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을 갖고 말이 많은데, 초점을 잘못 짚은 듯하다. 구체성이 부족하다. 대선 후보로서 그의 문제점은 역사인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그걸 역사인식이라는 추상적이고 고상한 문제로 분식하는 건 잘못이다. 민주주의는 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문제다. 그런데 박 후보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신념은 매우 흐릿해 보인다.
그 증거는 널려 있다. 과거사, 특히 아버지 박정희의 18년 집권 시대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성경을 보면 저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통곡했지만, 박 후보는 결코 아버지를 부인·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 10월유신은 “역사의 판단에 맡길 문제”가 된다. 이런 생각은 놀랄 정도로 일관성이 있다. 1989년 5월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서 그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면서 “(공산당이 쳐들어오기 전에) 5·16이 다행히 먼저 나서 파멸 직전에 국가가 구출됐다”고 말했다.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기한 안에 이루기 위해 아버지가 유신을 하신 것”이라고도 했다. 1981년 10월28일 일기에선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
1975년 4월 대법원이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지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된 유신시대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꼽힌다. 인혁당 사건은 또한 희대의 민주주의 유린 사건이었음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전취한 민주주의의 위기다.
비교적 젊은 모습인 그가 이런 얘기를 언죽번죽하는 것을 보면서 이른바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느낌이 든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때의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쯤 되면 이 생각은 정치를 넘어 종교적 확신, 신앙에 가까운 것이 된다.
지난해 말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 정치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묻자, 박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저희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돼요. …결단을 내릴 때 고뇌하는 모습, 아버지가 가진 역사관, 안보관, 세계관 이런 것이 말씀 중에 나오니까 들으면서 배웠습니다.”
박 후보가 그토록 존숭하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였나. 워낙 뻔한 물음이기에 답으로 전인권 교수(1957~2005)의 박사학위 논문 <박정희 평전>을 인용하고자 한다. 전 교수는 박정희의 사상과 행동에 대해 심리적 분석과 인간적 성찰을 가한 독보적 전기를 남겼다. “그는 성장과정과 생애에서 단 1년도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일제강점기에 교사와 군인의 경험 속에 형성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실체적 윤리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주의적 세계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에서 몰(沒)민주주의자 또는 무(無)민주주의자였다.”
박 후보의 민주주의관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별로 없다. 다만 그가 박 전 대통령과 생물학적 부녀관계일 뿐 아니라 정치·사상적 사제관계란 점에서 이것이 어떻게 상속됐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명사들이 쓴 <나의 삶, 나의 아버지>란 책에 쓴 ‘아버지의 딸로서’란 글에서 “정치인이 된 지금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 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13년간 대통령 딸로, 5년은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다. 긴 세월 은둔적, 단절적 생활을 했다. 그에게도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음직하다. 거기에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비판받는다며 명예회복을 바라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후보에게 “영화 <피에타>를 보면서 유신에 대한 생각을 고치고 세상을 깊이 봤으면 좋겠다”고 권했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무슨 심오한 취지로 한 말 같진 않다. “지금이 유신시대였다면 <피에타> 같은 (잔혹하고 난잡한) 영화는 상영금지에다가 다 잡혀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에서 박근혜 후보를 떠올렸다. 그가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통하는 ‘가족의 가치’를 생생하게 일깨우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혈연은 때론 천형 같으면서도 소중한 것이다. 박 후보는 어쩌면 그 혈연관계에 몹시 충실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마치 그게 구원의 길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가 매달리는 가족의 가치는 예를 들어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죄 없이 처형된 8명의 유족들의 가치와 정면충돌한다. 유족들은 지금도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라며 다시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박 후보에게 누구에겐 자식, 누구에겐 아비, 누구에겐 남편인 이들이 무고하게 법의 이름으로 교살됐다는 인식이 들어설 공간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아버지 부정은 자기부정이다. 2007년 1월 인혁당 재심 등 관련 판사 실명 공개에 대해 그는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연좌제는 단호히 반대하지만 아버지의 무민주주의적, 몰민주주의적 생각까지 물려받은 박 후보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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