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는 무엇일까. 아내나 남편, 즉 배우자(配偶者), 부모, 자식, 형제, 스승, 애인, 친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그리고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그럼 친구는 어디쯤 놓아야 하나. 진정한 친구는 필요하고 또 소중한 존재다. 한 번 물어보자. 남녀간의 사랑과 친구 사이의 우정, 뭐가 더 중요할까. 둘을 비교한다는 건 의미없는 우문(愚問)이지만 이런 현답(賢答)은 가능할 것 같다. 사랑보다 더 스스럼없는 게 우정이라는. 가령 사랑에서 비롯한 고통, 괴로움마저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관계가 친구이며 우정이라는.
보컬그룹 피노키오가 1992년 부른 <사랑과 우정 사이>(오태호 작사 작곡)는 우정으로 알고 만나던 남녀 사이가 어느 순간 사랑으로 발전한 걸 불현듯 깨닫고 당황스러워 하며 상대를 떠나는 아픈 심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노래는 남녀간의 우정이 과연 지속가능한 거냐는 해묵은 논쟁을 지폈음직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머리를 쓸어올리는 너의 모습/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부턴지 무엇 때문인지/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난 두려워
어차피 헤어짐을 아는 나에게/ 우리의 만남이 짧아도 미련은 없네
누구도 널 대신할 순 없지만/ 아닌 걸 아닌 걸 미련일 뿐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중략)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우연보다도 짧았던 우리의 인연/ 그 안에서 나는 널 떠나네
<사랑과 우정 사이> 가사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의 갈등은 특이한 소재이긴 하지만 이 계열의 노래도 몇 곡 발견할 수 있다. 1985년 양하영이 부른 <친구라 하네>(강영철 작사 작곡)는 이런 노래의 원조격이 아닌가 한다.
양하영이 부른 <친구라 하네>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 긴 날을 마주 보며 살아도 친구라 하네
사랑이라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 봐/ 느낌 곱게 간직하며 그저 친구라 하네
인연 인연보다 강한 운명 운명보다/ 더 따뜻한 신의 사랑으로 만나
서로 호흡이고 서로 느낌 되고/ 서로 닮아가며 서로가 전부인 친구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 긴 세월 지나가도 사랑을 친구라 하네
사랑이라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 봐
…(중략)
긴 세월 지나가도 사랑을 친구라 하네/ 사랑이라 말하면 가슴 떨림 다신 없을까 봐
사랑이야
<친구라 하네> 가사
노래 마지막은 탄식 같은 ‘사랑이야(도시도라)’로 마무리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사랑을 사랑이라 말 못하고 그저 친구로, 아니면 동료·선후배 사이로 치부하며 괴로워하는 관계가 요즘도 있을까. 있을 거다. 마음의 흐름은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한 거니까. 2AM이 2009년 부른 <친구의 고백>(박진영 작사 작곡)이 그렇다.
꽤 오래됐어 내 맘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지/ 혼자서 괴로워한지
언제부턴가 니가 울 때마다/ 너를 울리는 남자가 너무나 미웠어
차라리 내가 널 지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는 내가 널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Baby 이제는 내게 와/ And be my lady 너무나 오랫동안
지켜봤어 말없이 서서/ 안타까운 가슴을 숨기며
친구로 친구로 지내야 한단 이유로/ 목까지 차올랐던
그 고백을 참아야 했어/ 하지만 이제는 고백할게
너를 사랑해
…(하략) <친구의 고백> 가사
여기서 방향을 약간 틀어, 여자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게 되는 상황도 노래는 놓치지 않는다.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2000·김창환 작사 작곡)이 그런 스토리인데 막판에 뉘우치고 우정과 의리를 선택한 게 대견하긴 하다.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아냐 이게 아닌데 왜 난 자꾸만 친구의 여자가 좋을까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왜 내 맘속엔 온통 그녀 생각뿐일까
친구 몰래 걸려온 그녀의 전화가 난 왜 이리도 설레일까
냉정하게 거절하면 되는데 왜 난 그녀를 거절하지 못할까
정말 난 미치겠어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오랜 친구와의 우정을 외면한 채 여자 땜에 흔들리는 게
너무나 괴로워 나만 포기하면 되는데
왜 난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을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지
미안해 내 친구야 잠시 너를 기만했던 걸
지금까지 너에 대한 내 우정이 아직도 좀 모자란가 봐
이해해 줘 내 친구야 잠시 흔들렸던 우정을
누군가가 너와 나의 친구 사일 질투해 시험했던 거라
그렇게 생각해 줘
뭐야 정말 이게 뭐야 왜 하필 난 친구의 여자가 좋을까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 왜 난 자꾸 그녀에게 끌리는 걸까
친구와 그녀가 다퉜다는 얘길 듣고 왜 내가 웃는 걸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헛된 기댈 왜 난 자꾸하는 것일까
정말 난 모르겠어 이런 내 자신이 싫었어
내 욕심만 채우려 우정을 잠시 망각했던 내 자신이 싫었어
너무나 괴로워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아
이젠 모든 걸 다 잊고 난 친구 곁으로 돌아가야 하겠어
…(하략) <흔들린 우정> 가사
재미있는 건 다운타운 디제이 출신 김창환이 역시 작사 작곡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1995)도 신세대적 삼각관계가 소재였다는 점이다. 이 곡이 들어있는 김건모의 3집은 280만장이 팔려 기네스북에 올랐다. 평론가 임진모의 말이다. “<잘못된 만남>이 그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신세대들의 사랑법을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내 친구랑 사귀고 있더라…. 이건 그 당시 우리나라 노래 가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청춘들이 더 열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주1】
그러나 지금까지는 친구·우정의 본령을 담은 노래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성 친구에게 우정을 넘어선 연애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때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잘못된 것이랄 수도 없다. 다만 친구에 관한 진짜 좋은 노래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김민우가 부른 <휴식 같은 친구>(1990·박주연 작사, 하광훈 작곡)는 여자친구가 남자들의 우정이란 어떤 건지 궁금해하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노래 전반부는 슬로 템포로 진행되다가 간주가 흐른 뒤 후렴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준 친구였고(미미미레미파/파미파레레레미파미)’부터 빨라진다. 강한 드럼 비트가 뒷받침해준다. 이런 템포 변화는 필요할 때 서로 힘이 돼주는 친구 사이를 표현하기 위한 것 같다. 정말이지, 살다 보면 그런 친구가 그립다. 쑥스러워 말은 안해도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 미더운 친구….
김민우의 <휴식 같은 친구>
내 좋은 여자친구는 가끔씩/ 나를 보면 얘길 해달라 졸라대고는 하지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며 말해달라지
그럴 땐 난 가만히 혼자서 웃고 있다가/ 너의 얼굴 떠올라 또 한 번 웃지
언젠지 난 어둔 밤길을 달려/ 불이 꺼진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는 들어가
네 옆에 그냥 누워만 있었지/ 아무 말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어
한참 후에 일어나 너에게 얘길 했었지/ 너의 얼굴을 보면 편해진다고
나의 취한 두 눈은 기쁘게 웃고 있었어/ 그런 나를 보면서 너도 웃었지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준 친구였고
또 괴로웠을 때는 나에게 해답을 보여줬어
나 한번도 말은 안했지만 너 혹시 알고 있니
너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걸 …(하략)
<휴식 같은 친구> 가사
최백호가 부른 <영일만 친구>(1979·김명원 작사, 최백호 작곡) 속의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바다가 좋아 바닷가에서 산다. 가사엔 생략돼 있어도 말이 적고 가슴은 따뜻한 친구일 거란 느낌이 온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젊은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하략)
<영일만 친구> 가사
이숙의 <우정>(1974·길옥윤 작사 작곡)은 학교를 졸업하며 작별하는 친구들에게 우정을 간직하자고 다짐하는, 참 고전적인 노래다. 그때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오 사랑하는 친구 즐거웠던 날들/ 꽃 피고 지는 학원 꿈같이 지냈네
세월은 흘러가고 작별의 날이 왔네/ 젊은 새처럼 높이 다 같이 날으네
우리들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자/ 행운을 빌며 안녕 친구여 안녕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와도/ 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을 펴다오
추운 겨울이 오면 봄이 가깝다오/ 검은 구름 위에도 태양이 빛난다오
우리들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자/ 행운을 빌며 안녕 친구여 안녕
친구여 안녕
<우정> 가사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용복의 <친구>(1973·김영광 작사 작곡)도 학창시절 친구를 그리워하는 노래다.
나에겐 진정한 친구가 있었네 나에게 둘도 없는/ 그러나 그 친구 내 곁을 떠나갔네
내 마음 아직도 다정한 꿈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 친구 지금은 어디서 무엇할까
즐겁던 학창시절 돌이켜 생각하니/ 내 마음 옛날같이 변함없건만
친구야 친구야 어디에 있느냐 소식을 전해다오/ 친구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친구> 가사
박상규가 부른 <친구야 친구>(1977·전우 작사, 이복윤 작곡)도 친구 노래의 명곡 반열에 들 만하다. 박상규는 그야말로 친구 같은 목소리, 친근한 창법으로 이 노래를 소화했다. 그는 2013년 작고했는데, 조영남은 그를 대단한 술꾼으로 회고한다. “상규 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술이 바닥날 때까지 마신다. 시간이 얼마나 소비되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닭 똥구멍처럼 입을 모아 안주를 씹는데 뭐 안주랄 것도 없이 밥상 위에 놓인 모든 음식을 다 끝까지 먹어치운다. 불가사의하게 술과 음식이 한입으로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주2】그가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얼마나 유쾌하게 어울렸을지 이 노래를 들으면 눈에 선하다.
박상규의 <친구야 친구>
여보게 친구 웃어나 보게/ 어쩌다 말다툼 한번 했다고 등질 수 있나
아지랑이 언덕에 푸르러간 보리 따라/ 솔향기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던
아하 자네와 난 친구야 친구
여보게 친구 웃어나 보게…(중략)
개구장이 시절엔 누가 컸나 키를 재며/ 동구밖 황토길에서 공차기 하던
아하 자네와 난 친구야 친구…(하략)
<친구야 친구> 가사
박효신이 부르고 김범수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친구라는 건>(2004·한경혜 작사, 황찬희 작곡)은 신세대 감각을 살린 친구 노래다. 졸업 뒤 술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가 앞으로 우정이 변치 말자고 다짐한다. 부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젊은 시절 친구와 나누었던 호연지기는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그 아련한 추억만 남기 십상인 것이다.
박효신·김범수의 <친구라는 건>
학교를 졸업하고 넥타일 처음 매고/ 우리 학교 앞 그 골목 주점에 앉았지
한 잔씩 채워 가는 술잔에 담긴 얘기/ 우리 지난 날 꾸었던 꿈들을 꺼냈지
정말 얼마만인거니 알게 모르게 변한 너/ 허나 시간이 우릴 데려가면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되지/ 언제나 널 생각했어
힘에 겨운 세상을 만날 때/ 떠오른 건 처음이 너였어
십년 후에 십년을 얹어 간데도/ 우리 마음은 이대로 변하지마
사랑에 빠졌다고 사진을 꺼내는 너/ 그녀 말하며 웃는 널 보니 나도 설레
이별을 마시면서 눈물을 쏟지 않길/ 이젠 그녀와 행복한 사랑을 바랄게
나의 세상과 시간에 항상 들어와 있는 너/ 혼자 있어도 가슴 뜨거운 건
언제나 함께인 친구란 말 뿐/ 언제나 널 생각했어
네가 있어서 좋은 걸/ 우린 언제나 친구야
서로 같은 꿈으로 뭉쳤던 우리/ 다른 세상을 가지만 함께인 걸…(하략)
<친구라는 건> 가사
박효신(오른쪽)·김범수가 <친구라는 건>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다.
최희준이 부른 <맨발의 청춘>(1964·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은 의리와 사랑을 함께 노래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노래가 갱스터 멜로 영화의 주제가였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가사엔 없지만 화자는 의리를 중시하는 뒷골목 깡패다. 그러나 우연히 사랑에 빠지면서 목숨마저 내던진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 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맨발의 청춘> 1절 가사
【주1】레전드 100 송(스코어, 2014) 401쪽
【주2】조영남·이나리, 쎄시봉 시대(민음인, 2011)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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