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은 대중음악을 통제하려 든다. 그런가 하면 대중음악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치의 개입
송창식 음반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 땐 무정하더니 왜 왜 왜 자꾸자꾸 불러 설레게 해
아니 안되지 들어서는 안되지 아니 안되지 돌아보면 안되지
그냥 한번 불러보는 그 목소리에 다시 또 속아선 안되지
안들려 안들려 마음 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들려 안들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 아 아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가던 발걸음 멈춰선 안되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이대로 돌이켜선 안되지…(하략)
<왜 불러> 가사
1975년 송창식이 만들고 부른 <왜 불러>다. 이 노래는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에 쓰인 건데 곧 둘 다 금지곡이 되고 만다. 영화에서 이 곡은 병태와 영철이 장발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장면에서 흐르는데, 이게 당국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다. 장발 단속에 응하지 않은 게 공권력에 대한 저항 아니냐는 식으로. 그렇다면 괘씸죄다. <고래사냥>도 ‘고래’가 실권자를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져 금지됐다는 추측이 돌았다. 당시 예술문화윤리위(예륜)의 공식적 금지 사유는 ‘시의에 맞지 않음’이었다고 한다.
특히 박정희 집권 기간에 이런 검열과 통제가 끝도 없이 이뤄졌다. <아침이슬>(1970)을 만들고 부른 김민기가 겪은 고초도 황당하다. 이 노래도 1975년 뚜렷한 사유 없이 금지곡이 됐다. 대학생들의 유신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때 그는 군 복무 중이었다. 김민기는 영문도 모른 채 보안부대에 소환됐고 곧이어 최전방으로 재배치돼 사단 영창에 보내졌다. 관련된 일화도 있다. 1980년대 초 그는 모 수사기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수사관은 <아침이슬> 가사에 나오는 ‘긴 밤’을 유신체제로, ‘태양’을 김일성 체제라고 해석한 대외비 책자를 펼쳐놓고는 추궁했다. “긴 유신체제의 밤을 마감하고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을 열렬히 맞이하자”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김민기는 되물었다. “이 노래는 1970년에 만든 거다. 10월 유신 선포가 몇 년도였느냐.”【주1】
양희은 <아침이슬>
이 노래는 양희은이 다시 부르기도 했는데 양희은은 훗날 “노래를 지은 김민기나 나는 이 노래가 학생들의 시위에 사용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노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1970년대 대학을 다니며 시위 현장에서 <아침이슬>이 불려지는 것을 보며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내가 부른 노래랑 달랐다. 노래의 무서운 사회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주2】역설적이게도 <아침이슬>은 1973년 정부가 고운 노래로 선정하기도 한 곡이다.【주3】
그럼에도 이 노래가 저항의 성가로 두고두고 불리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도 좋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걸 담은 그릇, 곧 음악이라고 본다. <아침이슬>은 멜로디와 화성적 울림이 뛰어나다. 포크 록 장르로 분류되지만 당시 포크로는 발군의 다양한 코드를 구사했다. 아까 저항의 성가라고 했는데, 가령 이 노래의 종결부 “나 이제 가노라”에서 쓰인 C-F-Fm-C는 찬송가가 끝날 때 흔히 나오는 화성이다. 그런 분위기가 노래에 영웅적 비극성을 부여한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하략) <아침이슬> 가사
박정희 대통령은 가요를 통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건전가요’를 보급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스스로 곡을 만들기도 했다. <새마을 노래>(1972), <나의 조국>(1976)이 그것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 노래> 1·2절 가사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무궁화 꽃 피고 져도 유구한 우리 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 겨레
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
조상들의 피땀어린 빛나는 문화유산/ 우리 모두 정성 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
<나의 조국> 1·2절 가사
이걸 국민건전가요란 이름으로 전국 각처에서 주야장천 틀게 했다. 조국 근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던 시절이었으니 국민의식 개조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본다. 문제는 그 자의성(恣意性)이다.(여기서 恣는 ‘제멋대로, 방자하게’란 뜻이다.) 이 대목에서 이미자의 절창 <동백아가씨>(1964·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얘기를 해야겠다. 동명 영화 주제가로 첫선을 보인 이 노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얼마나 반응이 컸던지 관객이 별로 안 들어 간판을 내렸던 영화가 재개봉돼 매진을 거듭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노래는 발표된지 2년이 다 된 1965년 말 방송윤리위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다. 이유는 왜색이었다. 말하자면 라 시 도 미 파 5음계를 주로 쓰는 요나누키 단음계적 노래란 것이다. 여기서 첫번째 자의성이 제기된다. 당시 트로트 음악은 거의 단조 5음계, 즉 왜색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동백아가씨>였나. 여기에 대해서는 그해 한일 국교정상화로 악화된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당시 최고의 인기곡 <동백아가씨>에 왜색 딱지를 붙여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자 <동백아가씨>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동백아가씨> 가사
두번째 자의성은 그런 박정희가 국민의식 개조를 위해 손수 지었다는 <나의 조국> 곡조 역시 왜색 트로트란 점에서 드러난다. 이 노래 첫 소절의 계명은 ‘라라도미 미레파미 라라시도시라미/ 도도시라 시라파미 도미미시미미라’이다. 이게 <동백아가씨>의 첫 소절 계명 ‘미파미도미파라 도도도도시/ 라시도파미파라 라라시도시’과 대차 없는 왜색인 것이다. 왜냐하면 제4·7음(레와 솔)이 빠진 왜색 단조 트로트 가락이기 때문이다. 장조 곡인 <새마을 노래>도 왜색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첫소절 계명 ‘솔라도라레레레 솔솔미레도도도/ 미미레미솔솔라솔 라라솔미레레도’를 보면 역시 제4·7음(파와 시)이 빠진 도 레 미 솔 라의 요나누키 장음계 곡조다. 칼자루를 쥔 권력이 제멋대로 ‘왜색’이란 칼춤을 춘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태춘은 1993년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카세트 테이프 3000개를 이른바 비합법 음반으로 만들어 판매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는 공륜의 사전 심의를 규정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지루한 투쟁이 이어졌고 헌재는 마침내 1996년 10월 31일 위헌결정을 내렸다. 사전 심의가 언론ㆍ출판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음반의 사전심의제는 폐지됐다. 그러나 지금도 정부는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술을 언급한 대중가요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제재하는 등 개입의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노래의 비판과 저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인 김춘수의 ‘꽃’(1952)이다. 꽃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건 꽃의 존재를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꽃은 진정한 꽃이 된다. 다분히 관념적임에도 아름다운 시다. 미당 서정주가 노래한 ‘국화 옆에서’(1948)의 절창성은 어떤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라고 한 미당의 상상력, 감수성에 탄복한다. 아무 정치·이념성도 없는 이런 시를 순수시라고 한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란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당신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을 부를 때
장미라고 할래요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 못 이룬 나를 재우고 가네요
어여뿐 꽃송이 가슴에 꽂으면/ 동화 속 왕자가 부럽지 않아요
…(하략) <장미> 가사
4월과 5월이 부른 <장미>(1979·김미선 작사, 백순진 이정선 작곡)다. 이 노래도 사랑스런 그 여인을 장미로 아름답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도 부른다는 말이 나온다. 시 ‘꽃’ 만큼 관념적이고 심오하진 않게, 그냥 ‘장미를 닮은 당신을 장미라고 하겠다’고 한다. 순수시를 원용하면 이런 노래는 순수노래다.
“그러나 어떤 시인에게는 시대의 감수성이 시대와 불화하는 것이 된다. 그는 숙명적으로 잠수함 속 토끼처럼 예민한 시대의 감수성을 앓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한번 써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청마의 ‘바위’처럼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고 노래하고 싶지만 그에겐 인종(忍從)만이 미덕이 아니다. 결코 침묵할 수 없다. 그에게도 잠 못이루는 밤이 있지만 그건 비정규직과 함께 나누는 아픔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더 정확하게는 “회피할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다.”【주4】
2011년 가을 송경동이라는 시인이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내가 신문에 썼던 칼럼 일부다. 구속 사유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였다. 시인은 구속 중 유치장에서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고 이런 소감문을 올렸다.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사람들의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제가 무슨 고민이 깊어 그랬을 거라고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다만 사는 게 조금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탁발한 시인의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요즘 와서는 그런 표현도 별로 안 쓰지만 송경동은 세상 잣대로는 참여시인이다. 그런데 그는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고 “다만 사는 게 조금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이 태도가 가슴에 와닿았다. 국가, 민족이나 사회개혁, 하다못해 진보 같은 말은 빼버리고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해서’라는 게.
가수, 싱어송라이터들 가운데도 이른바 참여파가 있다. 김장훈은 지난해 6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자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 ‘1000만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 참석했다. 그때 이런 얘기를 했다. “사실 많이 망설이다가 이 자리에 왔다. 사람들이 아픈데 무대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노래를 못 할 것 같더라. 태어나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적은 처음이다.”【주5】괜히 그런 생각이 든다. 김장훈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송 시인처럼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해서’….
나는 참여문학이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사회적 발언, 사회·정치를 비판하는 대중음악의 공통된 동인, 모티브는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그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라고 본다. 예컨대 대중음악이 삶의(민중 소리는 구태여 안 하겠다) 애환을 그려내는데 있어 결정적 요소만 쏙 뺀 채 초연한 게 이상하다는 말이다. 그 결정적 요소란 우리의 삶을 대폭 규정하는 정치적 현실이다. 우리는 과거 엄혹한 독재시대에 문학 종사자의 상당수가 순수문학의 이름으로 부조리로 가득 찬 현실을 애써 외면했던 것을 기억한다.
김반장
그런 인식을 해체된 밴드 아소토 유니온과 현재 윈디 시티의 보컬인 김반장의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더라”란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 것 같다. 2008년 인터뷰에서 질문자 김작가가 물었다. “윈디 시티 결성 후 가사를 통해 사회적 발언도 많이 하고 있다. 평택 대추리 사건(2006)이 터졌을 때 현장에 달려가 공연도 벌이고, 이른바 사회파 밴드가 된 느낌이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전까지는 노동운동이나 서민경제에 대한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신문 보면서 ‘개새끼들!’ 하는 정도. 윈디 시티를 하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결국은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더라.…파병반대, 철거반대 집회 다니면서 이게 현실이란 걸 자각하게 된 거다. 멤버들도 다 동의를 했다. 가면 갈수록 우리는 서민 아닌가. 행동하는 젊은이가 되어야지.”【주6】
그는 밴드 맴버들도 동의했다고 하지만 그런 인식을 공유한 뮤지션들은 적지 않다고 본다. 강산에는 말한다. “아티스트가 아니면 대중들의 의식을 깨워줄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아티스트가 소통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생각하고 일종의 소명감을 느꼈다.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더 자극이 되었다. 존 레논의 <이매진> 같은 경우 얼마나 크게 우리의 사고를 바꾸게 해준 것인가? ‘상상해 봐.’ 나는 그 노래 듣기 전까지는 한 번도 그 상상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노래 하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투쟁과도 같은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외국 같은 경우는 아티스트들이 자꾸 일깨워주니까 그나마 이렇게 유지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주7】
강산에는 ‘노래하는 삐따기’로 불리다.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해선가. 아뭏든 그는 ‘사회적인 노래’를 많이 불렀다. 세상엔 사회적 기업이 필요하듯이 살면서 좁아진 우리 사고의 폭을 넓게 해주는 사회적 노래도 필요한 거다. <태극기>(1996·강산에 작사 작곡)도 그런 노래다. 부조리로 가득한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겐지는 몰라도
대한 독립 만세 때부터 펄럭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청 앞에 걸린 저 태극기 저 태극기/ 삐딱하게 걸린 널 보고 있으니까
왠지 나를 보고 있는 거도 같은데/ 우리 앞을 지나가는 저 많은 사람 중에
왠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소외감
나는 그래도 내가 만든 삐따기야/ 하지만 너는 우리가 만든 삐따기
바람이 부는대야 어쩔수 없겠지만/ 절대로 삼풍은 또 불지 않았으면…(하략)
<태극기> 가사
강산에
강산에는 대중들의 의식을 깨워주는 노래가 적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찾아보면 꽤 있다. 앞서 언급한 정태춘은 <아 대한민국>(1990·정태춘 작사 작곡)에서 비참한 농촌, 매춘, 빈부격차 확대 등 우리 현실의 문제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이 땅’이라고 고발했다. 통렬한 반어법이었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하략)
<아 대한민국> 가사
거침없는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힙합 그룹 DJ DOC도 우리 사회의 최대 병패로 부상한 부익부빈익빈 문제에 메스를 댔다. 2000년 발표한 <부익부빈익빈>(정재용 작사, 이하늘 작곡)이다.
돈 없어도 차 없어도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압구정동/ 내가 널 본 것도 압구정동
뿌려대는 돈 쉽게 쓰는 돈 아쉬운 줄 모르고 계속 쓰는 돈
멋진 자동차에 니 몸에 처바른 돈/ 끊길 줄도 모르고 니 주머니 속에서 계속 나오는 돈
에라 막 써라 막 살아 그래 너 잘났다/ 좋아 돈으로 여자를 구워삶아 적당히 익혀 먹어
세상 너 편한 대로 살아 좋겠다 …(중략)
세상에 빠듯한 우리 인생살이 대체 돈이 뭐니
돈 아니 아니 돈 돈 돈에 사람이 죽네 사네 말이 되네/ 돈 돈 돈에 사랑을 하네 마네 얘기 되네
오늘도 내 외로운 주머니 속 500원에게 물어봤어/ 너 머니머니 인생의 길잡인가 운명의 매개첸가
내 나이 21 나의 눈에 비친 세상/ 돈에 돈을 위한 돈에 의한 세상
오늘도 어제와 같은 똑같은 하루는 반복돼 …(하략)
<부익부빈익빈> 가사
자우림 <낙화>
록 밴드 자우림은 학교폭력과 왕따를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을 소재로 한 <낙화>(1999·김윤아 작사 작곡)를 불렀다. 여성 보컬 김윤아는 왜 이 곡을 만들었을까.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항시 있으나 작곡 당시에도 학교폭력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노래가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이란 소문도 돌았지만, 곡을 만든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이 노래는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흔치 않은 노래가 되었다. 꺼져가는 듯한 마지막 소절 ‘내일 아침이면 아무도 다시는 나를 나를…’을 들을 때는 전율마저 느낀다.
한 블로거는 이런 글을 올렸다. “자우림은 사랑 타령만을 하지 않고 삶, 죽음, 인생,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노래를 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노래한 <낙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나도 자우림 노래들 중 <낙화>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사회를 풍자하는 3인칭 시점이 아니라 학생의 1인칭 시점으로 노래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절절하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한다.” 그는 마지막에 “언제쯤 학교폭력과 왕따가 없어질까”란 질문도 했다.
이 블로거의 마지막 질문은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아직도 학교폭력과 왕따가 덜해졌다는 뚜렷한 증거는 안 나온 것 같다. <아 대한민국>을 들으면 당시 심각했던 문제들이 진행중이거나 더 악화됐다는 느낌이 든다. 부익부빈익빈 문제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체념이란 문제가 생긴다. 과거엔 정치 권력의 물리적 제약이 가장 컸지만 지금은 ‘그런 게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체념이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작품성을 유지하는 일이 관건이란 점이다. 이적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은 노래가 그렇게 정치적인 참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 생각한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다 보니 뭔가 거창한 것보다 사람의 감정, 상황, 어떤 순간에 드는 마음, 이런 것들을 노래로 어떻게 담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한국사회에 나타난 극우 인종주의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 “실제로 그런 노래(극우 비판 노래) 만들면 프로파간다(선전 선동)처럼 보인다.…그걸 노래로 만드는 건 또 다른 얘기인 것 같다.”【주8】정치적 노래가 불필요해진 시대라는 그의 인식엔 동의하지 않지만, 음악적 작품성을 지킨다는 것이 굉장히 고민스런 문제라는 지적은 맞는 얘기다. 요컨대 메시지도 좋지만 그걸 담는 그릇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주1】김창남 엮음, 김민기(한울, 2004) 576쪽
【주2】스포츠한국 2006년 11월 9일자 “양희은 ‘아침이슬’ 운동권 노래? 깜짝!” 기사
【주3】무크지 대중음악 SOUND 4호, 2012년 1월 발행. 정치와 연관된 노래나 앨범들(최규성 씀) 66쪽
【주4】경향신문 2011년 11월 30일자 김철웅 칼럼 ‘사는 게 조금 외롭고 쓸쓸해서’ 부분 인용
【주5】프레시안 2014년 6월 7일 ‘범국민서명운동 발대식 방문해 위로…국정조사 촉구’ 기사
【주6】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인터뷰(선, 2009) 343~345쪽
【주7】같은 책 417쪽
【주8】같은 책 389,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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