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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추운 나라에서 온 여성 의원

엘레나 푸쉬카료바(63)는 러시아 툰드라 지대인 야말 네네츠 자치구 출신 두마(하원) 의원이다. 이 추운 지방에서 온 여성 정치인을 엊그제 만났다. 그는 국내 대학에서 ‘러시아 북쪽 토착민들 삶과 법률적 문제’ 등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 위해 왔다. 이 지역 소수민족 네네츠인인 푸쉬카료바 의원은 네네츠 구비문학·민속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인구 4만1000명인 네네츠 사람들은 이태 전 SBS의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에서 ‘마지막 순록 유목민’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자연 툰드라의 혹독한 기후가 주요 화제가 됐다.

러시아란 나라가 원래 추운 곳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네네츠 자치구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제 행정수도 살레하르트의 최저 기온은 영하 27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1월이 되면 북쪽 추운 지방의 수은주는 영하 62도까지 떨어지고 영하 50도는 보통이다. 그런 추위란 어떤 걸까. 지난해 겨울 이 자치구를 방문했던 한국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정확히 2분이 지나자 귀와 손발이 굳어갔고, 숨이 턱 막혔다. 영하 47도면 웬만한 문명의 도구는 작동 불가다. 만년필과 볼펜 등 필기구는 서너 글자를 쓰다보면 기능이 마비된다….”

 

 

 

                                 엘레나 푸쉬카료바 의원                                       김문석 기자



푸쉬카료바에게 “극한적 기후조건에서 산다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극한적 조건이란 건 서방의 관점에서다. 우리에겐 지극히 정상적 조건이고 거기에 따라 평범하게 살아간다.” 다시 “추운 곳에서 태어난 걸 원망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추위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나봤다. 도리어 축복이라고 받아들이고 기뻐한다.” 이런 설명도 했다. 언젠가 당국이 북쪽 끝 가장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추위가 비교적 덜한 남쪽으로 이주할 것을 권고했지만 깨끗이 거절당했다. 이유는 왜 잘 살고 있는 곳의 자연과 공기를 버리고 ‘더운 곳’으로 이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들으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들이 그 긴 세월 동안 강인한 삶을 이어온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마침 한국도 초겨울 추위가 시작됐다. 엊그제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4도였다. 젊은 여성 기상 전달자는 첫 한파주의보라며 “춥다”를 연발한다. 다들 좀 호들갑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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