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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차선 또는 차악

공약들이 쏟아져나오는 시절이다. 공약대로만 되면 세상은 천국이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문자 그대로 공약(空約)이 돼 버린다. 5년 전 경제를 살리겠다며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호기있게 내놓았던 저 ‘대한민국 747 공약’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던가.

이럴 땐 가수 김상희의 옛날 노래 ‘뜨거워서 싫어요’ 가사가 참고가 된다. “누구나 사랑을 속삭일 때는/ 귀를 막고 그 사람의 눈만 보세요/ 이런 말 저런 말 어쩌구 저쩌구/ 뜨거운 말일수록 믿지 마세요/ …/ 사랑이란 그런 것 뜨거워서 싫어요.” 이 노랫말은 연애에 눈멀어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지만 정치판에서 써먹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후보들이 당선되려고 늘어놓는 이런 약속 저런 다짐들을 다 믿어선 안된다. ‘귀를 막고 눈만 보세요’란 충고도 설득력 있다. 왜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올리버 스톤 감독과 오바마 대통령. 스톤은 오바마의

대외정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그를 '차악'으로 간주했다.

 

 

그러고 보니 이 대통령이 집권 초 이런 공약의 생리를 두고 촌철살인의 말을 던진 적이 있다. 2008년 11월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당시 당선자의 한·미 FTA 자동차 재협상 공약에 대해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오바마의 주요 정책들을 올리버 스톤 미국 영화감독이 강하게 비판했다. 며칠 전 스톤은 “오바마가 무척 혼란스러운 나라를 물려받은 건 사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멘과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미국 무인비행기의 공격과 대통령의 테러용의자 살생부를 지적했다. 그는 이번 미국 대선 직전 출간된 책 <알려지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도 오바마가 공약을 깨고

반진보적 정책들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스톤 감독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게 예사롭지 않다. 앞서 역시 진보적 양심으로 불린 하워드 진도 재작년 타계 직전 오바마가 무인비행기 공격 등 부시의 군사주의 정책을 답습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스톤이 그 다음 붙인 얘기가 묘하다. 오바마를 “두 악마 중 더 나은 악마”, 즉 ‘차악(次惡)’으로 간주한 것이다. 부시나 롬니 행정부 같은 게 다음에 들어서면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견해도 밝혔다.현실의 정치와 선거는 결국 차선(次善) 또는 차악의 선택임을 그도 인정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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