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가 내전적 상황이거나, 적어도 정신적 내전상태로 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과격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지난달 말 관람한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사진전(세종문화회관)이 잠재된 ‘내전의 추억’을 깨우는 계기가 됐다. 추억이라 한 건 우리에겐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의 원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전에는 그 유명한 ‘쓰러지는 병사’도 걸려 있었다. 카파가 1936년 첫 종군한 스페인 내전 때 코르도바 전선에서 찍은 것으로, 한 공화파 병사가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그는 무엇을 위해 공화파 진영에서 싸우다 이런 최후를 맞게 됐을까.
요즘 대선불복론을 갖고 말이 많지만, 스페인 내전에도 비슷한 성격이 있었다. 총선에서 좌파 인민전선(공화파)이 승리하자 군부 등 우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촉발됐다는 점에서다. 단순화하면 이 내전은 ‘폭정이냐 민주주의냐’를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우파 세력은 지주·자본가·가톨릭 교회 등 인민전선의 개혁정책에 불만을 품은 기득권층이었다. 인민전선 집권 5개월 만에 프랑코 장군이 반란을 일으켜 시작된 내전은 3년 후 파시스트들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의 승리로 끝났다. 폭정이 이긴 것이다.
스페인 내전의 역사는 오늘의 한국 정치를 관찰하는 데 꽤 유용하다. 프랑코파는 자신들의 반란이 공산주의 등 ‘빨갱이’들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하고 사회안정을 회복하며 기독교 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공화파에는 다양한 정치 지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프랑코 반란군은 자유주의자건, 우파 독재 반대자건 모두 ‘빨갱이’로 취급했다. 우파 의용군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내게 베레모를, 총을 주오. 4·5월 들판에 핀 꽃들보다 더 많은 빨갱이들을 죽이리라.”
스페인 내전 중 로버트 카파가 찍은 사진 '쓰러지는 병사'. 1936년 10월 코르도바 .
한국은 정치·경제·이념적으로 극도로 분열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역사퇴행이 전속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파출소 피하니 경찰서 나오는 격으로, 이명박 정권 때 겪은 것은 약과 같다. 자기 편이 아니면, 정부를 비판하면 곧 종북이고 빨갱이란 이분법적 비논리와 폭력이 판치고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비근한 예다. 대통령 유럽 순방을 따라간 그는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국정원 선거개입 항의집회를 연 사람들 말이다. 근거 없이 이들을 통진당원이라더니, “대한민국 국민 아닐걸요”라고도 했다. 한데 이런 이들이 대통령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이래가지곤 국민대통합은커녕 국민대분열로 갈 수밖에 없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한 가운데 '민주주의 파괴를 규탄하는 재불한인 일동'은 2일 에펠탑이 바라다 보이는 인권광장(place de trocadero)에서 '댓통령 박근혜 환영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영국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는 책 <스페인 내전> 2부에 ‘두 스페인의 전쟁(The War of Two Spains)’이란 제목을 붙였다. 거기에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적색·백색 테러가 횡행하는 국민·공화진영의 분열상을 담았다. 나는 이것을 원용해 한국의 분열상이 ‘두 한국의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심각해졌다고 본다.
이 두 개의 한국을 가르는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다. 험난한 민주화를 거쳤기에 현실에서 또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호출할 일은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 민주주의다. 대선 불법·불복 공방도 그 본질은 민주주의다. 따라서 이 은유적·정신적 내전의 상대와 목표는 확실하다. 반민주 세력과의 싸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가 계속 대선불복론 언저리를 맴도는 것도 집권세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부족 탓이 크다. 엊그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그걸 다시 보여주었다. 그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한 민주당의 특검 요구를 일축하며 선거소송은 선거일부터 30일 이내에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선거범죄 공소시효도 6개월이라며 “영원히 과거에 묻어버리고 국정에 전념하라는 것이 법에 정한 바”라고 했다.
이 말은 관권·부정선거의 실상을 외면·묵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의 ‘과거에 묻어버리자’란 말에 누군가 “차라리 민주주의를 묻어버리겠다고 하지”란 댓글을 달았다. 저들이 걸핏하면 꺼내드는 “대선불복하겠다는 거냐”는 논리 역시 구차하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는 “만약 선거과정에서 결과를 뒤집을 만한 부정이 있었다면 불복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면 말로 하기보다는 실제로 한판 세게 붙어 해결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문명세계의 규칙은 무력을 쓰는 비극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내전적 상황을 빠져나와 실종된 정치를 복원시키는 일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생각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가진 역사관, 안보관, 세계관을 들으면서 배웠다”며 정치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아버지를 꼽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10월유신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장본인이다. 이대론 내전적 상황 탈출의 전망이 몹시 어둡다.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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