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래나 시구가 머리 속에 들어와 좀처럼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는 <마포종점>이란 노래가 그랬다. 재작년 말 퇴직을 앞두고서였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는데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런 시작 부분이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그때까지 필자는 이 노래를 은방울자매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른 트로트곡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 가사가 별 대책 없이 퇴직을 맞는 필자의 정서에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노래 속에서 화자는 갈 곳 없는 전차의 처지에 공감한다. 그리고 필자는 다시 그 심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화자와 전차, 필자를 한데 묶어준 것은 ‘갈 곳 없는’ 처지란 정서였다. 이 경우 작자와 노래(화자), 노래와 듣는 사람 사이에서 감정이입이 중층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것은 <마포종점>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 감흥을 예로 든 것일 뿐, 노래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공감을 매개하고 위로를 전달한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다. 인간에게 ‘호모 ○○’이라고 여러가지 학명을 붙이는데,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음악적 인간)’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은 그만큼 음악과 가까운 존재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좋아하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어보라. 누구나 한두 개 정도는 꼽을 것이다.
이 책은 칼럼 형태로 자유롭게 쓴 가요 비평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세 가지 주안점(主眼點)을 설정했다. 첫째는 ‘노래가 위로다’라는 것으로, 책의 주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살아가는 데는 위로가 필요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 애별리고(生老病死 愛別離苦) 때문에 그렇고 여러가지 사회적·정치적 사건들 때문에 그렇다. 신문기자 출신인 나는 요즘 신문을 읽으며 좋은 뉴스, 나쁜 뉴스를 분류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데 좋은 뉴스는 찾기 어렵고 대부분 나쁜 뉴스들이다. 한탄스럽고 울화가 치밀게 하는 소식들이다. 이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말도 된다.
물질적으론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세상살이는 더욱 팍팍해지고 힘겨워졌다. 세대 불문하고 그렇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찾은 일자리래야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것들이 대다수다. 긴 불황 속에 기성세대의 삶도 불안의 연속이다. 노인들의 행복도도 OECD 최저 수준이다. 갑의 횡포에 시달리는 을들에 관한 기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시대와 사회에서 그나마 손쉽게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노래라는 생각이 이 책을 쓰게 했다. 돌이켜보면 노래는 시대의 굽이굽이마다 사람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일제 때 나온 트로트부터 포크 중심의 7080 노래들, 90년대 발라드까지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불러온 ‘흘러간 노래’들은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데 더없이 좋은 도구다.
물론 그 위로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위로는 노래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건 문제 해결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위로라고 해서 그 의미를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니다. 노래가 할 수 있는 것, 노래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것이다. 대중의 정서를 위무하고 오락거리가 돼준다는 것, 그게 어딘가. 이 위로 부재의 시대에.
연안부두
두번째 주안점은 지금이 필자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 등으로 은퇴에 들어가는 시기라는 사실이다. 앞서 내가 <마포종점> 노래 얘기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인생엔 여러 중요한 고비가 있고 그때마다 그게 가장 중요해 보이기 마련이지만, 퇴직이야말로 한 개인에게 엄청난 격변인 게 분명하다. 30년 이상 출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갈 곳이 사라졌다. 당혹스럽다. 각오는 했지만, 날이 가면서 정도가 더 심해진다. 갈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낯섦이.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일인 가구가 가장 많아진 시대라는데도 우리 식당은 아직 혼자 식사하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못 된다. 퇴직을 두고 ‘인생 2막’, ‘제2의 전성기’라며 격려하는 책들도 쏟아지지만 다수의 은퇴자들에게 현실은 ‘갈 곳 없는 처지’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데, 현재 7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10년 안에 사회의 전면에서 퇴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일차적으로 이 책의 주제, 즉 ‘노래가 위로다’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 책이 다루는 트로트로부터 7080 노래들, 90년대 발라드까지 이른바 ‘흘러간 노래’에 익숙한 세대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의 노래들을 비평적으로 음미하면서 함께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갈 곳 없는 처지는 꼭 베이비붐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젊은 세대라 해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들과 갑을관계 속 ‘을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갈 곳 없는 처지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상당수가 노년 빈곤에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근자에 가요계에 불고 있는 복고풍이 주목된다. 그게 이 책의 세번째 주안점이다. 복고풍 덕분인지 젊은 세대들도 ‘흘러간 노래’에 열린 태도를 드러낸다. 지금 이는 복고 유행에 대해서는 새로운 아이돌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고 90년대 노래만큼 감흥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일종의 문화적 조로(早老) 현상이라고 우려하는데, 거기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노래가 위로다’란 관점에서나 옛날 노래가 지금보다 생명력도 길고 장르도 다양했던 것을 감안하면 복고풍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썼다(‘복고풍, 왜 다시 부나’ 칼럼). 유난히 세대간 단절이 심한 분야가 대중음악이다. 그렇다면 간헐적으로 불어주는 복고풍은 세대간 단절을 완화해주는 연결고리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주안점을 갖고 노래 칼럼을 집필하되 수용자, 즉 노래를 듣는 사람이 중심이 된 기술을 하려고 노력했다. 노래와 가수에 얽힌 뒷얘기나 에피소드 위주의 서술은 되도록 피하고 가사의 사회학적, 사회심리학적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다. 트로트 장을 따로 만들어 나이가 들면서 트로트가 좋아지는 이유 등을 규명해 보았다.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결국은 같은 음악 현상인데 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 서로 소통·교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필요할 때는 클래식에 대해서도 조금씩 언급했다. 또 가사 분석에 그치지 않고 기타 코드, 조바꿈, 국악과의 접목, 클래식과의 크로스오버, 가창력 등을 소재로 음악적 분석도 해보았다.
얼마 전 낮에 전철을 타고 인천 연안부두에 갔다. 작년 봄 아이들이 세월호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그곳이다. 밴댕이회 한 접시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아주머니한테 김 트리오의 <연안부두>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파미레파 미레도미/ 미파파#솔#미라~’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흐른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작사가 조운파는 언젠가 술회했다. “학교 다닐 때 종종 연안부두에 앉아서 바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별하는 사람, 감격적으로 해후하는 사람, 망망대해를 그저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또 한 쪽에는 생선 파는 사람, 손님 소매를 끌어당기는 작부 등 여러 모습이었다. 나중 노래 만드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걸 기억해 썼다.”
그의 회상과 아날로그적 낭만이 있는 가사, 작곡가 안치행의 구슬픈 멜로디가 좋다. 위로를 얻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이런 감성에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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