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철웅 칼럼

안철수씨가 빨리 결단해야 할 이유

안철수 교수는 빨리 결단해야 한다. 대선 출마 여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처럼 “중요한 건 시대의 결을 얼마나 잘 읽고 국민과 공감을 잘하느냐는 것이며, 그걸 검증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검증인가. 이른바 ‘신화’에 대한 검증이라고 해도 좋겠다. 훌륭한 반면교사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정계 진출 후 1995년 낸 자전적 에세이 <신화는 없다>에 이렇게 썼다. “현대에서의 27년.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사람들은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미상불 <신화는 없다>는 신화적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건설 면접시험에서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정주영 사장에게 “창조”라고 답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이런 대목도 있다. “사람들은 다시 기회가 온다면 더 열심히 해 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하더라도 했던 이상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후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훗날 대통령이 된 그를 보며 이런 자기평가가 얼마나 자아도취적일 수 있는지를 간파했다. 측근 여럿이 추악한 부정·비리로 잡혀들어가는데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말을 되뇐 것을 보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 교수가 최근 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신화적 요소들이 발견된다. 책 서문은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2011년 9월2일이었다”로 시작된다. 전날 밤 그의 서울시장 출마 결심이 임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다음날 서대문구청 ‘청춘콘서트’ 현장은 취재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어 그는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가 됐다. 평생 의사, 컴퓨터 백신 개발자, 경영자, 교수로 산 그가 갑자기 국가지도자 감으로 떠오른 것, 이건 분명 신화다.

사람들은 신화를 원한다. 5년 전 나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의 책 제목을 원용한 ‘신화는 없다’란 칼럼에서 “신화 없는 세상은 문학과 예술이 없는 세상처럼 삭막하다”고 썼다. 그러나 “인간은 신화 속에서만 살 순 없다. 현실세계 인간에 대한 신화적 접근은 정확한 평가를 막는다. 신화는 검증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대선 후보 평가에서 요구되는 것은 논리적·이성적 잣대인데, 진실과 거리가 먼 신화들이 사람들을 미망에 빠뜨릴 위험이 높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릴 지도자’란 거짓 신화에 빠져 검증을 소홀히 한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그 신화는 거대한 사기극이었으며 대가는 재앙적이었다.

이런 생생한 반면교사가 있기에 12월 대선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어쩌면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인 이명박보다 더 미지의 인물이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책에서 “정치경험 부족은 분명 저의 약점으로, 시장이나 국회의원 한번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다면 어려움이 많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장이 된 후 수많은 실수를 했지만 절대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았고 실수를 통해서 배워나갔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검증이 매우 필요한 시점임에도 그가 ‘정치의 강물’에 발을 온전히 담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진로 변경 문제로 고민하는 카이스트 학생에게 “강물이 얼마나 세게 흐르는지 알려면 강둑에 앉아 바라만 봐선 안된다. 양말 벗고, 신발 벗고 들어가봐야 한다”고 조언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강물에 첫발을 담글 수 있는 것은 용기의 영역이지만, 강물의 세기를 느끼고 다시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전략과 계획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안 교수가 지난달 책을 내고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도 출마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이런 신중한 성품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국가지도자에 대한 검증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다. 오판과 불행을 막기 위한 국민의 요구이자 권리다. 때로 주의, 주장, 정책, 공약이 허망한 것이기에 이 검증의 핵심은 무엇을 하겠다보다는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 점에서 안 교수는 상당한 강점이 있다. 그는 “인생의 성공을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좋은 제도, 책, 바람직한 조직 등을 통해 이를 실현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검증이 끝나는 게 아니며 다른 검증도 있다. 얼마 전 그는 9년 전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명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평소 주장과는 다른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것을 포함해 진짜 국가지도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넓디 넓은 검증의 숲을 통과해야 한다. 그가 비판적 검증을 피하려고 출마 결단을 미루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검증엔 현실정치의 신산함을 맛보는 ‘맷집 검증’도 포함돼야 할 터다. 이런 검증들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깨끗이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도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