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착각하는 동물이다. 여기에 호모 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 호모 루덴스(유희인), 호모 로퀜스(언어인)처럼 ‘호모 어쩌구’ 하는 학명이 붙은 건 아니지만 착각이 평생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은 분명하다. 착각은 자유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런 말도 있다.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고릴라’란 실험을 했다. 두 팀이 각각 3명씩 팀을 이뤄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이 있다. 한 팀은 흰색 셔츠, 다른 팀은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동영상을 보고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1분짜리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혹시 고릴라를 봤습니까?” 동영상 중간에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9초 동안 코트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가슴을 두드리는 제스처까지 했다. 그러나 동영상을 본 수천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고릴라가 등장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패스 횟수를 세는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1일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가 올 초 착각에 관한 책을 썼는데, 제목이 재미있다. <가끔은 제정신>이다. 그는 묻는다. “거울을 보면서 문득 내 얼굴 어딘가가 장동건이나 김태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내 배우자만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 적은 없는가. 결혼한 10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에 두 번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끊임없이 착각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
중요한 건 그 다음 얘기다. 똑같은 착각을 하더라도, 자신이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거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주장이 잘 들린다고 했다.
엊그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김지태씨가 주식을 증여한 배경에 강압이 없었다고 법원 판결과 다른 말을 했다가 나중 정정했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순간적인 착각”이라며 쓸어담고 있다. 아무리 사람이 일상적으로 착각하는 동물이기로서, 국민이 지켜보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지도자의 착각은 장삼이사의 착각과 무게가 다르다. 게다가 그 착각이 독선의 발로이며 따라서 성찰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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