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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과학과 예측력

과학자가 부실한 예측 때문에 큰 피해를 일으켰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론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탈리아 법원은 이례적으로 그렇다고 판결했다. 이 나라 라퀼라 법원은 지난 월요일 국립 대재난위원회 소속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 등 7명에게 징역 최고 6년형을 선고했다. 죄목은 다중에 대한 비고의(非故意) 살인이었다. 2009년 4월6일 중부도시 라퀼라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나서 300여명이 숨졌다. 문제는 이들이 그보다 겨우 6일 앞서 당시 계속되는 자잘한 지진들이 대지진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를 믿고 피난을 안 간 사람들이 다수 희생됐다.

그러자 이탈리아와 세계 과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이런 반응이다.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잘못된 공공정책의 책임을 몽땅 과학자에게 지우겠다는 발상이다.” 판결이 갈릴레이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도 참 공교롭다. 1633년 종교재판에 회부돼 지동설을 부인하고 재판정을 나서던 그가 중얼거린 말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였다던가.


 

                 2009년 4월 이탈리아 중세도시 라퀼라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소방대원들이 피해자
                 를 구조하고 있다.

과학이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불행한 사태를 낳는 일은 흔하다. 최근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유출사고도 그런 것이다. 1차 사고 후 대기오염도를 조사한 국립환경과학원 등이 인체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더 큰 2차 피해를 낳았다.

그 점에서 예측력을 높이는 건 과학의 영원한 숙제다. 2004년 지진해일이 동남아시아를 휩쓸어 30만명 이상이 숨졌을 때 사람들은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서둘렀다. 그때 스리랑카 얄라 국립공원에 사는 코끼리, 악어, 멧돼지, 원숭이 등 수많은 동물의 사체는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시신만 널려 있었다. 사람보다 수백배 발달한 육감이 작동해 미리 고지대로 대피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무리 우수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든들 짐승들의 육감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지진 유죄 판결엔 무리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든다. 과학에 정치가 끼어들 때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찬성 쪽은 강 살리기, 반대 쪽은 강 죽이기라고 정반대의 주장을 해왔다. 만약 강 죽이기로 판명나면 무리한 토목사업을 정당화하는 관변논리를 제공한 학자들은 면책인가. 그것도 과학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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