гости к богу не бывает опозданий
우린 제 시간에 도착했지만, 신의 궁전에는 늦은 이를 위한 자리가 없다…(하략)
<길들여지지 않은 말들(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 가사
빅토르 최의 <그루파 크로비> /유튜브
빅토르 최(1962~1990)는 비소츠키의 다음 세대이면서 솔로 가수가 아닌 록 밴드 키노의 리더였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중요한 공통점은 그 역시 반전과 사회개혁, 변화를 희구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소련 말기 음악과 사회에 끼친 충격과 영향도 엄청나게 컸다.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45’란 이름의 첫 앨범부터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물론 삼이즈다트(지하출판)였다. 가령 <엘렉트리치카(교외 통근열차)>(1982)란 곡은 자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가는 열차에 갖혀버린 사람에 대한 얘기다. 명백하게 소련에서의 삶을 은유한 것이었다. 즉각 이 노래 연주는 금지됐다. 그러나 빅토르 최와 키노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진다.
반전 노래 <나는 내 집을 선포한다(핵 청정 지대로)>(1983-?)는 진행중인 아프간 전쟁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고르바초프 집권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뒤인 1986년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를 불러 사회 분위기를 견인했다. 이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기존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라고 촉구하면서 키노의 이름을 전소련에 퍼뜨렸다. 1987년 발표된 다섯 번째 앨범 ‘그루파 크로비(혈액형)’는 ‘키노마니아’란 말까지 낳았다. 같은 제목의 타이틀 곡 <그루파 크로비>는 오랫동안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피폐해진 소련의 현실을 고발하고, 전쟁을 혐오하는 민심을 대변하고 있다.
Теплое место, но улицы ждут
따뜻한 곳, 그러나 거리는 기다린다
Отпечатков наших ног
우리의 발자국을
Звездная пыль - на сапогах
구두 위에는 별의 먼지
Мягкое кресло, клетчатый плед,
푹신한 안락의자, 체크무늬의 커버
Не нажатый вовремя курок
때맞춰 당겨지지 못한 방아쇠
Солнечный день - в ослепительных снах
찬란한 꿈속의 햇볕 내리쬐는 날
Группа крови - на рукаве,
소매 위에는 혈액형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в бою, пожелай мне:
전투에서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나를 위해 빌어다오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풀밭에 남겨지지 않기를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풀밭에 남겨지지 않기를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나의 행운을,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И есть чем платить, но я не хочу
값을 치를 것은 있다 해도 싫다
Победы любой ценой
크든 작든 희생을 치루고 얻는 승리를 원치 않는다.
Я никому не хочу ставить ногу на грудь
나는 누구의 가슴도 짓밟고 싶지 않다
Я хотел бы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나는 너와 함께 남기를 원했다.
Просто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단지 너와 함께 남기를
Но высокая в небе звезда зовет меня в путь
그러나 하늘의 높은 별은 나를 길로 부른다.
Группа крови - на рукаве,
소매 위에는 혈액형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в бою, пожелай мне:
전투에서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나를 위해 빌어다오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풀밭에 남겨지지 않기를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풀밭에 남겨지지 않기를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나의 행운을,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그루파 크로비(혈액형)> 가사
빅토르 최
원치 않는 전투를 앞둔 젊은 병사의 심리를 아주 적확하게 묘파했다.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원하는 건 전투에서의 승리(러시아어로 ‘빠베다’라고 한다)가 아니라 행운(이 노래에서 쓴 ‘우다차’다)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건 풀밭에 쓰러져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쌍방이 희생을 치를 수도 있지만 그는 크든 작든 희생을 치르고 얻는 승리는 싫다고 말한다. 그저 풀밭에 남겨지지 않는 행운만 바랄 뿐이다. 참 노랫말을 솔직하게, 그리고 시적으로 잘 썼다. 이 노래가 소련 젊은이들의 가슴을 뒤흔든 이유를 알 것 같다.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2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때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신문은 이렇게 썼다. “빅토르 최는 다른 어떤 정치인, 유명인사, 작가보다도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많았다. 왜냐하면 그는 한번도 거짓말하거나 자신을 팔아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이었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인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록커가 빅토르 초이이다. 그는 노래 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주5】
마왕 논객 로커
신해철이 어쩌다 마왕이란 별명을 갖게 됐는지 모른다. 그의 유고를 묶은 책이라는 ‘마왕 신해철’을 들여다봐도 그 얘긴 없다. 짐작컨대 신해철이 마왕이라 불린 건 그의 뚜렷한 주관을 담은 직설적인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 얘기나 거침없이 내뱉었다.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한결같았다. ‘고스트 스테이션’ 등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활약하며 신랄한 발언으로 많은 팬들과 어록을 만들어 냈다. 따라서 썩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이런 마왕 같은 카리스마에 덧붙여 논객의 풍모도 보였다. 민감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발언했다. 그는 16대 대선 기간 노무현 후보 지지 활동을 했다. 노 후보 당선 뒤 지승호와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것이 자랑인 것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는 결심을 했죠”라고 말했다.【주6】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한 MBC ‘100분 토론’에도 나가 찬성 소신을 밝혔다. 언론인 손석희는 “100분 토론에서 신해철씨를 다섯 번 만났다. 그때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섰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가수였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해서 논쟁할 수 있는 논객이기도 했다”고 술회했다.【주7】그럼 록 밴드 리더, 뮤지션으로서 그의 세계는 어땠나.
그는 1994년 넥스트 2집 ‘The Being’에서 <껍질의 파괴>(신해철 작사 작곡)란 노래를 불렀다.
신해철의 마지막 무대가 된 솔로 앨범 쇼케이스, 2014. 6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숨기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은 정해져있고/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가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몸부림치면 칠수록 언제나 그 자리일 뿐/ 뛰어도 돌아도 더 큰 원을 그릴 뿐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을 핥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매이게 하라/ 그럼으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Fight! Be free!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Be free! The revolution of the mind!
껍질 속에 나를 숨기고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fight !
<껍질의 파괴> 가사
중간중간 애드리브 속주가 펼쳐지는 연주 시간 10분 가까운 대작이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란 절규, 이것이 노래의 핵심이다. 해답은 제목에 있다. 껍질의 파괴. 그 때문에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겪더라도.
이런 신해철이 정치에 대해 환멸을 갖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는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 마>(2004·넥스트 5집 개한민국)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저씨들 싸우든 말든 난 Rock’n Roll/ 남들은 싸우든 물어 뜯든 노래하자
아저씨들 싸우든 말든 난 Rock’n Roll/ 남들은 싸우든 쥐어 뜯든 난 춤추자
복잡한 여의도에서 둥그런 지붕 안에서/ 서로가 멱살을 잡고 하루 종일 놀고들 있다
매일 같이 비싼 밥 먹고 남한텐 열라 욕 먹고/ 위 아래 앞 뒤 구별 없이 놀고들 있다
뭘 하는 진 모르지 뭘 하는 진 모르지
하란 일은 절대 안하고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르고
지들끼리 둥글게 감싸고 도는 건 엄청 빠르고
울컥 솟아나는 게 온통 들려오는 게
“아,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것들 안 잡아가구”
우리 엄마 하는 얘기 귀가 닳도록/ 맘대로 살아 하고 싶은 걸 해
딱 하나, 사람처럼 살고 싶거든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 마> 가사
그러나 이 같은 환멸의 대상은 현실 정치인들이지 결코 정치 자체는 아니었다. 그는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고, 그렇게 살다 갔으므로.
1968년생인 신해철은 386세대임에도 암울한 1970년대에 대해 그 전 베이비붐 세대 못지않은 ‘추억’을 표시하기도 했다. 영화 ‘정글 스토리’ OST용으로 작곡한 <70년대에 바침>(1996)을 들어보면 그가 놀라운 ‘정치적 기억력’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평론가 강헌이 시나리오에 참여한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OST는 40만장 이상 팔렸고 지금도 명반으로 꼽힐 정도다.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가위를 든 경찰들
지금 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을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하략)
<70년대에 바침> 가사
“우리 사회가 행복하다”고 응답한 국민이 10명 중 1명뿐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주8】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양산, 기형적 갑을관계 속에, 태어난 게 저주이며 사는 게 고통인 인생이 얼마나 많이 늘고 있나. 노래는 이런 아픔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신해철을 비롯해 여러 뮤지션들이 그걸 담기 위해 노력해왔다. 세상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그런 노래가 더 나왔으면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안치환은 자신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1998·정지원 작사, 안치환 작곡)에 대해 “남녀관계 노래가 99%인 가요 판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런 노래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 이건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겐 낭만적인 사랑 노래만큼 삶의 진실을 일깨우는 노래도 필요하다.
【주1】선성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대중가요(현암사, 2008) 128쪽
【주2】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민속원, 2006) 계층상승 욕망의 솔직한 표현 196쪽
【주3】김창남 엮음, 대중음악의 이해(한울, 2012) 대중음악과 정치 178쪽
【주4】Wikipedia, Vladimir Vysotsky 2015년 1월 5일 최종 수정
【주5】Wikipedia, Viktor Tsoi 2014년 12월 22일 최종 수정
【주6】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 2014) 300쪽, 인물과 사상 2003년 2월호 재수록
【주7】같은 책 407쪽
【주8】경향신문 2015년 1월 2일자 1면 “우리 사회 행복하다 국민 10명 중 1명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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