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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복고풍, 왜 다시 부나

 다시 복고풍이 불고 있다. 복고풍(復古風)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제도나 풍속 또는 그런 유행을 뜻한다. 그것이 영화와 TV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음식과 가전제품에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방영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는 1990년대 유행했던 가요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20년 전 가요의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물론 ‘토토가’만을 갖고 복고풍이 불었다고 말할 순 없다. 몇 해 전 시작한 ‘나는 가수다’(MBC), ‘불후의 명곡’(KBS2)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이미 가요 복고 바람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토토가’에 소개된 노래들

 

 

 영화 ‘국제시장’과 ‘쎄시봉’이 흥행에 성공한 것도 대중문화계의 복고 바람으로 볼 수 있다. 이보다 앞서 나온 ‘건축학 개론’(2012)이 영화의 복고풍을 이끌었다. 음식에도 복고풍이 현저히 보인다. 한 제과회사는 옛날에 먹던 스타일의 도넛을 출시했는데 상품 이름도 고풍스럽게 ‘도나쓰’라고 붙였다. 광고 카피는 “엄마랑 장 볼 때 먹던 그때 그 도나쓰”다. 인쇄 활자체도 복고풍으로 했다. 붕어빵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냉동 붕어빵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가전업계는 복고적 디자인의 오디오 등을 선보이고 있으며, 매장의 BGM(배경음악)도 1990년대와 70·80년대 히트곡을 중심으로 틀고 있다.

 

 

       ‘그때 그 도나쓰’의 복고적 광고

 

 

 가요에서 복고풍이 분다는 건 두 종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옛날에 나온, 소위 흘러간 노래를 선호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새로 나온 노래의 분위기가 복고적이라는 것이다. 이 글은 이 가운데 첫번째 현상 분석에 집중하려 한다. 흘러간 노래를 즐기는 건 개인적으로는 취향이지만 사회적으론 유행이 된다. 유행이란 말은 일정 기간 동안 퍼졌다가 사그라지며, 그 현상이 어느 정도의 세월을 거치며 반복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1996년 3월 7일자 경향신문 문화면에는 ‘봄을 여는 복고풍 서정가요’란 제목으로 “새봄을 맞는 가요계에 서정성을 내세운 복고풍 노래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 한 해 전인 1995년 3월 이 신문은 ‘중견가수들 복고풍 노래 봄바람 탔네’란 제하에 이문세·변진섭·이승철 등의 복고풍 노래들이 앨범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콘서트 7080’이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2004년 11월 시작해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다. 1985년 시작한 트로트 중심의 ‘가요 무대’에는 못 미치지만 꽤 장수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사측이 밝힌 이 프로의 기획 의도는 이렇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당시의 인기 곡, 명곡을 오리지널 가수를 통해 들어보고, 그 시절의 추억과 향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눠 가는 시간을 만든다.’
 11년 전 이 프로그램이 출범하게 된 데도 필시 그럴만한 가요계 내부적, 사회적 이유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복고풍 노래의 유행은 대략 10년 정도를 주기로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건 과학적이지는 못한 개인의 의견이다. 복고풍 노래 유행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상당한 자료 축적과 가요사적, 나아가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2개의 칼럼은 주목할 만하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일찌기 ‘콘서트 7080’을 두고 ‘신흥 복고주의, 젊음의 유예인가 유배인가’란 칼럼을 썼다. 거기에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제목 그대로 1970년대와 80년대의 대중음악, 특히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중심으로 인기 있었던 노래를 들려주는 ‘그 시절 그 노래’ 프로그램”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7080 세대를 겨냥한 이 프로가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보건대 또 하나의 ‘가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우리 대중음악 산업의 허약한 체질 때문에 30대만 넘어도 ‘원로가수’ 대접을 받는 기이한 풍토가 엄연하지만 그래도 아직 40대에 지나지 않는 음악가와 관객들이 그 시절 그 노래를 주고받는 것은 문화적 조로(早老) 현상의 한 단면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이어 이런 ‘젊은 복고주의’에 대해 “너무 일찍 늙는 게 아닌가 하는, 저마다의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한창 젊었을 때 맘껏 불렀던 노래로 잠시 유예시키는 것”이라며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주1】
 
 서울 음대 민은기 교수도 대중음악에서 부는 복고의 바람에 비판적이다. 그는 ‘새로워야 대중음악이다’란 신문 칼럼에서 복고를 ‘가까운 과거를 불러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보고, 추억에 매달리다 보면 그것을 지나치게 미화하게 되고 앞으로 나가려는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어 “대중음악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자신의 과거”라는 영국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말을 소개했다. 또 “그 태생부터 젊음을 위한 젊은이의 음악이 바로 대중음악”이라며 “대중음악에 미래를 향한 창조와 도전이 넘쳐나길 바란다”고 썼다.【주2】물론 자연스럽지는 못한 것 같다. ‘불후의 명곡’ 프로에서 젊은 여자 가수들이 복고적 의상을 하고 나와 70년대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젊고 늙은 관객들이 갈채를 보내는 모습이.

 

                                                     민은기 교수

 

 나도 옛날에 쓴 신문 칼럼에서 비슷한 논지를 편 적이 있다. 음악 관련 칼럼은 아니었지만 ‘좋았던 옛시절, 망각의 역사’란 글에서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복고풍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물었다.
 “올봄 여성 패션은 연둣빛 실크 스커트 같은 복고풍이 주류라는 소식이다. ‘올드 패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신세대들까지 이 패션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복고풍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나보다. 인간 본연의 아련한 과거에 대한 향수, 추억, 그런 것들이 복고풍 유행의 요인일 것이다. 구세대의 흘러간 노래 취향이나 ‘옛날이 좋았어’란 식의 입버릇에도 복고적 심리가 깔려있다.…과연 옛날은 ‘꿈엔들 잊으리요’를 노래할 만큼 좋은 것이었나.” 그러면서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노스탤지어를 경계하고 “역사발전은 과거는 과거이며 우리의 아카디아는 미래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글을 매듭지었다.【주3】

 

 그러나 이런 논지에 대한 반론도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내가 쓰고 있는 연속칼럼의 대주제인 ‘노래가 위로다’란 관점에서다. 이 관점에 서서 보면 복고풍을 이른바 진취성과 연결짓는 발상이 지극히 일면적 고찰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듣는, 생소한 노래에서 우리가 위로를 얻기는 어렵다. 이는 많은 음악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어릴 때 들은 노래의 기억과 취향이 평생 간다. 즉 위로가 된다. 트로트 세대, 포크 세대가 요즘 노래에 흥미를 못 갖고  취향이 수십 년 전 노래들에 머물러있는 건 음악에 대한 인간 본성과 관련된 문제이지 가치관이나 진취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회상은 권리다. 노인한테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강요는 경우에 따라 욕이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우리가 서양 고전음악을 지칭할 때 쓰는 클래식이란 개념을 흘러간 옛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한 옛노래에도 어느새 고전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인정할 경우 서양고전을 여러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다양한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과 옛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것을 굳이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다.


 둘째, 복고풍이 혹시 지금 노래의 흠결과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한 블로거의 글에서 본 건데, 노래교실에서 계속 90년대 노래가 올라오자 그가 선생님에게 왜 신곡은 안 올리고 옛날 노래 타령이냐고 푸념했다고 한다. 대답은 요즘 아이돌 노래는 따라 부르기 어렵고 90년대 노래처럼 감흥이 적다는 것이었다. 복고풍에는 난해한 요즘 노래에 대한 반발도 작용한다는 말이다.

 

 

김건모의 3집 앨범 ‘잘못된 만남’(1995) 표지

 

 셋째, 시대적 변화, 산업구조적 변화도 작용했다. 90년대 인기를 얻었던 곡은 차트 상위권에 6개월~1년간 머물렀다. 주간차트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간도 2~3개월에 이른다. 1994년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한 김건모의 <핑계>(1993·김창환 작사 작곡)는 13주간 주간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연간 1위 인기곡인 패닉의 <달팽이>(1995·이적 작사 작곡) 역시 6개월간 상위권을 지켰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1997·김종환 작사 작곡)와 조성모의 <투 헤븐>(1998·이승호 작사, 이경섭 작곡) 등은 거의 2년간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요즘 음원차트나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곡을 대중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주간차트 10위권에 3주 이상 머무르는 곡이 손에 꼽힐 정도로 흥행 수명이 짧다.【주4】음반시대에서 음원시대로 대중가요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지금보다 생명력도 길고 장르도 다양했던 옛날 노래를 찾게 되는 이유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복고풍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왜 복고풍이 부는지, 역사적 맥락을 면밀히 살펴 거기에 담긴 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복고적 성향이 있으며, 특히 노래에서 그게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좋다.


【주1】정윤수, ‘신흥 복고주의, 젊음의 유예인가 유배인가-콘서트 7080에 드러난 문화적 조로 현상의 이면들’(문화예술 2004년 12월호, 문화예술진흥원)
【주2】중앙일보 2014년 12월 31일자 오피니언 민은기 칼럼 ‘새로워야 대중음악이다’
【주3】경향신문 2001년 3월 14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칼럼, ‘좋았던 옛시절, 망각의 역사’ 김철웅 국제부장
【주4】경향신문 2015년 1월 2일자 방송연예면 ‘토토가 열풍…90년대 히트곡 넘치고 솔로가수 전성시대’,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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