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음악)는 왜 생겨났을까. ‘위로의 힘’ 때문이라고 답해놓고 보면 그럴 듯하다. 왜 사람들이 열심히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듣는지 설명이 된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대답이다. ‘어떻게’가 빠졌기 때문이다. 노래는 어떻게 위로의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노래와 위로 사이의 메커니즘(작용원리)은 무엇인가. 여기엔 심리적 요인과 신경과학적 요인 2가지가 있다고 본다. 좀 거창해 보이므로 쉽게 말해보자. 노래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비결은 ‘공감’과 ‘호르몬’ 덕분이다.
공감의 힘
몇 달 전 박진영이 SBS ‘K팝스타4’에서 어떤 참가자의 노래에 대해 이런 심사평을 했다. “아쉬웠다. 음정이 불안하니까 감정이입이 안 됐다.” 이건 굉장한 혹평이라고 봐야 한다. 가수나 가수 지망생이 노래를 하는데 감정이입이 안 됐다는 건 그저 박자가 불안했다거나 음이탈이 있었다는 것과 다르다.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가슴으로 부르지 못했다는 비판이나 마찬가지다.
타냐 불라노바란 러시아 여자 가수가 <깔르이벨나야(자장가)>를 부르는 장면이 생각난다. 이 노래는 홀로 남겨진 미혼모가 아기를 재우며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라고 독백하는 내용인데, 유튜브를 보면 그녀는 여러 무대에서 이걸 부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그럴 수 있는 건 노래에 감정이입이 잘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슬픈 노래라고 해서 다 울며 부르라는 법은 없다. 가령 진미령은 <하얀 민들레>(1979·신봉승 작사, 유승엽 작곡)라는 슬픈 노래를 밝고 경쾌하게 부름으로써 더욱 슬퍼지는 역설적 효과를 얻었다.)
타냐 불라노바의 <깔르이벨나야(자장가)>
감정이입(感情移入)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투사하는 것이다. 노래에 있어, 감정이입은 대략 3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첫째, 작사·작곡가가 작품을 만들 때다. 둘째,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다. 셋째, 청자가 이 노래를 들을 때다. 싱어송라이터의 경우는 첫째와 둘째 단계가 합쳐진다. 어쨌든 노래는 만들고, 부르고, 듣는 단계에서 감정이입이 중층적으로 이뤄지는 예술이다.
감정이입은 미학적 용어이기도 한데, 미학이라고 하면 왠지 쓸 데 없이 심오한 얘기가 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일상적인 말 ‘공감’으로 바꿔 써도 하등 문제 될 게 없다. 실제로 감정이입을 설명하는 말에는 공감이란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위키백과는 감정이입을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게 이입시키거나 대상의 감정을 자신에게 이입시켜서 서로 공감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은 감정이입 항목에서 “비슷한 것으로 ‘공감(共感·sympathy)’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입이나 전달을 말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식물·무생물 등과의 관계는 포함되지 않는다. 카운슬링을 할 때 이 공감의 작용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공감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카운슬러의 자격이 없다고 한다”란 설명을 붙여 놓았다.【주1】교육심리학 용어사전은 “공감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감정, 지각, 사고를 대신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주2】
따라서 감정이입이란 말 대신 공감이나 일체감,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를 써도 뜻은 통한다. 다소 장황하게 감정이입과 공감에 관해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바로 공감이 위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위로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노래에 감정을 불어넣어 공감을 일으키면 위로가 된다.”
이것이 노래가 위로의 힘을 발휘하는 심리적 요인, 즉 공감, 공감력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또 그 감정을 혼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그걸 공감이라고 한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렇다. 흔히들 “공감하면 기쁨은 배가(倍加)되고 슬픔은 반감(半減)한다”고 한다. 만약 인간에게 공감을 원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노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또 한가지는 왜 하고 많은 예술 분야 가운데 노래를 위로의 매개체로 지목하는가란 질문에 관한 것이다. 강렬한 감정이입·공감력을 가진 다른 장르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다른 여러 예술과 비교해 노래의 공감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 접근성과 일상성 때문이다. 영화, 소설, 연극, 무용, 미술 등도 우리를 위로할 수 있겠지만 노래만큼 일상적이고 접근이 쉬운 건 못된다.
호르몬의 과학
노래를 듣는 것을 통한 심리적 공감은 위로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글머리에 심리적 요인과 함께 신경과학적 요인을 얘기했다. 노래는 우리의 몸 속에 의학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움직이는 것이다. 일본의 음악 심리 카운슬러 사이토 히로시의 설명이다. “뇌의 여러 부위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대뇌변연계(大腦邊緣系)란 곳이 있다. 이곳에서 분비되는 것이 도파민과 베타 엔도르핀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성행위를 할 때나 잠을 잘 때 느끼는 다행감(多幸感·euphoria)은 바로 이 물질 덕분이다. 도파민, 베타 엔도르핀, 세로토닌은 기분을 고조시키고 감정을 컨트롤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측좌핵(側坐核)의 활동이 촉진되면서 도파민 분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단지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 뇌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감정까지 이끌어내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주3】
음악이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그의 설명도 유용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대표주자는 코르티솔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 심신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들은 후에 코르티솔이 저하하고 심리 상태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음악을 들음으로써 도파민, 베타 엔도르핀 등의 분비가 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떨어진 것이 과학적으로 측정됐다. 이는 음악치료의 효용성을 보여준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요컨대 ‘생리현상’이다.【주4】
뇌의 구조와 대표적인 대뇌물질【주5】
음반 프로듀서 겸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대중음악과 신경전달물질 두 방면 모두의 전문가랄 수 있다. 그도 음악치료에 관심을 표명한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이 행사하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매일매일 느낀다. 음악으로 병이 치유된 사람들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뇌졸중, 기타 퇴행성 뇌 질환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양로원이나 재활원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을 들으면 뇌의 화학구조에 변화가 일어나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줄고 면역체계가 튼튼해지며, 직접 노래하거나 연주하면 이런 효과가 증대된다. 사람들에게 노래 교습을 시킨 다음 이들의 혈중 화학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옥시토신의 농도가 몰라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시토신은 오르가즘 때 분비되어 기분을 좋게 해주는 호르몬으로…서로 간에 강한 유대감이 생긴다. 사람들이 함께 노래할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이유는 …음악의 사회적 유대기능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음악 청취는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 세로토닌 수치가 실시간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명상음악은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린다.”【주6】
노래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노래를 통해 공감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로는 꼭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다. 음악의 치유력은 의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이 부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1988·김종진 작사 작곡)를 들으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어떤 노래가 위로를 주느냐는 질문엔 정답이 없다. 이 곡은 탄탄한 구성과 김종진의 ‘인간적인’ 보컬로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특히 가사가 음미할 만 하다. 가령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이란 구절.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변하는 이유가 어려서란다. 즉 미숙해서 중심을 못 잡고 왔다 갔다 하게 된다는 진단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의 딜레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지 않은 체 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멤버 전태관은 말한다. “김종진 보컬이 잘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굉장히 매력이 있어요. 어느 정도 어눌하고 그렇지만 느낌만큼은 다른 사람이라면 못 살리는 것 같아요.”【주7】
봄여름가을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모두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 변하겠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너도 변했으니까
너의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 변한거야
이리로 가는 걸까 저리로 가는 걸까
어디로 향해가는 건지 난 알 수 없지만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
그래 그렇게 변해들 가는 건 자기만 아는 이유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너도 나도 변했으니까
모두 변해가는 모습에 너도 나도 변한거야 …(하략)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가사
【주2】한국교육심리학회, 교육심리학용어사전(학지사, 2000)
【주3】사이토 히로시, 음악심리학-마음을 컨트롤하는 소리의 기술(스카이 출판사, 2013) 46~47쪽
【주4】같은 책 64~66쪽
【주5】같은 책 48쪽
【주6】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107~114쪽
【주7】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봄여름가을겨울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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