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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가사는 시일까

 노래 가사가 뛰어난 서정성을 보일 때 ‘시적(詩的)’이라거나 한 편의 서정시 같다고 한다. 이 말에는 가사와 시를 동일시하는 생각이 담겨있다. 정말로 가사와 시는 같은 걸까, 다른 걸까.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시는 감흥과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가사는 얼마든 시가 될 수 있다.

 

 먼저 잘 알려진 서정시 한 수를 읊는 것으로 시작하자.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閏四月)’이다. 1946년 청록집에 실렸다. 7·5조의 운율로 봄철 깊은 산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냈다. 이를 위해 ‘송홧가루, 꾀꼬리, 산지기 외딴집, 문설주’ 등 향토적 정감이 짙은 시어를 선택했다. 여기에 눈 먼 처녀가 등장한다. 그는 필시 가난한 처지일 산지기의 과년한 딸인데 앞을 못 본다. 그 처녀가 문설주에 귀를 대고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엿듣고 있다. 좋은 봄날, 세상에서 고립된 채. 어떤 느낌이 드나. 토속적이면서 적막한 분위기 속에 애절·애잔함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 시는 전형적인 서정시(抒情詩·敍情詩)다. 서정시의 한자 抒와 敍는 둘 다 ‘풀어놓다’로 어느 쪽을 써도 같은 뜻이다. 시인의 개인적 감정·정서를 풀어놓은 것이 서정시다. 이 서정시에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음악성이다. 서정시에서 음악적 운율·리듬은 필수적인 요소다. 여기엔 발생학적 근거도 있다. 영어로 서정시는 리릭(lyric)인데,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리리코스(lyricos)다. 리리코스는 그리스 악기 리라(lyre)를 타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또 영어로 서정시와 노래 가사는 같은 말, lyric을 쓴다. 우리가 가사와 시를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사와 시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때로 지하철에서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는 시가 마음에 와닿지 않고 생경하게 느껴질 때 슬그머니 드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뚱맞은 시보다 훌륭한 시상을 담은 노래 가사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 그럼 시인들은 가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53년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는 가사가 빼어난 절창으로 손꼽힌다.

 

 

                                                백설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주1】

                            <봄날은 간다> 가사      

 

 오래 전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로 이 노래를 지목한 일이 있다. 계간 시인세계가 2004년 봄호에서 현역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다. 1위가 <봄날은 간다>로 16표였고, 2위가 <킬리만자로의 표범>(1986·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와 <북한강에서>(1985·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로 각각 10표였다.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는 7표로 4위, 역시 양희은의 <한계령>(1985·하덕규 작사 작곡)이 6표로 5위였다.


 이 조사는 발표된 뒤 여러 차례 인용됐는데, 정제된 문학언어인 시를 쓰는 시인들이 과연 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흥미로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요에 일정한 심리적 선을 긋고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떨어내기도 했다. 문학적 격조와 자존심에 매어있을 것 같았던 많은 시인들이 흔쾌히 드러낸 노래 취향은 상당히 다양하고 열린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가사의 선호를 묻는 조사의 특성상 빠르고 비트가 강한 댄스, 록보다는 트로트와 발라드, 포크가 많이 나오기는 했다.
 

 

 시인세계에 기고한 글에서 천양희 시인은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언니 생각이 난다고 회상했다. “언니가 잘 불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다. 사랑하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중매 결혼을 했던 그 언니는 특히 연분홍색을 좋아해서 친정에 올 때는 꼭 분홍색 옷을 입고 왔었다. 그 언니는 친정에 오면 잊지 않고 뒷동산에 있는 성황당과 암자를 찾았다. …암자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 언니의 분홍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앞서 가던 언니가 나지막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봄바람에 휘날리던 연분홍 치마와, 언니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가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나도 조금 울 때도 있다.”


 이동순 교수도 자신의 책에서 누나를 추억한다. “1950년대 후반의 어느 꽃 피는 봄날, 백설희의 노래를 유달리 좋아하던 누님은 이 노래를 부르다 기어이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나도 공연히 서러운 마음이 가득해져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렸다. 나는 그때 누님이 왜 울음을 터뜨렸는지 아직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라는 노랫말 속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사연이 혹시 있었던 것일까?”【주2】


 천 시인과 이 교수의 언니·누나에 대한 추억에서 절묘하게 겹치는 것은 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울었다는 사실이다. 왜 울었을까. 이동순은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른다고 했지만, 천양희는 ‘우리네 여인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서라고 짐작했다. 그럴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들을 때면 가장 한국적인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게 되는 것이 우리 여인들의 보편적 정서였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봄날은 간다>엔 동명이곡(同名異曲)이 있다. 젊은 세대들은 ‘봄날은 간다’라고 하면 이 노래를 먼저 떠올린다.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김윤아 작사, 마츠토야 유미 작곡)가 그것이다. 2001년 한일 합작투자로 만든 동명 영화의 엔딩 타이틀곡이었고, 혼성밴드 자우림 보컬 김윤아의 솔로 데뷔곡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백설희의 노래도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유지태와 이영애가 주연해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호평 받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라면 먹고 갈래요?”가 명대사로 기억되는 영화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중략)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음…
                  <봄날은 간다> 가사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떠나간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정한(情恨)의 표출이었다면,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나눈 사람들을 그린 담백한 수채화 같다. 노래엔 사랑이란 말도 안 나온다. 즉 백설희 노래에서 느껴지는 한 같은 것은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사람’이 차지했다.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이 아니라, ‘그건 아마 사람도…’다. 하긴, 사람이든 사랑이든 상관없지 않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게 사랑이니까. 그러기에 만해도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김윤아의 이 노래 가사도 시인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카카오뮤직과 문학과지성사가 지난해 시인 14명에게 2000년 이후 노래 중 아름다운 노랫말 5곡씩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여기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2004·이소라 작사, 이승환 작곡),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2010·요조 작사 작곡), 김광진의 <편지>(2008·허승경 작사, 김광진 작곡),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2005·루시드폴 작사 작곡), 델리스파이스의 <고백>(2003·김민규 작사 작곡),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2008·윤덕원 작사 작곡), 그리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뽑혔다.

 
 한 두 곡 빼곤 내겐 대부분 생소한 노래들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이 확인된다. 요즘 노래가 서정성이 사라지고 음유시인도 보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건 부분적 진실일 뿐이며 지나친 일반화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심금을 울리고 누선을 자극하는 서정시 수준의 가사는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점에 대해서는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조탁한다는 시인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
 

 

 사실 가사와 문학, 시 사이에는 무슨 단단하고 높은 벽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가요사를 보더라도 일제시대에는 작사가에는 전문 작사가와 기성 문인 출신 작사가 등 두 부류가 공존했다. 기성 문인들인 이광수, 주요한, 김억, 이서구, 정인섭, 박영호, 김용호, 조명암, 윤극영, 이하윤, 박노홍 등이 ‘가요시(가사)’ 작품을 썼다.【주3】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1970년대 기념비적 저항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75)에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 이성현이 곡을 붙였고 1997년 안치환이 노래했다.

 

 

                                                          일러스트 권신아

 

 

 내 머리는 너을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새벽에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가사

 

 또 정지용의 ‘향수’를 박인수, 이동원이 불렀다(1989·김희갑 작곡). 김현수의 ‘토함산’을 송창식이(1978), 고은의 ‘세노야’를 양희은이(1971·김광희 작곡),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를 송창식이(1976) 노래했다. 박두진의 ‘해야’를 조하문이 개사해 불렀고(1987), 고은의 ‘가을편지’를 김민기가(1971), 정호승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안치환이(1990), 김동환의 ‘산넘어 남촌에는’을 박재란이(1965·김동현 작곡), 고은의 ‘작은배’를 조동진이(1974),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마야가(2003·우지민 작곡) 불렀다. 김광섭의 ‘저녁에’를 유심초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으로(1980·이세문 작곡) 부르는 등 시를 노래로 만든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가수, 특히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생각은 어떨까.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은 <꿈>(1991) 등을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하는 노래에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반투명 정도의 말들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시적이어야 하고, 패션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주4】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가사 등을 통해 만만치 않은 서정시의 감각을 발휘해온 정태춘은 이렇게 말했다. “노랫말의 문학성이랄까, 노래가 붙지 않더라도 글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고 있는 가사, 튼튼한 상징과 허술하지 않은 스토리 구조 등을 가진 가사를 쓰고 싶었습니다.”【주5】실제로 그는 2004년 ‘노독일처(老獨一處)’란 시집을 내기도 했다.

 

 트윈폴리오의 윤형주는 이런 술회를 한 적이 있다. “노래가 자꾸 히트를 치다 보니 작사 작곡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버지(윤영춘 박사)에게 말했죠. ‘동주 형님(윤동주 시인) 시를 제가 작곡을 잘해서 노래로 발표해보겠습니다.’ 아버님이 생각을 한참 하시더니 ‘얘야 시 다칠라’ 하시면서 ‘시도 노래다. 시도 음이 있고, 화음이 있고, 리듬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주6】

   알려진대로 윤형주는 윤동주 시인(1917~1945)의 6촌 동생이다. 조영남은 “윤동주가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을 때 유골을 들고 온 사람이 형주 아버지 윤영춘 박사였다는 소리를 나는 여러 번 들었다”고 술회했다.【주7】이 일화는 윤형주의 아버지도 시와 노래를 크게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윤동주의 시를 대중가요로 만들었다가 행여 ‘민족시인’의 위상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가사가 시라는 인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가요시, 노래시란 말이 사용되는 것이 증거다. 가요시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이하윤(1906~1974)으로, 그는 시인·영문학자이자 다수의 신민요, 가요 작사가이기도 했다. 그는 1930년대에 가요시 창작에 몰두했다. 시집 ‘물레방아’(1939)엔 ‘가요시초’가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또 가요시의 문학사적 의의를 가장 먼저 주목한 국문학자는 조지훈(1920∼1968)이다. ‘한국문화사서설’(1964)에서 가요시의 정확한 정리를 후학들에게 간곡히 요망하고 있다.【주8】<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을 쓴 원로 작사가 반야월(1917~2012)도 가사를 즐겨 가요시라고 표현했다. 이동순은 노랫말은 민중들의 생활시라면서 이 가요시 장르가 현대문학사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포종점>의 작사가 정두수는 가사 대신 노래시란 표현을 자주 쓴다.
 

 

 국내 유일의 아트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김두수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 “당신의 노랫말은 멜로디를 떼어내면 한편의 시로 평가받는다. 시집을 낼 생각은 없는가”란 질문이 던져졌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없다. 시 자체는 고유의 음률을 가지고 있어 노래가 될 수 있지만 노래 가사는 음가를 생각하고 작업한 글이기 때문에 멜로디를 떼어내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주9】시와 가사는 별개란 그의 논리는 상당히 독보적인 것 같다. 그는 시와 가사가 청각예술이란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은 시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반면 멜로디·음악이 없는 가사는 독자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가 학창시절 도보여행 중 얻어냈다는 아래의 <나비>(1988)나 <보헤미안>(1991) 같은 가사를 보면 그 말이 겸손하고 엄밀한 성격의 소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두수의 <나비> 유튜브

 

 

 저물녘 바위 밭에 홀로 앉아 그윽히 피리를 불 때
 어데선가 흰나비 한 마리 날아와 피리 끝에 앉았던 기억
 에헤라 내가 꽃인줄 알았더냐, 내가 네님인 줄 알았더냐
 너는 훨훨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꽃을 찾아가거라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한 송이 꽃
 나비처럼 날아서 먼 하늘로 그저 흐느적 날고 싶지
 에헤라 내가 꽃인줄 알았더냐, 내가 네님인 줄 알았더냐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나비처럼 날고 싶지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흐느적 날고 싶지
                           <나비> 가사

 

 전윤호 시인은 계간 시인세계의 설문조사를 분석한 글에서 “시와 가사가 일맥상통한다고는 하나 시인들이 좋아하는 가사들은 자신들이 쓰는 시에 비해 어느 정도 감정의 과잉이나 감상적인 측면이 용납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가사와 시의 차이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깎고 또 깎아야 하는 시보다는 아무래도 노랫말이 더 여과 없는 감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지당한 분석이다. 가요는 예술성 못지 않게 대중성이 중요하다.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심오함을 버리고 경박함을 취해야 할 때도 있다. 노래는 유치한 게 강점이 될 수 있다. 시와 가사에는 그런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문학 대 유행가 가사라는 낡은 이분법도 극복할 수 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크리스토퍼 릭스는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1962)>를 부른 전설적 포크 가수 밥 딜런에 대해 대시인인 엘리엇, 키츠, 테니슨과 같은 반열에 놓고 정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 그의 작품을 분석한 500쪽 짜리 ‘딜런의 죄악에 대한 통찰력(Dylan’s Visions of Sin)’이란 제목의 책에서다. 영국 계관시인 앤드류 모션 경은 각급 학교에서 그의 노랫말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주10】우리도 더욱 훌륭한 음유시인들과 아름답고 친근한 노래시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주1】이동순에 따르면 이 노래 가사 2절은 SP음반 발표 당시 두 번째 형태였으나, 언제부턴가 세 번째 형태로 개작되어 불리고 있다. 이동순, 번지없는 주막(도서출판 선, 2007) 386~387쪽
【주2】같은 책 388쪽
【주3】같은 책 226쪽
【주4】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도서출판 선, 2009) 조용필 213쪽
【주5】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정태춘 187쪽
【주6】같은 책 윤형주 61쪽
【주7】조영남·이나리, 쎄시봉 시대(민음인, 2011) 171쪽
【주8】이동순, 번지없는 주막 173쪽
【주9】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김두수 370쪽
【주10】Wikipedia, Bob Dylan 2015년 1월 16일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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