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위로다'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5.02.04 가창력이 좋다?
  2. 2015.01.31 기타 코드의 추억
  3. 2015.01.27 맨처음 고백·애인 있어요
  4. 2015.01.20 안절부절했었지?
  5. 2015.01.17 가사는 시일까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 그런가. 당연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말이다. 가수 2명의 경우를 살펴보자. 조용필은 자신의 ‘득음’ 과정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어느 여관에선가 TV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어느 장면에서 <한오백년>이란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나왔다. 나를 소름 끼치도록 전율시켰던 그 처연하고도 구성진 소리. 그 길로 뛰쳐나가 판소리 음반을 닥치는대로 샀다. 미성의 한계를 판소리로 극복하고자 했던 나는 방문을 걸어잠그고 뼈를 깎는 ‘소리독공’에 들어갔다. 폭포수 밑에서 ‘득음’ 한다는 명창을 흉내내 산과 사찰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계속 악을 쓰자 목이 가렵고 토악질이 났다. 소금을 먹으며 목의 열을 식혔다. …고행길에 들어선지 6개월. 더 이상 목이 간지럽지도 않고 구역질이 나지도 않았다. 목이 트인 것이다. 그렇게 부러워하던 허스키 보이스. 미8군 무대를 전전하면서 내 것으로 포섭한 다양한 창법 위에 이를 악물고 갈고 닦은 우리의 창은 내 목소리를 미성에서 구성진 탁성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주1】

 

 

                                김창완

 


 다음은 밴드 산울림 보컬이자 리더 김창완에 대한 빛과 소금 멤버 장기호의 평가다. “음악을 하면서 가창력 있는 노래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고 가창력은 가창력일 뿐 감동은 또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예를 들면 산울림의 김창완 선배를 봐도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만의 감정과 분위기가 있거든요. 목소리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악기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주2】

 

 첫 번째 글은 조용필이 1970년대 중반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77년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쇼를 하고 가요계에서 떠나야했던 시절을 회고한 것이다. 그는 그때 좌절하지 않고 판소리 창법을 터득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살렸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한참 뒤 후배가수 이승기가 “득음을 위해 피를 토하는 수련을 했다고 하던데”라고 질문한 것에 대해선 “과장이다. 목에서 피가 나면 큰일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주3】


 여기서 얘기의 본질은 진짜 목에서 피가 났는지 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건 가왕(歌王)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조용필이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울인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케 하는 부분이다. 그런 노력과 지속적 관리 덕택일까, 그는 사실상 모든 음악스타일을 아우르는 히트곡을 갖고 있다. <고추잠자리>(1981·김순곤 작사, 조용필 작곡), <못 찾겠다 꾀꼬리>(1988·김순곤 작사, 조용필 작곡), <여행을 떠나요>(1985·하지영 작사, 조용필 작곡) 등은 록이다. <단발머리>(1980·박건호 작사, 조용필 작곡)은 뉴웨이브 스타일, <창밖의 여자>(1979·배명숙 작사, 조용필 작곡), <그 겨울의 찻집>(1985·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은 팝 발라드 형식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황선우 작사 작곡), <일편단심 민들레야>(1981·이주현 작사, 조용필 작곡), <허공>(1985·정욱 작사, 정풍송 작곡)은 트로트다. <친구여>(1983·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포크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같은 민요도 불렀다.【주4】

 

 그러나 두 번째 글, 김창완에 대한 평가는 노래에는 가창력 말고도 중요한 ‘플러스 알파’가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이는 장기호 개인의 의견이긴 하지만 객관성이 있는 언명이라고 본다. 김창완을 좋아하되 그 이유로 그의 뛰어난 가창력을 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완도 자신이 노래 잘하는(가창력 있는) 가수가 못된다는 지적에 대해 불쾌해할 것 같지도 않다.

 

 가창력(歌唱力)은 사전적 의미가 ‘노래를 부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가창력이 있다, 좋다’는 표현은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과 차이가 없다. 한데도 가수를 평가할 때 종종 가창력이란 말을 가져다 쓴다. 그러나 이게 굉장히 포괄적이며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담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그 가수 노래는 굉장히 잘하지만 가창력이 좋은 가수는 아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헷갈리는 표현이다. 그는 아마도 가창력이 좋다는 의미를 노래의 테크닉적인 측면(성량, 음역, 기교 등)에서 뛰어나다는 의미로 쓴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창력을 테크닉보다는 공감과 감동을 전하는 힘에 초점을 둔다. 그게 진짜 가창력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뜻은 백팔십도 달라진다.

 

 나는 ‘노래가 위로다’라는 큰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지만,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딱 꼬집어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노래를 잘 한다는 건 작사·작곡을 잘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노래가 소화해내지 못하면 말짱 허사다. 이는 음악의 중심이 작품에서 연주, 가창으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이걸 포괄적으로 연행(演行·performance)이라고도 한다. 문제는 어떤 이의 가창이 아름답다, 뛰어나다는 것의 평가기준이 모호한 것이다. 김창완과 산울림의 노래가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 일상적이고 편안한 가사, 개성적인 멜로디와 꾸며내지 않은 창법, 활력, 익살끼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였다. 밴드로서의 다이내믹한 사운드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도 매력이었다. 이렇게 밴드의 강점을 살린 것들이 상당 부분 ‘플러스 알파’로 작용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노래에서 가창력이 절대적인 게 아니란 점을 확인시키는 사례이기도 하다.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

 

                

  요절한 가객(歌客) 김현식의 가창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음악평론가 여인협은 “그는 가창의 이단아적 존재였다”고 말한다. 그가 타고난 노래꾼인건 맞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가창력이란 통념으로 재단이 가능한 가수가 아니란 거다. “정확한 음정, 칼 같은 박자 감각, 풍부한 성량과 같은 가창력에 대한 기준은 그의 솔직한 노래 앞에 모조리 설득력을 잃고 만다. 그에게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그만의 곡 해석력이 있었다.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은 그것을 ‘어떤 음악이든 그럴듯하게 부르는 능력’이라고 언급한다.…그렇게 혼을 쏟아낸 절창이 바로 사후 발표작 6집에 수록된 <내 사랑 내 곁에>(1991·오태호 작사 작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서 그는 발음 하나까지 힘겨워하고 결국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듣는 이의 마음을 헤집어놓았다.【주5】

 

 가창력 얘기를 하다보면 성악과 가요 창법은 뭐가 다른지 궁금해진다. 이건 전문 영역이므로 상식 수준에서 말하자면 둘은 추구하는 소리나 호흡법, 표현 기교가 다르기 때문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성악을 전공한 트로트 가수 박현빈이 때때로 가곡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평소 트로트를 부를 때에는 볼 수 없던 자세와 호흡, 성량이 느껴지기도 한다. 성악은 복식호흡을 이용하여 마이크나 별다른 음향장치가 없어도 관객석 구석구석 또렷한 노랫소리를 전달한다. 바이브레이션도 호흡과 공명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지, 턱이나 입술을 떨어서 내는 것이 아니다.


 반면 대중가요에서는 음의 떨림을 인위적으로 빚어내기도 한다. 또 전형적인 호흡법이나 발성법이 정해져있다기보다는 곡의 분위기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마이크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리가 왜곡되지 않을 정도의 공명만으로도 충분한 표현이 가능하다.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음성에 그대로 선율과 가사를 붙이는 자연스러운 진성 발성법이 사용되기도 한다.【주6】


 대중가수 중에서도 성악 발성을 쓰는 가수들이 꽤 있다. 본인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건지는 확인 못했으나 가령 <이별이래>(1987·박건호 작사, 최종혁 작곡)를 부른 유열, <기도>(1979·서활 작사 작곡)를 부른 홍삼트리오가 그런 느낌을 준다. 흔히들 벨칸토 창법이라고 하는 두성 발성을 쓴 것 같다. 1979년 1회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기도>는 클래식한 창법에다 사촌 형제들로 이루어진 트리오의 화성이 압권이었다. 가요도 목소리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낼 때 큰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홍삼트리오 <기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그리움에 불러보는/ 아픈 내 가슴속에 맺힌 그녀
 나 언제나 한숨지며 그리워 할 때/ 성모앞에 드리는 기도
 내님의 소식 전해주소서/ 가버린 님 언제나 오시려나
 그리워 (그리워) 지친 마음 (지친 마음)
 오늘도 (오늘도) 기다리네
 아 아 아 아 기다리네…(하략)
                      <기도> 가사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가창력이 매우 폭좁게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가창력을 폭발적 열창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가수가 혼신을 다해 열정적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모든 노래를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건 아니다. 아까 김창완의 가창력 얘기를 했지만 만일 그가 <아니 벌써>(1977·김창완 작사 작곡)를 혼신을 다해 부른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다. 노래는 자기에게 맞는 노래를 자기 색깔로 부르는 게 아름다운 거다. 그런데 요즘은 고음이 폭발해야 “노래 좀 하는군”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풍토가 일반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불후의 명곡’이나 최근 재개된 ‘나는 가수다3’ 같은 방송사들의 서바이벌 가요 프로그램도 일조하고 있다. 이런 프로가 대형 기획사와 아이돌 중심으로 왜곡된 방송과 음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되는 것은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가창력과 고성 일변도를 동일시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다. 의도했든 안했든 말이다.


 나는 ‘불후의 명곡’을 시청하면서 한 가수가 열창을 하면 다음번 무대에 오른 가수는 그보다 더 자극 강도를 높여야 살아남게 되는, 말하자면 ‘자극의 에스컬레이션’ 딜레마에 빠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 적이 가끔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창력 주제의 글을 쓰려고 자료를 살펴보니 ‘나는 가수다’가 이미 시즌 1부터 ‘나는 악쓴다’로 둔갑했다는 비아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악써야 살아남는다”는 것. 물론 지나치게 냉소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가요는 작품이든 창법이든 다양한 게 좋으며 어떤 획일성도 적이란 관점에서는 경청할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


 ‘나가수1’ 당시 캐스팅 논란도 있었는데, 신해철은 트위터를 통해, 섭외가 들어온다면 ‘가수가 아닌 걸로 합시다’라며 우회적으로 출연 고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예의 가창력 시비가 붙었단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람을 가르다’란 블로거의 글 ‘나는 가수다 신해철, 섭외 거절은 가창력 때문?’ 일부를 소개한다.
 

 

 “신해철에 대한 네티즌의 비난은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가수다’는 가창력의 개념에서 승부를 겨룬다. 그러나 가수를 ‘Singer’와 ‘Musician’으로 나누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중이 가수에게 소비하는 것은 가창력이 다가 아니다. 가수가 표현하고 부르는 만들어진 노래까지 포함된다. 음악이란 큰 틀에서 완성된 곡을 멋지게 소화한 가수로 인해 대중은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물론 신해철의 가창력이 ‘뛰어나다’ 혹은 ‘뛰어나지 않다’는 개개인이 느끼고 평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꾸준히 앨범을 내고 활동한 가수 신해철의 능력을, 듣는 이에 따라 모호한 기준점이 형성될 수 있는 가창력의 단면으로 폄훼해선 곤란하다. 그것은 곧 가수가 가져야 하는 개성을 죽이는 비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주7】나는 이 글이 김창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도 ‘Musician’이며 자유와 솔직함을 사랑하는 ‘Artist’일 것이므로.

 

 신해철은 사후 출판된 ‘마왕 신해철’에서도 가창에 대해 보컬보다는 연주를 중시하는 생각을 밝히고 있다. “고백하자면, 아마추어 밴드 시절부터 보컬리스트는 밴드의 가장 ‘하바리’ 포지션이었으며, 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보컬을 겸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음정, 박자가 정확한 보컬리스트들을 은근히 경멸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말하는 기준을 혐오한다.”【주8】

 

 노래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미국의 음유시인급 가수 폴 사이먼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가끔은 노래 부를 때 이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할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제 목소리예요. 가리거나 은폐할 수가 없어요. 제가 부르는 노래에 제 목소리가 어울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바라게 되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1969)가 그런 경우였어요. 제 목소리가 영 어울리지 않아서 아티(아트 가펑클)한테 부르게 했죠.”【주9

                      

 

       

            김추자의 <늦기 전에>

 

 노래는 혼신을 다한 열창도 있고, 음유시인의 잔잔한 읊조림도 있다. 물론 그 중간도 있을 거다. 김추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 열 번 부르면 열 번 모두 다른 노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따라 목소리도, 움직임도, 눈빛도 변하는 거지요.”【주10】이 말은 음악의 ‘박제’를 거부한다는 표현으로 들린다. 레코딩보다는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를 중시한 댄스의 원조 디바답다.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은 말한다. “내 목소리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는 청자의 권리다. 난 노래할 때 최대한 감정을 빼는 편이다. 정직하게 노래하고 싶다. 그런 내 노래에 위로를 받는다면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주11】감정 전달의 방식이 청자 스스로 감동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것, 절제를 통한 내면화 그런 걸 얘기한 듯 하다. 장필순은 ‘정직하게 노래하고 싶다’고 했는데, 김추자도 같은 생각을 말하고 있다. 다만 방법이 다른 거다. 어느 편이 더 가창력 있는 노래를 할 수 있을 것 같나.


【주1】경향신문 1998년 11월 13일자 27쪽 ‘나의 젊음 나의 사랑’ 조용필편 4(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주2】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빛과 소금 259쪽
【주3】2013년 8월 4일 ‘SBS스페셜-대한민국 가수 조용필’ 프로 중 조용필 인터뷰
【주4】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조용필 97쪽
【주5】같은 책 김현식 391쪽
【주6】월간객석 2014년 10월호 수록 이채은(자유기고가) 글
【주7】블로그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 http://manimo.tistory.com/700 2011년 3월 6일
【주8】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 2014) 155쪽
【주9】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 277쪽
【주10】레전드 100 아티스트 김추자 337쪽
【주11】같은 책 장필순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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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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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노래는 화성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옛날 노래는 단순 질박했다. 이걸 기타 코드로 얘기하자면 옛날 노래는 서너 개, 많아야 대여섯 개 정도의 코드만 구사하면 부를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통기타 시대를 연 1970년대 포크송을 예로 살펴보자. 이장희가 부른 <그건 너>(1973·이장희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드 네 개(Em-D-C-B7)로 코드가 진행된다. 

 

 

                           이장희 <그건 너> 앨범


 

 Em      D         C                B7  Em      D         C            B7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Em      D          C          B7      Em       D         C   B7    Em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보이질 않나
         D         Em        D          Em          D        Em        D           Em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1절 가사

 

 이런 단순한 멜로디(코드가 단순하다는 건 멜로디가 그렇다는 말과 같다)와 가사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첨엔 ‘듣보잡’ 같은 노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친숙해졌다. 그만큼 잡아끄는 힘, 호소력이 있었다. 당국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결정을 했지만 참 웃기는 구실이었다.

 

 조용필은 자작곡 <단발머리>(1980·박건호 작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른바 ‘패밀리 코드’ 5, 6개로 모든 음악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른 코드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세븐 코드를 <단발머리>에 적용해 리듬과 멜로디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 노래에 당시에는 쓰지 않던 메이저 세븐 코드를 사용한 이유가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주1】그가 패밀리 코드라고 한 건 장·단조의 기본 코드 6개 정도를 말한 것 같다. 가령 C장조의 C, F, G와 나란한조의 Am, Dm, E7 등 총 6개 코드다. 세븐 코드를 절묘하게 구사한 노래로 기억나는 것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강인원 작사 작곡,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노래)가 있다. 비오는 거리 풍경 묘사에 세븐 코드가 동원된 것이 몽환적 느낌을 강하게 준다. 마치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 같은.
 

 

 1970년대 포크송엔 즐겨 사용되는 몇 가지 코드 패턴이 있었다. 앞서 예를 든 <그건 너>의 패턴을 여러 곡에서 발견할 수 있다. 편의상 이 패턴을 다장조 C(또는 나란한조인 Am)로 조바꿈하면 Am-G-F-E7가 된다. 4월과 5월의 <화>(1972·백순진 작사 작곡)가 그 경우다.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애 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 태우며
 Am       G                    Am               G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Am      G         Am     G         Am       C            E7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된다 더 가지마
                                         <화> 1절 가사

 

 1971년 당대 최고의 춤꾼 김추자가 부른 <그럴 수가 있나요>(김희갑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같은 코드 진행, Am-G-F-E7을 반복한다. 그래서 지루하냐 하면 리듬과 선율, 도발적 창법에 스르르 도취되고 만다. 이 경우 반복은 상당한 중독성을 발휘한다.

 

 

                                                 김추자

 

 Am              G            F            E7 Am          G           F           E7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사랑하고 헤어지지만
 Am  G  F   E7
 아  아  아  아(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파도처럼 왔다가는 눈물만 주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둘이 뜨겁게 둘이 뜨겁게 사랑하다가/ 혼자 그렇게 혼자 그렇게 가시겠다니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럴 수가 있나요> 가사

 

 1971년 은희가 노래해 그해 최고 히트송이 된 <꽃반지 끼고>(은희 작사, 외국곡)와 1972년 양희은이 부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김정신 작사 작곡)은 화성 진행이 매우 비슷하다. C-Am-Dm-G7 패턴이 반복된다. <꽃반지 끼고>는 F장조로 돼 있지만 그걸 C장조로 조바꿈하면 똑같은 패턴이다. 박자도 같은 4분의 4박자이기 때문에 아르페지오로 기타를 치면 어느 곡에도 맞는 반주가 될 수 있다.

 

     F    Dm Gm    C7         F           Dm Gm        C7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끼고
        F       Dm      Gm         C7          F       Dm Gm    C7     F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꽃반지 끼고> 1절 가사

 

 

                                                             은희

 

 

     C        Am    Dm            G7       C              Am  Dm                G7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C        Am        Dm            G7     C    Am  Dm              G7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C   Am    Dm   G7          C Am Dm G7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절 가사

 

 우리 가요사에서 김민기는 <아침 이슬>(1971)과 같은 사회의식을 드러낸 작곡가로 자리매김 돼 있지만, 그는 처음으로 자기 음악에 다양한 코드를 구사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은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일련의 코드 진행을 사용하여 뛰어난 음악적 형상화를 이룩한다. <친구>(1971)의 첫 소절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의 반복되는 ‘미’ 음은 끝없는 바다를 의미하고 여기에 부여되는 C-CM7-C7-F의 코드 진행은 끝없는 바다 위에 내리는 비를 연상하게 하여 가사의 시각화·공간화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인다.”【주2】이영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 <애인>(1972·이장희 작사 작곡 노래) 같은 작품은 화성적인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주 선율이 재미가 없다. <친구>는 무려 11음절의 가사를 ‘미’ 한 음으로만 일관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율 재미로 노래를 부르는 당시 우리나라 대중이 매우 부르기 어려운 노래이며…”【주3】요컨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반복을 풍부한 화성진행으로 극복했다.

 

     C         CM7   C7          F       C       Am          D7          G7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C          CM7    C7             F        Fm      C Am     Dm   G7   C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C    Gm6   A    Dm      G7     C   Gm6     A  A7     Dm D7   G G7
 눈 앞에 떠오 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 잎  위에 어른거리오
     C   Gm6    A     Dm     G7     C   Gm6    F A     D7   G7   C
 저 멀리 들리 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친구> 1절 가사

 

 <친구>는 김민기가 고교 시절 만든 작품이다. 동해안에 여름 야영을 갔다가 후배 한 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났다. 돌아오는 야간열차 안에서 참담한 심경을 담은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고교생이 작곡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성 진행이 세련되고 가사가 깊이 있다. 원래 죽음은 가요의 친숙한 주제는 아니다. 대중음악이 죽음을 주제로 다루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 점만으로도 이 노래는 독보성을 인정할 만하다. 이 때문에 70·80년대 학원 사태로 대학을 떠난 동료들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노래는 다양한 화성과 코드가 절대적 기준인 건 아니다. 이른바 쓰리코드란 게 있다. 주요 3화음의 코드만 쓰는 노래다. C장조일 경우 C-G-F-C로 진행하는 식이다. 산울림의 <아니 벌써>(1977·김창완 작사 작곡)가 대표적인 곡이다. A장조인 이 곡은 딱 A, E, D 3개 코드만으로 연주된다. 이렇게 화음 구성을 극소화시켜 단순하면서도 힘 있고 질주하는 음악을 펑크(punk), 펑크 록이라고 한다. 산울림은 최초의 펑크 밴드인 셈이다.


 “펑크는 일부러 단순한 음악을 만들었다. 록의 기준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음악이었다. 밴드의 연주는 바로 어제 결성한 듯 엉성했고 보컬은 초절정 고음 대신 악다구니를 써댔다. 곡은 대부분 3분 이내에 끝났고 쓰리코드를 고집하는 경우도 많았다.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1996·이상혁 작사 작곡)을 들어보자. 왜 펑크라 불리는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주4】

 

 

                                        산울림의 <아니 벌써> 음반

 

 

          E                  A           E                       A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
     E                   A           E                      A
 가벼운 아침 발걸음/ 모두 함께 콧노래 부르며
 D              A             D             A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D             A              D               A
 이리 저리 지나치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
                    <아니 벌써> 1절 가사

 

 그런가 하면 ‘머니코드’라는 코드 진행이 있다. C장조 기준으로 C-G-Am-Em-F-C-F-G로 나가는 캐논 변주곡 코드를 말한다. 캐논은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파헬벨이 만든 실내악인데 대중음악으로 다양하게 편곡돼 굉장히 친숙한 선율이다. 더 짧게는 C-G-Am-F 진행으로 간다. 머니코드란 이름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코드라 많이 팔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간단히 4 Chord로 부른다고 한다.
 이 진행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노래는 무척 많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1988·이영훈 작사 작곡),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1991·오태호 작사 작곡), 임재범의 <너를 위해>(2000·채정은 작사, 신재홍 작곡), 부활의 <Never ending story>(2002·김태원 작사 작곡) 등이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머니코드가 꼭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코드의 큰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코드란 것은 연주자의 취향과 곡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현식

 

 

 G             D            Em        Bm  Em                            C            D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G             D            Em         Bm  Em                Am7      C    D    G  D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G            D             Em        Bm  Em                           C            D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G             D        Em         Bm    Em          Am7     C     D     G  G7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C             D           G              Bm   Em Am Am7      Am    A     D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G             D      Em         D        C           G        Am          D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G            D    Em           D   C            G            D7          G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하략)
                                               <내 사랑 내 곁에> 가사


【주1】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조용필 207쪽
【주2】김창남 엮음, 김민기(한울, 2004) 484쪽
【주3】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민속원, 2006) 기타와 화성중심적 사고 235쪽
【주4】윤호준,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바람의 아이들, 2011)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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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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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때 배운 중급 러시아어 강독 책에 ‘중요한 대화(바쥐느이 라즈가보르)’란 글이 나온다. 사랑 고백 스토리다. 고백을 하기 위해 노심초사, 진땀 흘리는 심리 상태를 잘도 묘사했다.

 

 

                          ‘중요한 대화’ 삽화

 

 

 “오늘은 꼭 얘기할 거야.” 발로자는 다짐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해야 할까. 저녁 때 극장에 갔는데 표가 없다. “차라리 잘 됐어. 내가 사랑 얘기를 하려는데 영화에서도 사랑 얘기가 나오면 니나가 헷갈릴지도 몰라.” 카페로 간다. 내가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니나는 커피를 마시며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새로 쓴 시가 있느냐”고 묻는다. 기회다. 발로자는 최근 쓴 연애시를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카페엔 손님이 많아 옆자리까지 시 낭송이 들릴 것 같다. 거리로 나온다. 날씨가 따뜻해 집까지 걸어가며 얘기를 하기에 딱 좋다. 한데 니나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걸음을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열,…스물. 천이 되면 꼭 얘기해야지…. 니나가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야”라고 말한다. 잘 됐어. 7층까지 걸어 올라가면서 얘기해야지.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작동되고 있었다. 불행한 저녁이다. 그러나 모든 게 내 생각처럼 꼬인 건 아니었다. 5층까지 왔을 때 엘리베이터가 서버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그곳에서 마침내 나는 고백했다. 오래 전부터 사랑하고 있다고.

 

 사랑 고백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청춘이 망설이고 가슴 졸이며 고뇌하는가. 고백하기까지 또 얼마나 숱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하나. 그런 영화나 소설 속 장면도 많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1860)에 나오는 고백 장면도 인상적이다. 러시아 귀족의 딸인 엘레나와 조국해방에 헌신하는 불가리아의 가난한 유학생 인사로프가 사랑에 빠진다.

 

 인사로프와 엘레나는 비 오는 날 교회 근처에서 마주친다. 인사로프는 자기 처지를 알기에 조용히 떠나려던 참이었다. 엘레나가 먼저 사랑 고백을 한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먼저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군요. 자, 봐요, 내가 말했어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 한동안 껴안은 채 시간이 흐른다. 인사로프가 묻는다. “나와 어디든 갈 거야?” “이 세상 끝까지. 네가 있는 곳에 나도 있을 거야.” 인사로프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거지처럼 가난하고 러시아인이 아니란 점, 엘레나가 조국을 떠나야 할 것이며 많이 고생할 것이란 점, 여자 부모가 결혼을 승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 그들 앞에 놓인 문제점들을 열거한다. 여자는 대답한다. “그래, 다 알아…. 난 널 사랑해.”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 고백 장면에서 결혼 약속까지 일사천리다. 요즘 연애감각으론 터무니없지만, 우리도 사랑 고백을 청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걸로 여기던 시절이 그리 먼 과거의 일도 아니다.

 러시아어로 이 대목을 읽으면 두 사람 대화 과정에서 ‘당신(브이)’이란 호칭이 어느 순간 ‘너(뜨이)’로 바뀌는 걸 관찰할 수 있다. 독어 불어도 그렇지만 러시아어 2인칭엔 반말과 존댓말이 구분되는데 사랑을 고백하면서 자연스럽게 반말로 바뀐다. 그걸 우리말로 옮기려니 좀 어색하다.

 

 사랑 고백 노래로는 송창식의 <맨 처음 고백>(1974·송창식 작사 작곡)이 고전적이다. 앞서 소개한 ‘중요한 대화’ 글의 발로자처럼 기회를 엿보며 조마조마 해하고 우물쭈물하는 남자의 심리가 더없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끝내 고백을 결행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문자로 참 찌질하다.

 

 

                                             송창식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 번 먹는데 하루 이틀 사흘
 돌아서서 말할까 마주 서서 말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일주일 이주일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화를 내면 어쩌나 가버리면 어쩌나/ 눈치만 살피다가 한 달 두 달 석 달
…(중략)
 내일 다시 만나면 속 시원히 말해야지/ 눈치만 살피다가 일 년 이 년 삼 년
 눈치만 살피다가 지내는 한 평생
                                                <맨 처음 고백> 가사

 

   같은 앨범에 실린 <한 번쯤>도 비슷한 계열의 노래라 할 수 있다. <한 번쯤>은 송창식 노래 중 가장 대중적 성공을 거둔 노래에 속한다. 트로트풍의 리듬과 멜로디가 섞인 곡조가 친근하고, 앞에서 걸어가며 말을 붙여주길 기다리는 여자와 뒤따라가며 뒤를 돌아보기를 기다리는 남자의 입장을 코믹하게 묘사한 덕이다.

 

 

 

                                           김세레나

 

                                                    

 사실은 이보다 훨씬 전에 끝내 고백을 못하고만 청춘 남녀를 그린 노래가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1939·김다인 작사, 김부해 작곡)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드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드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했드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드래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드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했드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드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드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드래요 고까짓 것 했드래요
                                                    <갑돌이와 갑순이> 가사

 

 이 노래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혼합돼 한때 대중음악의 주요 장르로 부상한 신민요다. 가사가 해학적이지만 음미해보면 자못 교훈적이기도 하다. 좋아하면서도 솔직히 고백하지 못하다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세레나의 대표작으로 우리 귀에 친숙한 이 노래는 실은 1939년 발표된 원곡 <온돌야화>를 다듬은 것이었다.【주1】원곡 작곡자는 전기현(1909~1943?)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저작권협회엔 김부해(1918~1988) 작곡으로 나와있으나, 그가 <대전블루스>(1957·최치수 작사) 등을 작곡한 활동 시기가 1950년대부터란 점으로 미루어 그는 편곡자였던 것 같다. 김부해는 1965년 김세레나를 <새타령>(김부해 작곡)과 <갑돌이와 갑순이>로 데뷔시켰다.

 

 고백이 힘든 건 김동률이 부른 <취중진담>(1996·김동률 작사 작곡)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선 끙끙 앓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런 노래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비록 술기운을 빌려서이지만 고백을 결행한다. 사랑 고백도 진화하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할지도 몰라
 하지만 꼭 오늘 밤엔 해야 할 말이 있어/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그냥 하는 말이 아냐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한 번 널 품에 안고 사랑한다 말할게

 자꾸 왜 웃기만 하는 거니 농담처럼 들리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린애 보듯 날 바라보기만 하니…(중략)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아무에게나 늘 이런 얘기하는 그런 사람은 아냐
 너만큼이나 나도 참 어색해/ 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자꾸만 아까부터 했던 말 또 해 미안해/ 하지만 오늘 난 모두 다 말할 거야…(하략)
                                                                     <취중진담> 가사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 노래 댓글엔 이런 사연이 있다. 중학교 때 짝사랑 한 여자아이에게 고 3때에야 고백을 한 적이 있단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그렇지만 이 노래 덕분에 용기를 냈고 고백을 한 것에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댓글에 대해서도 ‘못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독특한 사랑 고백도 있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2005·최은하 작사, 윤일상 작곡)는 <맨 처음 고백>처럼 독백 형태의 고백이지만 그 고백은 훨씬 내밀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자는 ‘애인 있어요’라고 해놓고 애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그대’라고 털어놓는다. ‘그대’는 어지간히 무심한 성격인 듯 하다. 요즘도 애인 없이 지내냐고 묻고,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화자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다’고 독백하는 수밖에 없다.

 

 

 

                    이은미

 

<애인 있어요>를 이영현 버전으로 들어본다.

 

 

 아직도 넌 혼잔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 건가 봐 좋은 사람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중략)
 알겠죠 나 혼자 아닌 걸요 안쓰러워 말아요 언젠가는 그 사람 소개할게요
 이렇게 차오르는 눈물이 말하나요 그 사람 그대라는 걸
                                            <애인 있어요> 가사

 

 그러나 역시 고백은 고백이다. 시대가 달라졌느니 세대차니 따져도 본질은 변함없다. 태연이 부른 <만약에>(2008·송재원 작사, 김준범 이창희 작곡)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 등 고백을 하고 난 뒤에 벌어질 일에 대한 번민으로 가득 찬 노래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만약에>란 제목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내가 다가간다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용기 낼 수 없고
 만약에 네가 간다면 네가 떠나간다면/ 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자꾸 겁이 나는 걸
 내가 바보 같아서 바라볼 수밖에만 없는 건 아마도
 외면할지도 모를 네 마음과 또 그래서 더 멀어질 사이가 될까봐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에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인가 봐
 만약에 네가 온다면 네가 다가온다면/ 난 어떻게 해야만 할지 정말 알 수 없는 걸
 …(하략)                                                <만약에> 가사

 

 고백 하면 보통 처음 하는 고백을 의미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도 표현을 달리해 ‘고백’할 수 있다. 이선희는 <알고 싶어요>(1986·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에서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라고 노래했다. 그가 내 얘기를 일기장에 썼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랑의 징표일 터인데, 사랑하면 그런 것도 궁금해지는 거다.

 

 

                                         이영현

 


 이영현은 <사랑은 이렇게>(2012·개미 태윤미 작사, 개미 작곡)에서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어느 날의 너를 내 안에 채워가고”라고 노래하는데 절묘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분명한 건 사랑이 떠나가면 모든 게 끝난 거다. 그 마음을 이문세는 <붉은 노을>(1988·이영훈 작사 작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주1】김창남 엮음, 대중음악의 이해(한울, 2012) 한국 대중음악의 출발, 트로트와 신민요(이준희 집필)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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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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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밴드 사랑과 평화가 부른 <한동안 뜸했었지>(이장희 작사 작곡)는 그때까지 생소했던 16비트의 통통 튀는 리듬이었다. 그건 펑크(funk)라는 흑인음악 장르였는데, 젊은이들은 이 파격적인 리듬을 소화한 프로 밴드의 환상적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다. 가사도 재미있다.

 

 

                             밴드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한동안 못 만났지 서먹서먹 이상했었지
 혹시 맘이 변했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밤이면 창을 열고 달님에게 고백했지
 애틋한 내 사랑을 달님에게 고백했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
 안절부절했었지…(하략)
             <한동안 뜸했었지> 가사

 

 한데 가사에 옥에 티랄까, 문제가 있다. ‘안절부절했었지’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했었지’가 맞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문교부 표준어 규정에 따라 그렇다. 안절부절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란 부사지만, 동사로 쓸 때는 ‘안절부절하다’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하다’가 옳은 표기다. 비슷한 경우로 ‘주책이다’가 아니라 ‘주책없다’가 맞고, ‘칠칠하다’가 아니라 ‘칠칠치 못하다’라고 써야 한다. 이 노래는 계속 리메이크 되면서 지금도 대중에게 친숙하다. 당연히 ‘안절부절했었지’란 잘못된 표현도 계속 사용되면서 ‘언어 의미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 처음엔 헷갈리다가 계속 틀리게 쓰다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진다는 뜻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는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가사가 문법·맞춤법에 어긋나면 감동은 반감된다. 문맥상 뜻이 아리송한 가사도 그렇다. 크고 작은 가사의 오류들을 모아본다. 다양한 오류들엔 몇가지 유형이 있다.

 

 요령부득형

 

 첫째, 문맥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가사다. 노래 가사란 게 시처럼 함축적, 운율적인 것임을 감안해도 그런 것이 눈에 띈다. 1953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가사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와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부분의 주어·술어 관계가 모호하다. 누가 누구를 동정한다는 말일까. 뜻은 통하지만,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다. 경상도 아가씨의 애틋한 마음씨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가사 말이다.

 

 진방남이 1940년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가사에도 처음에 큰 실수가 있었다.

 

 

                                 <불효자는 웁니다> 신문광고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이국의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어푸러져 한없이 웁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가사

 

 진방남(나중에 작사가 반야월이 된다)은 일본에서 이 노래의 취입을 앞두고 기다리던 시간에 ‘모친별세’란 전보를 받게 된다. 그는 통곡을 삼키며 노래를 불렀으나 목이 메여 실패하고, 결국 다음날로 연기한 끝에 울음 섞인 절창으로 녹음을 마쳤다. 녹음실에서 그는 일본으로 떠나던 아들을 배웅하러 지팡이를 짚고 마산역까지 나오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오는 날 우산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3등 차표를 손에 쥔 아들을 향해 연약한 손을 흔드시던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녹음을 끝낸 뒤 마침내 통곡하며 온몸으로 울었다.


 하지만 2절 가사에서 모순이 발견된다. ‘드디어 이 세상을’이란 대목이다. ‘드디어’라는 말은 마치 어머님이 빨리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된다. 그렇다면 대단한 망발일 수 있다. 그래서 가수는 취입 이후 이 노래를 부를 때 ‘드디어’ 대신에 ‘어이해’ 혹은 ‘한 많은’으로 바꾸어서 불렀다고 한다. ‘기어이’로 표기된 가사도 있다.【주1】

 

 1952년 장세정이 부른 <샌프란시스코>(손로원 작사, 박시춘 노래)에 등장하는 비너스 동상은 상당히 뜬금없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꿈틀되던 그 시대에, 그것도 미항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꿈을 노래한다는 건 이해할 만 하지만 웬 비너스 동상일까.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니까 뭔가 동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주2】


 그러나 작사가 손로원이 무식해서 이런 노랫말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손로원(1911~1973)이 누군가. 그는 일제 치하에서 절필을 할 만큼 강단이 있는 고집쟁이로 알려져 있다. 그랬다가 해방과 함께 손석봉이 부른 <귀국선>(1946·이재호 작곡)을 필두로 활동을 재개했다. <물방아도는 내력>(1953·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홍콩 아가씨>(1952·이재호 작곡, 금사향 노래), <님 계신 전선>(1953·박시춘 작곡, 금사향 노래), <경상도 아가씨>(1953·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봄날은 간다>(1953·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1956·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 등 명곡들을 작사했다.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서민의 심정을 대변하고 그들의 애환이 절절히 녹아있는 가사로 사랑을 받았다.

 

 

                          금문교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
                           <샌프란시스코> 1절 가사

 

 전쟁 피란민의 애환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1953·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에도 요령부득의 표현이 나온다. 2절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가 이상하다. ‘고향이 그리워 꿈을 꾼다’는 뜻으로 쓴 걸로 추측되긴 한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문법이탈형

 

 이문세의 <옛사랑>(1991)은 작사·작곡자 이영훈이 “이 곡의 가사를 쓰고 난 후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가사에 애착을 표시했던 노래다. 가사 소절마다 떠나간 옛사랑의 추억이 절절하게 흐른다.

 

 

이문세의 <옛사랑>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거리 흰 눈에 덮혀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중략)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하략)
                                                           <옛사랑> 가사

 

 그런 만큼 더더욱 셋째 줄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란 표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여미우다’는 ‘남의 옷을 여미게 하다’란 뜻이므로 여기선 맞지 않는 표현이다. 가사를 보면 자기 옷깃을 여미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미다’ 또는 운율을 맞추려면 ‘여미다가’가 맞다. ‘여미우다’처럼 ‘-우-’ 같은 접사(接辭)가 들어간 동사를 사동사(使動詞)라고 하는데, 사동사란 ‘남에게 그 행동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다.【주3】

 

 이런 가사는 어떤가. <남성 넘버원>(1958·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박경원 노래)에서는 “남에겐 친절하고 겸손을 하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굳세어라 금순아> 1절에서는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3절에서는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본들’ 등 불필요하고 부자연스런 ‘을·를’이 첨가됐다. 신카나리아의 <무궁화 강산>(1932·전수린 작사 작곡)도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아라”라고 운율을 맞추기 위해 ‘를’을 붙였다. 이 노래는 해방 후 <삼천리 강산 에라 좋구나>로 제목이 바뀌었다.

 

 노래엔 날다(飛)란 말이 자주 쓰인다. 그런데 이 단어를 서술언으로 ‘나는’으로 변형하면 거의 예외 없이 ‘-으-’를 첨가해 ‘날으는’이라고 쓴다.
 이태원은 <솔개>(1982·윤명환 작사 작곡)에서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이라고 했다. 이정선은 <섬소년>(1974·이정선 작사 작곡)에서 “바다 저 멀리 갈매기 날으면/ 소년은 꿈속의 공주를 불렀네”라고 노래한다.
가곡이면서 윤연선도 부른 <얼굴>(1967·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 2절엔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이라고 돼있다.

 

 김홍석은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이 노랫말 중 ‘날으는’은 ‘나는’으로, ‘날으면’은 ‘날면’, ‘날으던’은 ‘날던’으로 고쳐 써야 옳다. 이 중에서 ‘날으는’의 경우는 ‘나는’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이는 1인칭 대명사 ‘나’와 보조사 ‘는’이 붙은 형태와 똑같다. 따라서 문장 속에 구현되는 경우,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언중들은 의도적이거나 그 역으로 무의식중에 ‘날으는’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어 이런 혼동을 막기 위해 예외적 변용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놀다, 살다’ 등도 ‘놀으는, 살으는’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주4】

 

 ‘여울진다’란 노랫말도 정체불명으로 쓰일 때가 있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으로, 급류와 비슷한 뜻이다. 따라서 여울지다는 ‘여울처럼 감정 따위가 힘차게 설레거나 움직이다’라는 뜻이 된다. 이선희는 <J에게>(1984·이세건 작사 작곡)에서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J 지난 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속 깊이 여울져 남아있네”라고 노래했다. 손색없는 용례다.

 같은 이선희가 부른 <나 항상 그대를>(1988·김민정 작사, 송시현 작곡)에도 여울지다가 나온다. “나 항상 그대를 그리워 하는데 그대는 어디로 떠났나/ 다정한 그 모습 눈물로 여울져 그대여 내게 돌아와요.” 이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나미

 

 

 나미의 댄스음악 <빙글빙글>(1984·박건호 작사, 김명곤 작곡)에도 나온다.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여기서는 세월이 여울져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굉장히 모호하다. 그런 채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스팝이라는 이 노래는 레전드가 되어 오늘도 불리고 있다.


 조용필은 <슬픈 미소>(1980·유현종 작사, 조용필 작곡)에서 “장미꽃 피는 날엔 돌아오마던 당신/ 여울지는 꿈속에서 그 미소를 찾아 헤맸지”라고 한다. 이것도 ‘여울지다’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말이다.

 

 뇌 과학자의 변호

 

 미국의 뇌 과학자이자 레코드 프로듀서인 대니얼 레비틴은 노랫말과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미국 록그룹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1976)를 두고 자신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상당히 긴 이 노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의견이 분분했다. 여기 나오는 ‘호텔’이 사이비 종교단체, 마약 또는 미국을 상징한다는 둥, 퇴폐한 미국 사회에 대한 경종이라는 둥…. 한데 음악 전문가인 레비틴도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돈 헨리(이글스의 보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른다고 해서 ‘원할 때면 언제라도 체크아웃해/ 하지만 떠날 수는 없어(You can check out any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하는 대목의 정서적 울림이 퇴색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즉 리듬, 선율, 화성, 음색, 가사, 의미가 노래에서 하나로 묶이기 때문에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애매하고 모순된, 혹은 노골적으로 얼버무린 대목이 등장해도 몇몇 요소가 이를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의미가 완벽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청자들이 각자 자발적으로 노래의 이해과정에 참여한다”고 썼다. 바로 그것이 노래가 엄청난 위력을 행사하는 이유라고 했다.【주5】
 

 

 난해하고 알아먹기 힘든 가사에 대한 레비틴의 태도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알쏭달쏭한 가사라도 통하며, 그렇다고 해서 노래의 위력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노래는 문학도 시도, 그렇다고 엄정한 학술논문도 아니며 그냥 노래일 뿐이다. 애써 고상해 보이려 할 필요도 없다.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다. 정답은 없다. 자유다. 그럼에도 다양한 가사 오류 사례들을 살펴본 이유는 그것이 관행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으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이란 고통스런 작업에 흠집을 내자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가사도 중요하지만 틀리지 않은 가사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는 거다.


 <월남의 달밤>(1966·반야월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 노래)란 곡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원래 노래 가사가 ‘남 남 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시작됐다. 월남이 섬나라가 된 거다. 나중 음반 제작사는 발매된 음반을 전량 폐기하고 새로 녹음을 했다. 가사를 ‘남 남 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 달밤’으로 수정해서였다.【주6】최희준이 부른 <내 사랑 쥬리안>(1961·손석우 작사 작곡)의 실수도 어처구니없다. 여기선 엄연히 서양 남자 이름인 쥬리안이 여자(‘내 사랑 쥬리안은 마음씨 고운 여자’)로 나온다.


 지금 시대에 그런 ‘촌스런’ 실수는 빚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복병이 생겨났다. 가사에 영어를 남용하는 문제다. 글로벌 시대에 자연스런 현상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 일부 언더그라운드 록그룹들은 ‘영어로 가사를 지으면 괜찮아 보이는데 한국어로 지어놓으면 왠지 유치하다’는 말도 한다.【주7】게다가 영어답지 않은 영어가사도 많다.

 

                                                        투르게네프

 

 “의혹의 날에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날에도 너만이 나의 안식처요, 의지였다. 강하고 참되며 자유로운 러시아어여! 네가 아니었다면 고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어떻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군들 그런 언어가 위대한 민족에 대한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러시아 최고의 미문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러시아어’란 시다. 이 정도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가 자기 말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주1】매일신문 웹페이지 2012년 5월 31일,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진방남 편
【주2】이영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민음인, 2002) 82쪽
【주3】김홍석의 논문 ‘대중가요 노랫말 속의 정서법 소고(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2007)’ 17쪽. 이 글을 쓰는 데는 이 논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는 현재 천안여고 국어교사로 재직중이다. 그는 비슷한 예로 이종용의 <너>(은빛처럼 날리우고  되돌아선), 조용필의 <태양의 눈>(구름에 가리워진 희미한 꿈)을 들었다. 여기서 ‘날리우고, 가리워진’은 ‘날리고,  가려진’으로 써야 올바른 표현이다. “이렇게 노랫말에서 곡의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을 위해 ‘-우-’를 첨가하는 경우는 흔한 편이며, 시어(詩語)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행 맞춤법으로는 옳지 않은 표현이다.”
【주4】같은 논문 19쪽
【주5】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 39~40쪽
【주6】이동순, 번지없는 주막(도서출판 선, 2007) 169~170쪽
【주7】이영미, 전게서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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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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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가사가 뛰어난 서정성을 보일 때 ‘시적(詩的)’이라거나 한 편의 서정시 같다고 한다. 이 말에는 가사와 시를 동일시하는 생각이 담겨있다. 정말로 가사와 시는 같은 걸까, 다른 걸까.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시는 감흥과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가사는 얼마든 시가 될 수 있다.

 

 먼저 잘 알려진 서정시 한 수를 읊는 것으로 시작하자.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閏四月)’이다. 1946년 청록집에 실렸다. 7·5조의 운율로 봄철 깊은 산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냈다. 이를 위해 ‘송홧가루, 꾀꼬리, 산지기 외딴집, 문설주’ 등 향토적 정감이 짙은 시어를 선택했다. 여기에 눈 먼 처녀가 등장한다. 그는 필시 가난한 처지일 산지기의 과년한 딸인데 앞을 못 본다. 그 처녀가 문설주에 귀를 대고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엿듣고 있다. 좋은 봄날, 세상에서 고립된 채. 어떤 느낌이 드나. 토속적이면서 적막한 분위기 속에 애절·애잔함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 시는 전형적인 서정시(抒情詩·敍情詩)다. 서정시의 한자 抒와 敍는 둘 다 ‘풀어놓다’로 어느 쪽을 써도 같은 뜻이다. 시인의 개인적 감정·정서를 풀어놓은 것이 서정시다. 이 서정시에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음악성이다. 서정시에서 음악적 운율·리듬은 필수적인 요소다. 여기엔 발생학적 근거도 있다. 영어로 서정시는 리릭(lyric)인데,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리리코스(lyricos)다. 리리코스는 그리스 악기 리라(lyre)를 타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또 영어로 서정시와 노래 가사는 같은 말, lyric을 쓴다. 우리가 가사와 시를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사와 시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때로 지하철에서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는 시가 마음에 와닿지 않고 생경하게 느껴질 때 슬그머니 드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뚱맞은 시보다 훌륭한 시상을 담은 노래 가사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 그럼 시인들은 가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53년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는 가사가 빼어난 절창으로 손꼽힌다.

 

 

                                                백설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주1】

                            <봄날은 간다> 가사      

 

 오래 전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로 이 노래를 지목한 일이 있다. 계간 시인세계가 2004년 봄호에서 현역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다. 1위가 <봄날은 간다>로 16표였고, 2위가 <킬리만자로의 표범>(1986·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와 <북한강에서>(1985·정태춘 작사 작곡 노래)로 각각 10표였다.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는 7표로 4위, 역시 양희은의 <한계령>(1985·하덕규 작사 작곡)이 6표로 5위였다.


 이 조사는 발표된 뒤 여러 차례 인용됐는데, 정제된 문학언어인 시를 쓰는 시인들이 과연 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흥미로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요에 일정한 심리적 선을 긋고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떨어내기도 했다. 문학적 격조와 자존심에 매어있을 것 같았던 많은 시인들이 흔쾌히 드러낸 노래 취향은 상당히 다양하고 열린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가사의 선호를 묻는 조사의 특성상 빠르고 비트가 강한 댄스, 록보다는 트로트와 발라드, 포크가 많이 나오기는 했다.
 

 

 시인세계에 기고한 글에서 천양희 시인은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언니 생각이 난다고 회상했다. “언니가 잘 불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다. 사랑하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중매 결혼을 했던 그 언니는 특히 연분홍색을 좋아해서 친정에 올 때는 꼭 분홍색 옷을 입고 왔었다. 그 언니는 친정에 오면 잊지 않고 뒷동산에 있는 성황당과 암자를 찾았다. …암자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 언니의 분홍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앞서 가던 언니가 나지막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봄바람에 휘날리던 연분홍 치마와, 언니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가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나도 조금 울 때도 있다.”


 이동순 교수도 자신의 책에서 누나를 추억한다. “1950년대 후반의 어느 꽃 피는 봄날, 백설희의 노래를 유달리 좋아하던 누님은 이 노래를 부르다 기어이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나도 공연히 서러운 마음이 가득해져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렸다. 나는 그때 누님이 왜 울음을 터뜨렸는지 아직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라는 노랫말 속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사연이 혹시 있었던 것일까?”【주2】


 천 시인과 이 교수의 언니·누나에 대한 추억에서 절묘하게 겹치는 것은 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울었다는 사실이다. 왜 울었을까. 이동순은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른다고 했지만, 천양희는 ‘우리네 여인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서라고 짐작했다. 그럴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들을 때면 가장 한국적인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게 되는 것이 우리 여인들의 보편적 정서였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봄날은 간다>엔 동명이곡(同名異曲)이 있다. 젊은 세대들은 ‘봄날은 간다’라고 하면 이 노래를 먼저 떠올린다.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김윤아 작사, 마츠토야 유미 작곡)가 그것이다. 2001년 한일 합작투자로 만든 동명 영화의 엔딩 타이틀곡이었고, 혼성밴드 자우림 보컬 김윤아의 솔로 데뷔곡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백설희의 노래도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유지태와 이영애가 주연해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호평 받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라면 먹고 갈래요?”가 명대사로 기억되는 영화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중략)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음…
                  <봄날은 간다> 가사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떠나간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정한(情恨)의 표출이었다면,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나눈 사람들을 그린 담백한 수채화 같다. 노래엔 사랑이란 말도 안 나온다. 즉 백설희 노래에서 느껴지는 한 같은 것은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사람’이 차지했다.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이 아니라, ‘그건 아마 사람도…’다. 하긴, 사람이든 사랑이든 상관없지 않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게 사랑이니까. 그러기에 만해도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김윤아의 이 노래 가사도 시인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카카오뮤직과 문학과지성사가 지난해 시인 14명에게 2000년 이후 노래 중 아름다운 노랫말 5곡씩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여기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2004·이소라 작사, 이승환 작곡),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2010·요조 작사 작곡), 김광진의 <편지>(2008·허승경 작사, 김광진 작곡),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2005·루시드폴 작사 작곡), 델리스파이스의 <고백>(2003·김민규 작사 작곡),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2008·윤덕원 작사 작곡), 그리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뽑혔다.

 
 한 두 곡 빼곤 내겐 대부분 생소한 노래들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이 확인된다. 요즘 노래가 서정성이 사라지고 음유시인도 보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건 부분적 진실일 뿐이며 지나친 일반화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심금을 울리고 누선을 자극하는 서정시 수준의 가사는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점에 대해서는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조탁한다는 시인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
 

 

 사실 가사와 문학, 시 사이에는 무슨 단단하고 높은 벽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가요사를 보더라도 일제시대에는 작사가에는 전문 작사가와 기성 문인 출신 작사가 등 두 부류가 공존했다. 기성 문인들인 이광수, 주요한, 김억, 이서구, 정인섭, 박영호, 김용호, 조명암, 윤극영, 이하윤, 박노홍 등이 ‘가요시(가사)’ 작품을 썼다.【주3】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1970년대 기념비적 저항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75)에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 이성현이 곡을 붙였고 1997년 안치환이 노래했다.

 

 

                                                          일러스트 권신아

 

 

 내 머리는 너을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새벽에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가사

 

 또 정지용의 ‘향수’를 박인수, 이동원이 불렀다(1989·김희갑 작곡). 김현수의 ‘토함산’을 송창식이(1978), 고은의 ‘세노야’를 양희은이(1971·김광희 작곡),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를 송창식이(1976) 노래했다. 박두진의 ‘해야’를 조하문이 개사해 불렀고(1987), 고은의 ‘가을편지’를 김민기가(1971), 정호승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안치환이(1990), 김동환의 ‘산넘어 남촌에는’을 박재란이(1965·김동현 작곡), 고은의 ‘작은배’를 조동진이(1974),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마야가(2003·우지민 작곡) 불렀다. 김광섭의 ‘저녁에’를 유심초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으로(1980·이세문 작곡) 부르는 등 시를 노래로 만든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가수, 특히 자작곡을 직접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의 생각은 어떨까.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은 <꿈>(1991) 등을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하는 노래에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반투명 정도의 말들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시적이어야 하고, 패션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주4】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가사 등을 통해 만만치 않은 서정시의 감각을 발휘해온 정태춘은 이렇게 말했다. “노랫말의 문학성이랄까, 노래가 붙지 않더라도 글 자체로서 완결성을 갖고 있는 가사, 튼튼한 상징과 허술하지 않은 스토리 구조 등을 가진 가사를 쓰고 싶었습니다.”【주5】실제로 그는 2004년 ‘노독일처(老獨一處)’란 시집을 내기도 했다.

 

 트윈폴리오의 윤형주는 이런 술회를 한 적이 있다. “노래가 자꾸 히트를 치다 보니 작사 작곡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버지(윤영춘 박사)에게 말했죠. ‘동주 형님(윤동주 시인) 시를 제가 작곡을 잘해서 노래로 발표해보겠습니다.’ 아버님이 생각을 한참 하시더니 ‘얘야 시 다칠라’ 하시면서 ‘시도 노래다. 시도 음이 있고, 화음이 있고, 리듬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주6】

   알려진대로 윤형주는 윤동주 시인(1917~1945)의 6촌 동생이다. 조영남은 “윤동주가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을 때 유골을 들고 온 사람이 형주 아버지 윤영춘 박사였다는 소리를 나는 여러 번 들었다”고 술회했다.【주7】이 일화는 윤형주의 아버지도 시와 노래를 크게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윤동주의 시를 대중가요로 만들었다가 행여 ‘민족시인’의 위상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가사가 시라는 인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가요시, 노래시란 말이 사용되는 것이 증거다. 가요시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이하윤(1906~1974)으로, 그는 시인·영문학자이자 다수의 신민요, 가요 작사가이기도 했다. 그는 1930년대에 가요시 창작에 몰두했다. 시집 ‘물레방아’(1939)엔 ‘가요시초’가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또 가요시의 문학사적 의의를 가장 먼저 주목한 국문학자는 조지훈(1920∼1968)이다. ‘한국문화사서설’(1964)에서 가요시의 정확한 정리를 후학들에게 간곡히 요망하고 있다.【주8】<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을 쓴 원로 작사가 반야월(1917~2012)도 가사를 즐겨 가요시라고 표현했다. 이동순은 노랫말은 민중들의 생활시라면서 이 가요시 장르가 현대문학사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포종점>의 작사가 정두수는 가사 대신 노래시란 표현을 자주 쓴다.
 

 

 국내 유일의 아트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김두수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 “당신의 노랫말은 멜로디를 떼어내면 한편의 시로 평가받는다. 시집을 낼 생각은 없는가”란 질문이 던져졌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없다. 시 자체는 고유의 음률을 가지고 있어 노래가 될 수 있지만 노래 가사는 음가를 생각하고 작업한 글이기 때문에 멜로디를 떼어내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주9】시와 가사는 별개란 그의 논리는 상당히 독보적인 것 같다. 그는 시와 가사가 청각예술이란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은 시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반면 멜로디·음악이 없는 가사는 독자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가 학창시절 도보여행 중 얻어냈다는 아래의 <나비>(1988)나 <보헤미안>(1991) 같은 가사를 보면 그 말이 겸손하고 엄밀한 성격의 소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두수의 <나비> 유튜브

 

 

 저물녘 바위 밭에 홀로 앉아 그윽히 피리를 불 때
 어데선가 흰나비 한 마리 날아와 피리 끝에 앉았던 기억
 에헤라 내가 꽃인줄 알았더냐, 내가 네님인 줄 알았더냐
 너는 훨훨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꽃을 찾아가거라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한 송이 꽃
 나비처럼 날아서 먼 하늘로 그저 흐느적 날고 싶지
 에헤라 내가 꽃인줄 알았더냐, 내가 네님인 줄 알았더냐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나비처럼 날고 싶지
 아 눈멀고 귀먼 내 영혼도 그저 흐느적 날고 싶지
                           <나비> 가사

 

 전윤호 시인은 계간 시인세계의 설문조사를 분석한 글에서 “시와 가사가 일맥상통한다고는 하나 시인들이 좋아하는 가사들은 자신들이 쓰는 시에 비해 어느 정도 감정의 과잉이나 감상적인 측면이 용납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가사와 시의 차이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깎고 또 깎아야 하는 시보다는 아무래도 노랫말이 더 여과 없는 감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지당한 분석이다. 가요는 예술성 못지 않게 대중성이 중요하다.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심오함을 버리고 경박함을 취해야 할 때도 있다. 노래는 유치한 게 강점이 될 수 있다. 시와 가사에는 그런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문학 대 유행가 가사라는 낡은 이분법도 극복할 수 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크리스토퍼 릭스는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1962)>를 부른 전설적 포크 가수 밥 딜런에 대해 대시인인 엘리엇, 키츠, 테니슨과 같은 반열에 놓고 정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 그의 작품을 분석한 500쪽 짜리 ‘딜런의 죄악에 대한 통찰력(Dylan’s Visions of Sin)’이란 제목의 책에서다. 영국 계관시인 앤드류 모션 경은 각급 학교에서 그의 노랫말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주10】우리도 더욱 훌륭한 음유시인들과 아름답고 친근한 노래시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주1】이동순에 따르면 이 노래 가사 2절은 SP음반 발표 당시 두 번째 형태였으나, 언제부턴가 세 번째 형태로 개작되어 불리고 있다. 이동순, 번지없는 주막(도서출판 선, 2007) 386~387쪽
【주2】같은 책 388쪽
【주3】같은 책 226쪽
【주4】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도서출판 선, 2009) 조용필 213쪽
【주5】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정태춘 187쪽
【주6】같은 책 윤형주 61쪽
【주7】조영남·이나리, 쎄시봉 시대(민음인, 2011) 171쪽
【주8】이동순, 번지없는 주막 173쪽
【주9】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김두수 370쪽
【주10】Wikipedia, Bob Dylan 2015년 1월 16일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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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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