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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4 [서평]주름진 마음 비추는, 그대의 ‘18번’은 뭔가요?
  2. 2015.04.08 서문
  3. 2015.04.01 목차
  4. 2015.03.30 복고풍, 왜 다시 부나
  5. 2015.03.25 블루스와 우리 노래의 한

 

 

[책과 삶]주름진 마음 비추는, 그대의 ‘18번’은 뭔가요?


 

ㆍ노래가 위로다
ㆍ김철웅 지음 | 시사인북 | 351쪽 | 1만5000원

“유행가가 다 내 얘기처럼 들려. 저 노래 가사가 내 심장을 도려내는 거 같아.”

청춘의 한 시절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선술집에 마주앉았을 때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늘 팝송만 듣던 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를 듣다가 꺼이꺼이 울었다.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이었다.

김철웅의 책 <노래가 위로다>는 ‘갈 곳 없는 이들을 사로잡는 대중가요의 사회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재작년 말 신문사 논설실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그는 “세대 불문하고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노래라는 생각에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 곡으로 위로받은 에피소드로 책을 시작한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라고 노래한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었다.

노래로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하는 ‘K팝의 나라’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노래 천지다. 한 집 건너 노래방이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으며, 실용음악과만 수십 곳이다. 누구에게나 노래는 추억이고, 낭만이고, 삶의 활력이다. 그래서 실연당한 청년이나 정년을 앞둔 논객이 트로트 곡에 ‘꽂힌’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러시아 특파원과 신문사 논설위원을 지내면서 명칼럼니스트로 이름이 높았던 저자가 노래를 텍스트로 책을 냈다는 건 의외다. 저자의 국제부 기자시절 데스크였던 표완수씨(시사주간지 ‘시사인’ 대표)는 ‘추천의 말’에서 “김철웅과 대중가요의 미스매치 때문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이어 “당혹과 낯섦이 놀라움으로 바뀌고 이내 감탄과 공감을 불러왔다”고 술회한다.


남인수에서 2AM, 이난영에서 씨스타까지. 대중음악평론가도 아닌 저자는 300여곡의 대중가요를 불러내서 위로이자 사랑이고, 저항이자 일상인 노래를 이야기한다. 때로 러시아문학과 클래식 이야기가 곁들여지고, 노랫말의 탄생배경을 시대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여, 노래가 곧 ‘위대한 기록’이자 ‘대중들의 쉼터’임을 입증해낸다.


1970년대 말 노래모임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멤버로 무대에도 섰던 저자는 탁월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숨어있는 노래들을 찾아내 독자에게 펼쳐보인다. 저자는 베이비부머가 ‘낭만에 대하여’(최백호)로, 88만원세대는 ‘싸구려커피’(장기하)로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또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들으면서 첫사랑을 떠올리듯 모든 사람들에게 노래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이영훈의 곡 ‘옛사랑’(이문세)처럼 대개의 사랑노래가 슬픈 건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이치와 같다고 설명한다.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조영남 ‘딜라일라’)가 “오늘밤 나는 보았네. 그녀의 불 꺼진 창을”(이장희 ‘불꺼진 창’)로 변주되듯 노래도 꼬리를 문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 책은 노래를 텍스트로 기자의 시각에서 쓰인 사회비평서이자 문화비평서다. 젊은이들에게는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팍팍한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중년들에게는 사랑과 추억을 호명하며 당당하게 노년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책이다.

<경향신문 오광수 기획에디터 oks@kyunghyang.com>


 

입력 : 2015-11-06 2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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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노래가 위로다 2015. 4. 8. 21:49

 어떤 노래나 시구가 머리 속에 들어와 좀처럼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는 <마포종점>이란 노래가 그랬다. 재작년 말 퇴직을 앞두고서였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는데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런 시작 부분이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그때까지 필자는 이 노래를 은방울자매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른 트로트곡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 가사가 별 대책 없이 퇴직을 맞는 필자의 정서에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노래 속에서 화자는 갈 곳 없는 전차의 처지에 공감한다. 그리고 필자는 다시 그 심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화자와 전차, 필자를 한데 묶어준 것은 ‘갈 곳 없는’ 처지란 정서였다. 이 경우 작자와 노래(화자), 노래와 듣는 사람 사이에서 감정이입이 중층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것은 <마포종점>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 감흥을 예로 든 것일 뿐, 노래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공감을 매개하고 위로를 전달한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다. 인간에게 ‘호모 ○○’이라고 여러가지 학명을 붙이는데,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음악적 인간)’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은 그만큼 음악과 가까운 존재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좋아하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어보라. 누구나 한두 개 정도는 꼽을 것이다.


 이 책은 칼럼 형태로 자유롭게 쓴 가요 비평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세 가지 주안점(主眼點)을 설정했다. 첫째는 ‘노래가 위로다’라는 것으로, 책의 주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살아가는 데는 위로가 필요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 애별리고(生老病死 愛別離苦) 때문에 그렇고 여러가지 사회적·정치적 사건들 때문에 그렇다. 신문기자 출신인 나는 요즘 신문을 읽으며 좋은 뉴스, 나쁜 뉴스를 분류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데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들이다. 한탄스럽고 울화가 치밀게 하는  소식들이다. 이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말도 된다.
 물질적으론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세상살이는 더욱 팍팍해지고 힘겨워졌다. 세대 불문하고 그렇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찾은 일자리래야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것들이 대다수다. 긴 불황 속에 기성세대의 삶도 불안의 연속이다. 노인들의 행복도도 OECD 최저 수준이다. 갑의 횡포에 시달리는 을들에 관한 기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시대와 사회에서 그나마 손쉽게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생각이 이 책을 쓰게 했다. 돌이켜보면 노래는 시대의 굽이굽이마다 사람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일제 때 나온 트로트부터 포크 중심의 7080 노래들, 90년대 발라드까지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불러온 ‘흘러간 노래’들은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데 더없이 좋은 도구다.

   물론 그 위로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위로는 노래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건 문제 해결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위로라고 해서 그 의미를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니다. 노래가 할 수 있는 것, 노래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것이다. 대중의 정서를 위무하고 오락거리가 돼준다는 것, 그게 어딘가. 이 위로 부재의 시대에.

 

 

연안부두


 두번째 주안점은 지금이 필자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 등으로 은퇴에 들어가는 시기라는 사실이다. 앞서 내가 <마포종점> 노래 얘기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인생엔 여러 중요한 고비가 있고 그때마다 그게 가장 중요해 보이기 마련이지만, 퇴직이야말로 한 개인에게 엄청난 격변인 게 분명하다. 30년 이상 출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갈 곳이 사라졌다. 당혹스럽다. 각오는 했지만, 날이 가면서 정도가 더 심해진다. 갈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낯섦이.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일인 가구가 가장 많아진 시대라는데도 우리 식당은 아직 혼자 식사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못 된다. 퇴직을 두고 ‘인생 2막’, ‘제2의 전성기’라며 격려하는 책들도 쏟아지지만 다수의 은퇴자들에게 현실은 ‘갈 곳 없는 처지’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데, 현재 7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10년 안에 사회의 전면에서 퇴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일차적으로 이 책의 주제, 즉 ‘노래가 위로다’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 책이 다루는 트로트로부터 7080 노래들, 90년대 발라드까지 이른바 ‘흘러간 노래’에 익숙한 세대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노래들을 비평적으로 음미하면서 함께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갈 곳 없는 처지는 꼭 베이비붐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젊은 세대라 해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들과 갑을관계 속 ‘을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갈 곳 없는 처지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상당수가 노년 빈곤에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근자에 가요계에 불고 있는 복고풍이 주목된다. 그게 이 책의 세번째 주안점이다. 복고풍 덕분인지 젊은 세대들도 ‘흘러간 노래’에 열린 태도를 드러낸다. 지금 이는 복고 유행에 대해서는 새로운 아이돌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고 90년대 노래만큼 감흥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일종의 문화적 조로(早老) 현상이라고 우려하는데, 거기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노래가 위로다’란 관점에서나 옛날 노래가 지금보다 생명력도 길고 장르도 다양했던 것을 감안하면 복고풍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썼다(‘복고풍, 왜 다시 부나’ 칼럼). 유난히 세대간 단절이 심한 분야가 대중음악이다. 그렇다면 간헐적으로 불어주는 복고풍은 세대간 단절을 완화해주는 연결고리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주안점을 갖고 노래 칼럼을 집필하되 수용자, 즉 노래를 듣는 사람이 중심이 된 기술을 하려고 노력했다. 노래와 가수에 얽힌 뒷얘기나 에피소드 위주의 서술은 되도록 피하고 가사의 사회학적, 사회심리학적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다. 트로트 장을 따로 만들어 나이가 들면서 트로트가 좋아지는 이유 등을 규명해 보았다.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결국은 같은 음악 현상인데 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 서로 소통·교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필요할 때는 클래식에 대해서도 조금씩 언급했다. 또 가사 분석에 그치지 않고 기타 코드, 조바꿈, 국악과의 접목, 클래식과의 크로스오버, 가창력 등을 소재로 음악적 분석도 해보았다.


 얼마 전 낮에 전철을 타고 인천 연안부두에 갔다. 작년 봄 아이들이 세월호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그곳이다. 밴댕이회 한 접시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아주머니한테 김 트리오의 <연안부두>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파미레파 미레도미/ 미파파#솔#미라~’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흐른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작사가 조운파는 언젠가 술회했다. “학교 다닐 때 종종 연안부두에 앉아서 바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별하는 사람, 감격적으로 해후하는 사람, 망망대해를 그저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또 한 쪽에는 생선 파는 사람, 손님 소매를 끌어당기는 작부 등 여러 모습이었다. 나중 노래 만드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걸 기억해 썼다.”
 그의 회상과 아날로그적 낭만이 있는 가사, 작곡가 안치행의 구슬픈 멜로디가 좋다. 위로를 얻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이런 감성에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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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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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노래가 위로다 2015. 4. 1. 05:54

Ⅰ 노래가 위로다
노래가 위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위로, 마포종점
노래와 위로의 메카니즘
블루스와 우리 노래의 한

노래는 추억이다
가창력이 좋다?

 

 

 

Ⅱ 사랑은 왜 아픈가
왜 사랑 노래는 슬픈가
매달리는 이별, 쿨한 이별
맨처음 고백, 애인 있어요
에레나, 금순이, 화, 경상도 아가씨
친구와 우정 노래

 

Ⅲ 가사는 시일까
가사는 시일까
노래 가사의 힘
노래, 자연의 친구
비처럼 음악처럼-비와 노래
낭만과 방랑과 술과 노래와

인생은 미완성, 나그네길
안절부절했었지?

 

Ⅳ 뽕짝의 재발견
트로트에 자꾸 끌린다
대중가요+클래식=잡종 음악?
복고풍, 왜 다시 부나
<가거라 삼팔선> 이야기
한국적 노래의 정체
옹점이가 부른 트로트

 

Ⅴ 노래와 세상
왜 불러, 아 대한민국-정치와 노래
노래가 사회에 묻다
충무로, 영등포, 혜화동, 연안부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노래
<빈대떡 신사>-조바꿈의 미학
기타 코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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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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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복고풍이 불고 있다. 복고풍(復古風)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제도나 풍속 또는 그런 유행을 뜻한다. 그것이 영화와 TV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음식과 가전제품에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방영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는 1990년대 유행했던 가요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20년 전 가요의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물론 ‘토토가’만을 갖고 복고풍이 불었다고 말할 순 없다. 몇 해 전 시작한 ‘나는 가수다’(MBC), ‘불후의 명곡’(KBS2)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이미 가요 복고 바람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토토가’에 소개된 노래들

 

 

 영화 ‘국제시장’과 ‘쎄시봉’이 흥행에 성공한 것도 대중문화계의 복고 바람으로 볼 수 있다. 이보다 앞서 나온 ‘건축학 개론’(2012)이 영화의 복고풍을 이끌었다. 음식에도 복고풍이 현저히 보인다. 한 제과회사는 옛날에 먹던 스타일의 도넛을 출시했는데 상품 이름도 고풍스럽게 ‘도나쓰’라고 붙였다. 광고 카피는 “엄마랑 장 볼 때 먹던 그때 그 도나쓰”다. 인쇄 활자체도 복고풍으로 했다. 붕어빵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냉동 붕어빵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가전업계는 복고적 디자인의 오디오 등을 선보이고 있으며, 매장의 BGM(배경음악)도 1990년대와 70·80년대 히트곡을 중심으로 틀고 있다.

 

 

       ‘그때 그 도나쓰’의 복고적 광고

 

 

 가요에서 복고풍이 분다는 건 두 종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옛날에 나온, 소위 흘러간 노래를 선호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새로 나온 노래의 분위기가 복고적이라는 것이다. 이 글은 이 가운데 첫번째 현상 분석에 집중하려 한다. 흘러간 노래를 즐기는 건 개인적으로는 취향이지만 사회적으론 유행이 된다. 유행이란 말은 일정 기간 동안 퍼졌다가 사그라지며, 그 현상이 어느 정도의 세월을 거치며 반복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1996년 3월 7일자 경향신문 문화면에는 ‘봄을 여는 복고풍 서정가요’란 제목으로 “새봄을 맞는 가요계에 서정성을 내세운 복고풍 노래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 한 해 전인 1995년 3월 이 신문은 ‘중견가수들 복고풍 노래 봄바람 탔네’란 제하에 이문세·변진섭·이승철 등의 복고풍 노래들이 앨범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콘서트 7080’이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2004년 11월 시작해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다. 1985년 시작한 트로트 중심의 ‘가요 무대’에는 못 미치지만 꽤 장수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사측이 밝힌 이 프로의 기획 의도는 이렇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당시의 인기 곡, 명곡을 오리지널 가수를 통해 들어보고, 그 시절의 추억과 향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눠 가는 시간을 만든다.’
 11년 전 이 프로그램이 출범하게 된 데도 필시 그럴만한 가요계 내부적, 사회적 이유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복고풍 노래의 유행은 대략 10년 정도를 주기로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건 과학적이지는 못한 개인의 의견이다. 복고풍 노래 유행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상당한 자료 축적과 가요사적, 나아가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2개의 칼럼은 주목할 만하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일찌기 ‘콘서트 7080’을 두고 ‘신흥 복고주의, 젊음의 유예인가 유배인가’란 칼럼을 썼다. 거기에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제목 그대로 1970년대와 80년대의 대중음악, 특히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중심으로 인기 있었던 노래를 들려주는 ‘그 시절 그 노래’ 프로그램”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7080 세대를 겨냥한 이 프로가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보건대 또 하나의 ‘가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우리 대중음악 산업의 허약한 체질 때문에 30대만 넘어도 ‘원로가수’ 대접을 받는 기이한 풍토가 엄연하지만 그래도 아직 40대에 지나지 않는 음악가와 관객들이 그 시절 그 노래를 주고받는 것은 문화적 조로(早老) 현상의 한 단면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이어 이런 ‘젊은 복고주의’에 대해 “너무 일찍 늙는 게 아닌가 하는, 저마다의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한창 젊었을 때 맘껏 불렀던 노래로 잠시 유예시키는 것”이라며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주1】
 
 서울 음대 민은기 교수도 대중음악에서 부는 복고의 바람에 비판적이다. 그는 ‘새로워야 대중음악이다’란 신문 칼럼에서 복고를 ‘가까운 과거를 불러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보고, 추억에 매달리다 보면 그것을 지나치게 미화하게 되고 앞으로 나가려는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어 “대중음악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자신의 과거”라는 영국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말을 소개했다. 또 “그 태생부터 젊음을 위한 젊은이의 음악이 바로 대중음악”이라며 “대중음악에 미래를 향한 창조와 도전이 넘쳐나길 바란다”고 썼다.【주2】물론 자연스럽지는 못한 것 같다. ‘불후의 명곡’ 프로에서 젊은 여자 가수들이 복고적 의상을 하고 나와 70년대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젊고 늙은 관객들이 갈채를 보내는 모습이.

 

                                                     민은기 교수

 

 나도 옛날에 쓴 신문 칼럼에서 비슷한 논지를 편 적이 있다. 음악 관련 칼럼은 아니었지만 ‘좋았던 옛시절, 망각의 역사’란 글에서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복고풍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물었다.
 “올봄 여성 패션은 연둣빛 실크 스커트 같은 복고풍이 주류라는 소식이다. ‘올드 패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신세대들까지 이 패션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복고풍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나보다. 인간 본연의 아련한 과거에 대한 향수, 추억, 그런 것들이 복고풍 유행의 요인일 것이다. 구세대의 흘러간 노래 취향이나 ‘옛날이 좋았어’란 식의 입버릇에도 복고적 심리가 깔려있다.…과연 옛날은 ‘꿈엔들 잊으리요’를 노래할 만큼 좋은 것이었나.” 그러면서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노스탤지어를 경계하고 “역사발전은 과거는 과거이며 우리의 아카디아는 미래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글을 매듭지었다.【주3】

 

 그러나 이런 논지에 대한 반론도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내가 쓰고 있는 연속칼럼의 대주제인 ‘노래가 위로다’란 관점에서다. 이 관점에 서서 보면 복고풍을 이른바 진취성과 연결짓는 발상이 지극히 일면적 고찰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듣는, 생소한 노래에서 우리가 위로를 얻기는 어렵다. 이는 많은 음악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어릴 때 들은 노래의 기억과 취향이 평생 간다. 즉 위로가 된다. 트로트 세대, 포크 세대가 요즘 노래에 흥미를 못 갖고  취향이 수십 년 전 노래들에 머물러있는 건 음악에 대한 인간 본성과 관련된 문제이지 가치관이나 진취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회상은 권리다. 노인한테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강요는 경우에 따라 욕이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우리가 서양 고전음악을 지칭할 때 쓰는 클래식이란 개념을 흘러간 옛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한 옛노래에도 어느새 고전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인정할 경우 서양고전을 여러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다양한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과 옛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것을 굳이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다.


 둘째, 복고풍이 혹시 지금 노래의 흠결과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한 블로거의 글에서 본 건데, 노래교실에서 계속 90년대 노래가 올라오자 그가 선생님에게 왜 신곡은 안 올리고 옛날 노래 타령이냐고 푸념했다고 한다. 대답은 요즘 아이돌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고 90년대 노래처럼 감흥이 적다는 것이었다. 복고풍에는 난해한 요즘 노래에 대한 반발도 작용한다는 말이다.

 

 

김건모의 3집 앨범 ‘잘못된 만남’(1995) 표지

 

 셋째, 시대적 변화, 산업구조적 변화도 작용했다. 90년대 인기를 얻었던 곡은 차트 상위권에 6개월~1년간 머물렀다. 주간차트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간도 2~3개월에 이른다. 1994년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한 김건모의 <핑계>(1993·김창환 작사 작곡)는 13주간 주간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연간 1위 인기곡인 패닉의 <달팽이>(1995·이적 작사 작곡) 역시 6개월간 상위권을 지켰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1997·김종환 작사 작곡)와 조성모의 <투 헤븐>(1998·이승호 작사, 이경섭 작곡) 등은 거의 2년간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요즘 음원차트나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곡을 대중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주간차트 10위권에 3주 이상 머무르는 곡이 손에 꼽힐 정도로 흥행 수명이 짧다.【주4】음반시대에서 음원시대로 대중가요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지금보다 생명력도 길고 장르도 다양했던 옛날 노래를 찾게 되는 이유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복고풍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왜 복고풍이 부는지, 역사적 맥락을 면밀히 살펴 거기에 담긴 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복고적 성향이 있으며, 특히 노래에서 그게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좋다.


【주1】정윤수, ‘신흥 복고주의, 젊음의 유예인가 유배인가-콘서트 7080에 드러난 문화적 조로 현상의 이면들’(문화예술 2004년 12월호, 문화예술진흥원)
【주2】중앙일보 2014년 12월 31일자 오피니언 민은기 칼럼 ‘새로워야 대중음악이다’
【주3】경향신문 2001년 3월 14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칼럼, ‘좋았던 옛시절, 망각의 역사’ 김철웅 국제부장
【주4】경향신문 2015년 1월 2일자 방송연예면 ‘토토가 열풍…90년대 히트곡 넘치고 솔로가수 전성시대’,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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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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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세기 동안 서양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로의 노래를 들라면 나는 블루스를 들겠다. 블루스를 음악적으로 정의하자면 Ⅰ-Ⅳ-V7이란 단순 코드 진행을 기초로 해서 12마디 혹은 16마디 악절로 이뤄진 형식을 말한다. 가사의 내용은 무엇이든 가능하다.…하지만 원래는 불운을 맞아 곤경에 처하게 된 사람을 노래했다. 그래서 블루스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슬픈 사람이 슬픈 음악을 듣고 기분이 나아지게 됨을 보여주는 예다.”【주1】


 미국의 뇌 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이 쓴 책 ‘호모 무지쿠스’에서 한 말이다. (나는 가요 칼럼들을 쓰면서 그의 책 ‘호모 무지쿠스-원제는 The World in Six Songs:How the Musical Brain Created Human Nature’와 ‘뇌의 왈츠-원제는 This Is Your Brain on Music: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를 많이 참고했다. 이 참에 저자를 간략히 소개하면, 그는 베이비붐 세대로 1957년 히피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로큰롤의 황금기에 사춘기를 보내며 록 밴드를 결성해 연주생활을 했고, 녹음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로 많은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신경심리학을 공부해 음악 인지심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마디로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에 두루 밝은 사람이다.)

 

 블루스에 대한 오해

 

 블루스가 어떤 음악이길래 그는 이런 말을 했을까? 그보다 먼저 할 얘기가 있다. 나의 블루스에 얽힌 추억이다. 대학 2학년 땐가 서울 명동의 어느 ‘고고클럽’에서 처음 블루스란 춤을 춰봤다. 졸업반 선배들의 사은회 뒷풀이 자리였다. 쌍쌍파티여서 짝이 없던 나는 부랴부랴 친구한테 부탁해 파트너를 ‘조달’했는데 뜻밖의 퀸카였다. 그땐 아직 디스코가 상륙하기 전이라 춤이라고 하면 다 ‘고고춤’이었다. 문제는 고고춤 뒤의 블루스 타임이었다. 한층 어두워진 조명 아래 애절하고 느린 음악에 맞춰 방금 만난 파트너와 껴안고 스텝을 밟는다는 게 난감했다. 다행히 성격 시원한 그녀가 잘 리드해준 덕에 넘어갈 수 있었다. 아득한 기분 속에 감미롭게 흐르던 노래를 기억한다. <Feelings(필링스)>였다.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모리스 앨버트가 1975년 불러 장기간 빌보드 상위 차트에 오른 노래다. (참고로 이 노래는 전형적인 블루스 곡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옛날엔 이 곡조에 맞춰 블루스를 많이들 추었다.)

 

 

모리스 앨버트의 <Feelings(필링스)>

 

 Feelings nothing more than feelings/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Teardrops rolling down on my face/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사랑의 느낌 오로지 그 느낌밖에 없습니다/ 내 사랑의 느낌을 잊으렵니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 내 사랑의 느낌을 잊으렵니다

 Feelings for all my life I’ll feel it/ I wish I’ve never met you girl
 You’ll never come again
 사랑의 느낌 내 삶을 다해 느낄 겁니다/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이여 …(하략)
                                 <Feelings(필링스)> 가사

 

 대학 시절 블루스의 추억부터 먼저 꺼낸 것은 블루스에 대한 오해를 말하기 위해서다. 달착지근하면서 음울하고 때로는 음침한 댄스 음악, 그것이 나를 포함한 블루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었다. “블루스는 미국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절규이며 자유를 향한 갈구의 음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퇴폐적인 카바레에서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장면이 떠오르는 이른바 ‘작업용 춤곡’으로 인식되었다.”【주2】
 어째서 이런 오해가 일어났나. 우리의 블루스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블루스란 말이 들어온 건 1930년대였다. 당시 젊은 음악평론가 김관은 1936년에 발간된 ‘여성’지의 ‘사교무도(私交舞蹈)와 음악’이란 글에서 블루스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부르스’와 ‘슬로 폭스트롯토’의 리듬과 ‘악센트’를 비교하는 등 블루스를 댄스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블루스가 유럽의 사교댄스계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그 본질이 상당 부분 왜곡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주3】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블루스가 사교댄스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블루스는 원래 그런 게 아니었다. 미국 흑인들의 고통스런 역사가 담겨있는 음악이다. ‘블루스’라는 단어 자체가 우울함을 뜻하는 ‘블루’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짐작되듯 고된 노동, 인종차별,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흑인들의 한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악이다. 흑인들에게 블루스는 현실의 애환을 잊게 해주는 위로의 음악이자, 삶의 힘겨움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구원과도 같은 음악이었다.
 초기의 블루스(포크 블루스·컨트리 블루스)는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19세기 중엽 이후 생긴 것이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길거리 술집이나 시장터 축제에서 연주하는 블루스 맨(Blues Man)들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독특하게 느린 블루스의 리듬은 백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많은 춤곡들이 나왔으며, 그러한 음악과 춤에도 블루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주4】

 

 초기엔 블루스의 본고장 미국에도 블루스에 대한 편향적 시각이 존재했다.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블루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미국 사회의 지배 세력이었던 백인 계층(WASP) 청중들에게 블루스는 줄곧 인종주의적 맥락과 함께 타자화되면서 ‘탄식하는 듯한 음조’로 간주되고 ‘타락한 것’ 나아가 ‘술자리에나 적합한 것’으로 폄하되어 온 것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이때 바람직한 음조로 간주된 것은 유럽적 전통에 뿌리를 두는 음질서이며, 블루스는 백인 취향의 팝음악 양식에 대한 타자로서 수용돼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블루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핸디(1873~1958)마저 1903년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블루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을 자신의 자서전에 기술하면서 자신이 “들어본 것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음악”이었다고 술회했다.【주5】 그는 나중 블루스의 고전으로 꼽히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작곡한다. 블루스가 생성 초기에는 발상지, 즉 고향에서도 생소한 음악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윌리엄 핸디

 

 한국인에게 블루스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난과 한(恨)이란 요소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민족이 누군가. 유난히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들 한다. 근세에도 일제 강점과 동족상잔에 이어 남북분단을 겪고 있다. 미국 흑인들이 겪어온 고난과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블루스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말이다. 둘을 묶는 공통분모가 바로 한이다. 물론 이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음악에 대한 개인의 공감에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데, 하물며 집단적 공감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찌됐든 출발부터 이런 오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스는 그 후 우리 노래에서 친숙한 장르가 된다. 이난영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1939·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은 작곡자 김해송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재즈 스타일의 곡인데, 블루스 음계의 특징인 ‘미♭’를 구사한다.(블루스는 제3음 미와 제7음 시를 반음 떨어뜨리는 블루노트가 특징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해방 후 1960년대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식 블루스 가요가 히트곡 대열에 들어섰다. <인천 블루스> <애수의 블루스> <워싱턴 블루스> <비애 블루스> <소공동 블루스> <청춘 블루스> <대전 블루스> <순정의 블루스> 등이 그것이다. 이 노래들은 대도시 곳곳에서 확산되어가던 사교댄스의 유행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주6】

 

 안정애가 부른 <대전 블루스>(1959·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는 끈적한 블루스 리듬과 애절한 가락으로 대전역을 배경으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은 대히트곡이다.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 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 블루스> 1절 가사

 

 주현미가 1986년 부른 <눈물의 블루스>(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초기 한국에 전달된 바 ‘사교댄스로서의 블루스’의 성격을 충실히 드러내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오색등 네온불이 속삭이듯이 나를 유혹하는 밤
 가슴을 휘젓듯이 흐느끼는 색소폰 소리 아 나를 울리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떠날 당신이기에
 그대 품에 안기운 채 젖은 눈을 감추네
 아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연주자여
 그 음악을 멈추지 말아요
                         <눈물의 블루스> 1절 가사

 

 한국형 블루스

 

 이런 <○○블루스> 노래들은 형식적으로는 느린 네 박자 춤곡이며 내용은 애절하고 비통한 정서를 담았다는 점에서는 블루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대부분 트로트 리듬과 가락이 바탕이 됐고, 블루노트도 아주 예외적으로 구사되는 정도였다. 요컨대 블루스 음악 특유의 ‘블루지(bluesy)’한 느낌을 전달하기는 부족했다. 시인 김선우는 언젠가 블루스 가수 강허달림에 관한 글에서 ‘블루지’를 ‘애이불비(哀而不悲) 흐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슬프되 슬픔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몸속으로 깊이 스미게 했다가 이윽고 연의 줄을 풀어주듯 조금씩 간곡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라고 썼다.【주7】

 

 

                                          한영애


 그 점에서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의 등장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신촌블루스는 그때까지의 일본식 블루스를 철지난 양식으로 치부하고 미국식(혹은 영국식 록 블루스에 기반한) 블루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주8】1988년 나온 신촌블루스의 데뷔앨범은 기존 블루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영애의 절절한 감정이 전해지는 <그대 없는 거리>(엄인호 작사 작곡)와 엄인호와 정서용이 함께 노래한 <아쉬움>(엄인호 작사 작곡), 절창 박인수의 진가를 발휘한 <봄비>(1969·신중현 작사 작곡) 같은 곡들은 청량제 역할을 하며 호평을 받았다. 30대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음반임에도 수십만 장이 팔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생경했던 정통블루스를 모태로 했기에 더욱 그랬다.【주9】

 

 엄인호와 정서용이 함께 부른 <아쉬움>

 

 별빛같은 너의 눈망울에 이슬방울 맺힐 때/ 마주잡은 너의 두 손에는 안타까운 마음뿐
 조그마한 너의 두 손으로 내게 전한 편지는/ 하고픈 말마저 다 못하고 끝을 맺고 말았네
 뒤돌아 가는 너의 모습 너무나 아쉬워/ 달려가 너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마주잡은 너의 두 손에는 안타까운 마음뿐/ 뒤돌아 가는 너의 모습 너무나 아쉬워
 …(하략)                            <아쉬움> 가사

 

 재미있는 것은 신촌블루스가 이렇게 정통 블루스를 추구하면서도 이른바 ‘뽕끼’를 탈피하지는 못했다는 부분이다. 가령 신촌블루스 2집(1989)에 실린 <골목길>(엄인호 작사 작곡)은 그 전에도 다른 가수들이 불렀지만 호응이 적었는데, 김현식이란 보컬을 만나자 비로소 매력이 드러났다. 김현식의 소울풀한 음성과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애절한 ‘뽕끼’의 궁합은 너무나 이상적인 것이었다.【주10】엄인호와 함께 이 밴드를 주도한 이정선은 이렇게 회고했다. “신촌블루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블루스는 블루스인데 사실 음악 스케일은 뽕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중이 좋아할 대중취향적인 음악이었죠. 한데 점점 블루스를 공부하고 본질에 접근하게 되면서 엄인호랑 ‘우리는 뽕 블루스 밴드’라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주11】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신촌블루스의 정체성은 ‘한국형 블루스’란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부르는 대중가요가 다른 나라 사람의 것과 같을 수 없다. 그건 블루스도 예외가 아니다. 들여오되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글머리에 인용한 책 ‘호모 무지쿠스’에서 <Both Sides Now>(1969)의 가수 조니 미첼은 “대부분의 백인 가수들은 빌리 홀리데이나 베시 스미스 같은 흑인 가수들의 감정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흑인들은 음들 하나하나에 온갖 인간의 감정을 가득 담아서 노래하죠. 젊었을 때 나는 전형적인 백인 포크가수의 목소리였고, 감정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조니 미첼 같은 대가수도 흑인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는 그 이유로 “흑인 문화는 훨씬 균형이 잡혀 있어서 감정과 영성에 많은 가치를 두지만, 백인 문화는 이런 것들을 억압하려고만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주12】

 

 

  한영애가 부른 <그대 없는 거리>

 

   그런 점에서 영미권 대중음악의 원류라고까지 하는 ‘흑인음악’에 대해 한국인이 문화적 친연성을 갖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흑인들이 주도하는 음악 장르는 여럿 있다. 블루스 말고도 소울, 훵크(funk), 재즈와 알앤비, 그리고 힙합과 랩도 있다. 이런 음악들에 대한 우리의 수용 능력은 탁월한 편이라고 본다. 그 친연성이 과연 공통된 한의 정서에서 비롯된 건지 다른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우리 대중음악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주1】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149~150쪽
【주2】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신촌블루스 285쪽
【주3】최유준, 대중음악과 공감의 그늘(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블루스와 슬픈 음악의 정치학 61쪽
【주4】위키백과, 블루스 2015년 3월 13일 최종 수정
【주5】최유준, 전게서 45~46쪽
【주6】같은 책 67쪽
【주7】한겨레신문 2015년 3월 19일자 ‘블루스 너머 강허달림’ 칼럼
【주8】최유준, 전게서 68쪽
【주9】레전드 100 아티스트, 285쪽
【주10】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음반리뷰(선, 2008) 228~229쪽
【주11】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인터뷰(선, 2009) 271쪽

【주12】대니얼 레비틴, 전게서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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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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