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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25년만에 다가온 ‘민주화 시즌 2’

경제민주화가 정말 시대정신이며 화두인가 보다. 대선을 앞두고 세 후보가 모두 강조하는 게 경제민주화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등 ‘앙꼬가 빠진’ 박근혜 후보의 공약도 어김없이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대세는 대세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다 경제민주화라니 뭐가 진짜 경제민주화인지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경제란 수식어를 뺀 ‘원조 민주화’의 시절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민주화를 거쳐 이 지점까지 왔나.
필자에게도 아련한 민주화의 추억이 있다. 최루가스의 날카로운 고통이 뒤섞인. 사정은 이렇다. 25년 전 6월항쟁 취재 중 최루탄 파편에 맞아 다쳤다. 경향신문 1987년 6월27일자 7면(사회면)에 이런 1단 기사가 실렸다. “26일 하오 8시30분쯤 서울역전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경향신문 사회부 金鐵雄 기자가 경찰이 시위대에 던진 사과탄 파편에 맞아 등과 어깨 등 10여 군데에 상처를 입었다.”

늘 기명기사를 쓰지만 사건 당사자로서 기사에 등장한 건 꽤 어색하다. 필자는 근처 의료봉사대 대학생한테서 “등에서 피가 난다”는 말을 듣고서야 다친 사실을 알고 응급치료를 받았고, 취재를 계속했다.
6월항쟁 한복판의 당시 정국은 극심하게 요동쳤다. 학교 앞 시위 중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연세대생 이한열군은 끝내 7월5일 만 스무살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날자 사회면을 좀 더 보자. 톱기사는 “시위대가 남대문경찰서를 포위한 채 화염병과 돌을 던져 유리창 30여장을 깼다”면서 “밤 11시까지 경찰과 숨바꼭질식 시위를 벌였다”고 전하고 있다.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직선제로 독재타도’였다. 그렇게 열심히들 싸웠고 경찰도 기를 쓰고 막았다.

1987년 6월 서울. 시민들은 이렇게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 25년 후 대선 국면에서 다시금 민주화 논의가 불붙고 있다. 이번엔 경제민주화다.

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학교 앞 시위 중 최루탄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을 외신기자가 포착했다.

세월이 흘러 기자생활 31년째로 접어든 필자가 그때를 회상하며 갖는 감정은 어떤 허망함이다.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룬 민주화, 직선제 개헌이었건만 그해 12월16일 실시된 대선에서 양김이 단일화를 못하는 바람에 노태우 후보에게 대통령을 헌상했기 때문에? 하기는 그날 개표상황을 보며 울분 속에 밤새 통음했던 기억은 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허망함은 그 당시의 좌절감과는 다른 것이다. 더 긴 안목으로 바라본 우리의 현실에 관한 것이다. 왜 이리 허망한가.
민주화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 이후 직선 대통령이 여럿 나왔다. 그 새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대가 SNS 시대로 바뀌었다. 언론진흥재단의 카인즈 기사 검색시스템을 통해 필자의 25년 전 최루탄 부상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회 제분야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많은 진보가 이뤄졌다. 단, 표면적으로다.

잘 들여다보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거나 더 나빠진 것도 있다. 나는 그것이 이 허망함의 이유라고 본다. 그 정체는 바로 경제민주화다. ‘직선제로 독재타도’ 투쟁을 통해 우리가 쟁취한 것은 민주화였으되, 정치적인 민주화였다. 그때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이 절박했다. 질식할 것 같은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 힘으로 대통령만 똑바로 뽑는다면 모든 게 해결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민주화는 정치와 경제 두 바퀴가 함께 있어야 온전히 굴러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빵의 민주화가 절실하다.
최장집 교수는 10년 전 쓴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문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문제제기를 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의 무능성을 분석한 것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민주화 이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이전 권위주의 시기보다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새 정부들은 집권과 동시에 재벌개혁을 약속했지만 이런 약속은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구두선에 그쳤다. 재벌체제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강화되었고 특히 상위재벌 중심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심화되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 ‘재벌개혁에 취약한 민주화’란 제목을 붙였다. 오늘날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과 같은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특별나다.
그 강력한 증거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다. 이 정권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맹렬히 후진한 것과 함께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경제민주화가 미완 상태인 탓이라고 본다. 정치와 함께 진보하지 못하는 경제가 정치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한국 사회는 첫번째 정치적 민주화의 진통을 겪은 지 25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것은 미완의 민주화를 완성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철탑 농성도, 뇌병변 장애 동생을 돌보던 누나가 화재로 숨진 파주 남매의 비극도 경제민주화와 동떨어진 문제가 결코 아니다. 25년 전의 민주화를 ‘민주화 시즌 1’이라고 부른다면 이제는 ‘민주화 시즌 2’를 맞이해야 한다. 몹시 늦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