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동안 서양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로의 노래를 들라면 나는 블루스를 들겠다. 블루스를 음악적으로 정의하자면 Ⅰ-Ⅳ-V7이란 단순 코드 진행을 기초로 해서 12마디 혹은 16마디 악절로 이뤄진 형식을 말한다. 가사의 내용은 무엇이든 가능하다.…하지만 원래는 불운을 맞아 곤경에 처하게 된 사람을 노래했다. 그래서 블루스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슬픈 사람이 슬픈 음악을 듣고 기분이 나아지게 됨을 보여주는 예다.”【주1】


 미국의 뇌 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이 쓴 책 ‘호모 무지쿠스’에서 한 말이다. (나는 가요 칼럼들을 쓰면서 그의 책 ‘호모 무지쿠스-원제는 The World in Six Songs:How the Musical Brain Created Human Nature’와 ‘뇌의 왈츠-원제는 This Is Your Brain on Music: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를 많이 참고했다. 이 참에 저자를 간략히 소개하면, 그는 베이비붐 세대로 1957년 히피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로큰롤의 황금기에 사춘기를 보내며 록 밴드를 결성해 연주생활을 했고, 녹음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로 많은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신경심리학을 공부해 음악 인지심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마디로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에 두루 밝은 사람이다.)

 

 블루스에 대한 오해

 

 블루스가 어떤 음악이길래 그는 이런 말을 했을까? 그보다 먼저 할 얘기가 있다. 나의 블루스에 얽힌 추억이다. 대학 2학년 땐가 서울 명동의 어느 ‘고고클럽’에서 처음 블루스란 춤을 춰봤다. 졸업반 선배들의 사은회 뒷풀이 자리였다. 쌍쌍파티여서 짝이 없던 나는 부랴부랴 친구한테 부탁해 파트너를 ‘조달’했는데 뜻밖의 퀸카였다. 그땐 아직 디스코가 상륙하기 전이라 춤이라고 하면 다 ‘고고춤’이었다. 문제는 고고춤 뒤의 블루스 타임이었다. 한층 어두워진 조명 아래 애절하고 느린 음악에 맞춰 방금 만난 파트너와 껴안고 스텝을 밟는다는 게 난감했다. 다행히 성격 시원한 그녀가 잘 리드해준 덕에 넘어갈 수 있었다. 아득한 기분 속에 감미롭게 흐르던 노래를 기억한다. <Feelings(필링스)>였다.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모리스 앨버트가 1975년 불러 장기간 빌보드 상위 차트에 오른 노래다. (참고로 이 노래는 전형적인 블루스 곡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옛날엔 이 곡조에 맞춰 블루스를 많이들 추었다.)

 

 

모리스 앨버트의 <Feelings(필링스)>

 

 Feelings nothing more than feelings/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Teardrops rolling down on my face/ Trying to forget my feelings of love
 사랑의 느낌 오로지 그 느낌밖에 없습니다/ 내 사랑의 느낌을 잊으렵니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 내 사랑의 느낌을 잊으렵니다

 Feelings for all my life I’ll feel it/ I wish I’ve never met you girl
 You’ll never come again
 사랑의 느낌 내 삶을 다해 느낄 겁니다/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당신이여 …(하략)
                                 <Feelings(필링스)> 가사

 

 대학 시절 블루스의 추억부터 먼저 꺼낸 것은 블루스에 대한 오해를 말하기 위해서다. 달착지근하면서 음울하고 때로는 음침한 댄스 음악, 그것이 나를 포함한 블루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었다. “블루스는 미국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절규이며 자유를 향한 갈구의 음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퇴폐적인 카바레에서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장면이 떠오르는 이른바 ‘작업용 춤곡’으로 인식되었다.”【주2】
 어째서 이런 오해가 일어났나. 우리의 블루스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블루스란 말이 들어온 건 1930년대였다. 당시 젊은 음악평론가 김관은 1936년에 발간된 ‘여성’지의 ‘사교무도(私交舞蹈)와 음악’이란 글에서 블루스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부르스’와 ‘슬로 폭스트롯토’의 리듬과 ‘악센트’를 비교하는 등 블루스를 댄스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블루스가 유럽의 사교댄스계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그 본질이 상당 부분 왜곡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주3】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블루스가 사교댄스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블루스는 원래 그런 게 아니었다. 미국 흑인들의 고통스런 역사가 담겨있는 음악이다. ‘블루스’라는 단어 자체가 우울함을 뜻하는 ‘블루’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짐작되듯 고된 노동, 인종차별,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던 흑인들의 한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악이다. 흑인들에게 블루스는 현실의 애환을 잊게 해주는 위로의 음악이자, 삶의 힘겨움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구원과도 같은 음악이었다.
 초기의 블루스(포크 블루스·컨트리 블루스)는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19세기 중엽 이후 생긴 것이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길거리 술집이나 시장터 축제에서 연주하는 블루스 맨(Blues Man)들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독특하게 느린 블루스의 리듬은 백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많은 춤곡들이 나왔으며, 그러한 음악과 춤에도 블루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주4】

 

 초기엔 블루스의 본고장 미국에도 블루스에 대한 편향적 시각이 존재했다.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블루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미국 사회의 지배 세력이었던 백인 계층(WASP) 청중들에게 블루스는 줄곧 인종주의적 맥락과 함께 타자화되면서 ‘탄식하는 듯한 음조’로 간주되고 ‘타락한 것’ 나아가 ‘술자리에나 적합한 것’으로 폄하되어 온 것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이때 바람직한 음조로 간주된 것은 유럽적 전통에 뿌리를 두는 음질서이며, 블루스는 백인 취향의 팝음악 양식에 대한 타자로서 수용돼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블루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핸디(1873~1958)마저 1903년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블루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을 자신의 자서전에 기술하면서 자신이 “들어본 것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음악”이었다고 술회했다.【주5】 그는 나중 블루스의 고전으로 꼽히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작곡한다. 블루스가 생성 초기에는 발상지, 즉 고향에서도 생소한 음악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윌리엄 핸디

 

 한국인에게 블루스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난과 한(恨)이란 요소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민족이 누군가. 유난히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들 한다. 근세에도 일제 강점과 동족상잔에 이어 남북분단을 겪고 있다. 미국 흑인들이 겪어온 고난과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블루스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말이다. 둘을 묶는 공통분모가 바로 한이다. 물론 이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음악에 대한 개인의 공감에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데, 하물며 집단적 공감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찌됐든 출발부터 이런 오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스는 그 후 우리 노래에서 친숙한 장르가 된다. 이난영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1939·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은 작곡자 김해송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재즈 스타일의 곡인데, 블루스 음계의 특징인 ‘미♭’를 구사한다.(블루스는 제3음 미와 제7음 시를 반음 떨어뜨리는 블루노트가 특징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해방 후 1960년대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식 블루스 가요가 히트곡 대열에 들어섰다. <인천 블루스> <애수의 블루스> <워싱턴 블루스> <비애 블루스> <소공동 블루스> <청춘 블루스> <대전 블루스> <순정의 블루스> 등이 그것이다. 이 노래들은 대도시 곳곳에서 확산되어가던 사교댄스의 유행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주6】

 

 안정애가 부른 <대전 블루스>(1959·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는 끈적한 블루스 리듬과 애절한 가락으로 대전역을 배경으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은 대히트곡이다.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 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 블루스> 1절 가사

 

 주현미가 1986년 부른 <눈물의 블루스>(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초기 한국에 전달된 바 ‘사교댄스로서의 블루스’의 성격을 충실히 드러내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오색등 네온불이 속삭이듯이 나를 유혹하는 밤
 가슴을 휘젓듯이 흐느끼는 색소폰 소리 아 나를 울리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떠날 당신이기에
 그대 품에 안기운 채 젖은 눈을 감추네
 아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연주자여
 그 음악을 멈추지 말아요
                         <눈물의 블루스> 1절 가사

 

 한국형 블루스

 

 이런 <○○블루스> 노래들은 형식적으로는 느린 네 박자 춤곡이며 내용은 애절하고 비통한 정서를 담았다는 점에서는 블루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대부분 트로트 리듬과 가락이 바탕이 됐고, 블루노트도 아주 예외적으로 구사되는 정도였다. 요컨대 블루스 음악 특유의 ‘블루지(bluesy)’한 느낌을 전달하기는 부족했다. 시인 김선우는 언젠가 블루스 가수 강허달림에 관한 글에서 ‘블루지’를 ‘애이불비(哀而不悲) 흐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슬프되 슬픔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몸속으로 깊이 스미게 했다가 이윽고 연의 줄을 풀어주듯 조금씩 간곡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라고 썼다.【주7】

 

 

                                          한영애


 그 점에서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의 등장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신촌블루스는 그때까지의 일본식 블루스를 철지난 양식으로 치부하고 미국식(혹은 영국식 록 블루스에 기반한) 블루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주8】1988년 나온 신촌블루스의 데뷔앨범은 기존 블루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영애의 절절한 감정이 전해지는 <그대 없는 거리>(엄인호 작사 작곡)와 엄인호와 정서용이 함께 노래한 <아쉬움>(엄인호 작사 작곡), 절창 박인수의 진가를 발휘한 <봄비>(1969·신중현 작사 작곡) 같은 곡들은 청량제 역할을 하며 호평을 받았다. 30대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음반임에도 수십만 장이 팔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생경했던 정통블루스를 모태로 했기에 더욱 그랬다.【주9】

 

 엄인호와 정서용이 함께 부른 <아쉬움>

 

 별빛같은 너의 눈망울에 이슬방울 맺힐 때/ 마주잡은 너의 두 손에는 안타까운 마음뿐
 조그마한 너의 두 손으로 내게 전한 편지는/ 하고픈 말마저 다 못하고 끝을 맺고 말았네
 뒤돌아 가는 너의 모습 너무나 아쉬워/ 달려가 너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마주잡은 너의 두 손에는 안타까운 마음뿐/ 뒤돌아 가는 너의 모습 너무나 아쉬워
 …(하략)                            <아쉬움> 가사

 

 재미있는 것은 신촌블루스가 이렇게 정통 블루스를 추구하면서도 이른바 ‘뽕끼’를 탈피하지는 못했다는 부분이다. 가령 신촌블루스 2집(1989)에 실린 <골목길>(엄인호 작사 작곡)은 그 전에도 다른 가수들이 불렀지만 호응이 적었는데, 김현식이란 보컬을 만나자 비로소 매력이 드러났다. 김현식의 소울풀한 음성과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애절한 ‘뽕끼’의 궁합은 너무나 이상적인 것이었다.【주10】엄인호와 함께 이 밴드를 주도한 이정선은 이렇게 회고했다. “신촌블루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블루스는 블루스인데 사실 음악 스케일은 뽕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중이 좋아할 대중취향적인 음악이었죠. 한데 점점 블루스를 공부하고 본질에 접근하게 되면서 엄인호랑 ‘우리는 뽕 블루스 밴드’라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주11】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신촌블루스의 정체성은 ‘한국형 블루스’란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부르는 대중가요가 다른 나라 사람의 것과 같을 수 없다. 그건 블루스도 예외가 아니다. 들여오되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글머리에 인용한 책 ‘호모 무지쿠스’에서 <Both Sides Now>(1969)의 가수 조니 미첼은 “대부분의 백인 가수들은 빌리 홀리데이나 베시 스미스 같은 흑인 가수들의 감정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흑인들은 음들 하나하나에 온갖 인간의 감정을 가득 담아서 노래하죠. 젊었을 때 나는 전형적인 백인 포크가수의 목소리였고, 감정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조니 미첼 같은 대가수도 흑인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는 그 이유로 “흑인 문화는 훨씬 균형이 잡혀 있어서 감정과 영성에 많은 가치를 두지만, 백인 문화는 이런 것들을 억압하려고만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주12】

 

 

  한영애가 부른 <그대 없는 거리>

 

   그런 점에서 영미권 대중음악의 원류라고까지 하는 ‘흑인음악’에 대해 한국인이 문화적 친연성을 갖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흑인들이 주도하는 음악 장르는 여럿 있다. 블루스 말고도 소울, 훵크(funk), 재즈와 알앤비, 그리고 힙합과 랩도 있다. 이런 음악들에 대한 우리의 수용 능력은 탁월한 편이라고 본다. 그 친연성이 과연 공통된 한의 정서에서 비롯된 건지 다른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우리 대중음악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주1】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149~150쪽
【주2】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신촌블루스 285쪽
【주3】최유준, 대중음악과 공감의 그늘(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 블루스와 슬픈 음악의 정치학 61쪽
【주4】위키백과, 블루스 2015년 3월 13일 최종 수정
【주5】최유준, 전게서 45~46쪽
【주6】같은 책 67쪽
【주7】한겨레신문 2015년 3월 19일자 ‘블루스 너머 강허달림’ 칼럼
【주8】최유준, 전게서 68쪽
【주9】레전드 100 아티스트, 285쪽
【주10】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음반리뷰(선, 2008) 228~229쪽
【주11】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인터뷰(선, 2009) 271쪽

【주12】대니얼 레비틴, 전게서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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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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