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다.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로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문 행동경제학을 창시했고, 이에 기초한 ‘전망 이론’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건 사상 두번째였지만 1978년 첫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수학·경제학 등 학제간 연구자였던 반면 카너먼은 대학에서 경제학 강의를 들어본 적 없는 정통 심리학자였다. 그의 특이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망 이론’은 인간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런 50년 연구결과를 묶어 작년에 낸 책이 <빠르고 느리게 생각하기(Thinking, Fast and Slow)>다. 책은 흥미로운 실험과 이론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것들이다. 몇 가지만 보자.
먼저 주사위 굴리기다. 경력 평균 15년 이상인 독일 판사들에게 여자 소매치기의 혐의를 파악케 한 뒤 주사위를 굴리게 했다. 주사위는 9나 3만 나오도록 돼 있다. 그런 다음 소매치기에게 내리고 싶은 형량을 물었다. 그 평균을 내보니 9를 굴린 판사는 8개월, 3을 굴린 판사는 5개월로 나타났다. 카너먼은 이 현상을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앞서 입력된 정보, 즉 주사위 숫자가 정신적 닻으로 작용해 이후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른 실험에서 독일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요즘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 지난달 몇 번이나 데이트를 했나?” 데이트를 많이 한 학생이 적게 한 학생보다 행복하다는 답을 더 많이 했을까. 아니었다. 두 대답의 상관관계는 0에 가까웠다. 이번엔 다른 집단에게 순서만 바꿔 같은 질문을 했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데이트 횟수와 행복도의 상관관계가 ‘심리학적 측정이 가능한 한도 안에서’ 높았다. 이것은 ‘대체(substitution)’의 좋은 사례다. 학생들은 인생의 행복감을 묻는 질문을 데이트 횟수를 묻는 질문으로 일어난 감정으로 대체한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선택에 관한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이스라엘 가석방 전담 판사 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가석방 승인율은 식사 후엔 65%로 크게 상승했다가 식사 시간 직전에는 0%까지 떨어졌다. 이 현상은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피곤하고 배고픈 판사들이 가석방 요청을 무작정 쉽게 거부해버리는 경향을 보였다.
심리학자 카너먼은 “모세는 동물들을 종별로 몇마리씩 방주에 태웠을까”라는 질문도 던졌다.
답은 ‘한 마리도 태우지 않았다’다. 그림은 얀 브뤼겔 작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동물들'(1613년)
카너먼은 “모세는 동물들을 종별로 몇마리씩 방주에 태웠을까” 같은 질문도 던진다. 답은 ‘한 마리도 태우지 않았다’다. 태운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노아다. 사람들이 이를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질문을 ‘정상’인 것으로 착각한 탓이다. 이 질문은 ‘모세의 착각’으로 명명됐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선거에서 하는 판단과 선택도 이렇게 비합리적일까.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궁금해진 대목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시원한 분석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인지(認知) 및 사회심리학적으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지, 투표행태나 표심 분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너먼의 이론과 분석틀을 투표행태에도 충분히 원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람은 평생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운명지워진 존재란 사실 때문이다. 직업으로서 기자의 일도 판단과 선택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취재부터 기사작성 때의 어휘 선택까지 모든 과정이 그렇다. 어쨌든 카너먼의 이론에 따른다면 하고 많은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선택 가운데 유독 투표행태만 합리적일 수 있거나 그래야 한다고 봐야 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200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 땐 이른바 계급배반 투표가 향방을 갈랐다는 분석이 유력했다. 노동자·농민·서민층이 사회 경제적 이해와 일치하지 않는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석은 노동운동가 손낙구씨가 쓴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의해 부정됐다. 손씨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철저히 계급·계층투표를 한다. 그러나 차이는 투표율에서 났다.
이번 대선에서 카너먼이 말하는 비합리적 판단과 선택이 어느 정도 행해질지, 그 비율이 얼마나 차지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런 투표를 최대한 줄이는 일이다. 카너먼의 책 <빠르고 느리게 생각하기>는 인간의 생각을 크게 빠른 직관과 느린 이성으로 구분했다. 이것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불렀다. 비합리적 판단·선택은 주로 빠른 직관, 시스템 1의 몫이다. 반면 심사숙고는 느린 이성, 시스템 2의 영역이다. 시스템 2는 집중이 필요하며 때로 고통을 수반한다. 유권자들이 갖춰야 할 것은 환상에 빠지지 말고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후보 하나 하나를 찬찬히, 똑바로 보겠다는 자세다. 즉 필요한 것은 빠른 직관보다는 느리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다.
'김철웅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년만에 다가온 ‘민주화 시즌 2’ (0) | 2012.11.20 |
---|---|
철탑 농성이 남의 일이 아닌 까닭 (0) | 2012.10.30 |
역사인식보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0) | 2012.09.18 |
유쾌한 ‘예측불허’는 없을까 (0) | 2012.08.28 |
안철수씨가 빨리 결단해야 할 이유 (0) | 2012.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