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철탑 위로 자꾸 올라가고 있다. 왜들 올라가나.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명언을 남겼다지만 노동자들의 철탑행은 무슨 깊은 철학에 이끌려서가 아니다. 심오한 까닭이 있을 수 없다. 주목받고 싶어서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니 올라가는 거다.
지난 20일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 오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보면 안다. 이들은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전날 병원으로 실려가자 철탑농성을 결정했다. 그는 41일째 단식 중 쓰러졌다. 길거리에 나와 목숨을 건 단식을 해도 정치권이 해고자 복직 문제를 외면하니 남은 선택은 철탑농성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 절박성과 불가피성을 이해해야 한다. 38일째 철탑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사정은 똑같다.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해고노동자 최병승씨가 정규직원이라고 판결했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유성기업 홍종인 노조위원장의 고공농성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툭하면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커다란 오해다.
국내 고공농성의 효시랄 수 있는 1931년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 지붕위에 올라가 있는 강주룡은 ‘체공녀’로 불렸다. |경향신문 자료
국내 최초의 고공농성은 일제 때인 1931년 평양 평원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평양성의 누각 을밀대에 올라가 벌인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임금 인하에 항의해 광목을 밧줄 삼아 지붕 위로 올라간 뒤 사장이 임금 인하를 취소하기 전에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것이 고공농성의 효시였다면 최초의 현대적 고공농성은 1990년 4월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 점거투쟁이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지난해 1월 정리해고에 반대해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35m 높이에서 309일 동안 유례가 없는 장기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와 노동자들의 투쟁은 큰 반향을 불러 노동운동에 ‘희망버스’란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희망버스가 몰려오게 한 힘은 공감력이었다. 그들의 처지가 내 것일 수도 있다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이 초겨울 칼바람 몰아치는 고공은 지상보다 훨씬 더 춥다. 그들은 자학이나 극한투쟁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어 올라간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술김에 괜히 송전탑에 오르기로 약속했다”며 잠깐 후회를 비치기도 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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