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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티나와 결별하기

목하 진행 중인 유럽 재정위기, 유로 위기 와중에 앙겔라가 떴다. 메르켈 독일 총리 말이다. 7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 세계 경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 첫 기사의 제목이 ‘엔진을 켜, 앙겔라’였다. 유럽과 세계 경제의 운명이 상당 부분 강하고 건실한 독일 경제를 이끄는 앙겔라란 여인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앙겔라 말고 다른 여성 이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티나다. 필자는 옛날 모스크바 특파원 때 만난 러시아 여성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마리나, 올가. 타냐, 레나, 마샤…. 한데 비슷해 보이지만 러시아에 티나란 이름은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름인가. 티나는 아리따운 여인의 이름이 아니다. 게다가 폭압적이다.

그것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란 말의 영어 머리글자 조합이다. 하지만 의인화해 써도 좋다. 실제로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첫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의 별명이 티나였다. 그는 집권 11년 내내 티나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영국병을 고치려면 고강도 개혁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독한 처방으로 신자유주의의 길을 열었다. “사회와 같은 것은 없으며, 단지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란 그의 언명은 유명하다.

 

그러나 대처는 티나란 개념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원래 통용되는 뜻은 “자본주의에는 어떤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란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티나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즉 누가 가장 먼저 ‘자본주의 대안부재론’을 설파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이론적 기반이 된 것은 추측할 수 있다. 보스턴대 찰스 더버 교수는 책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원제 Marx’s Ghost)>(2011)에서 그런 것으로 대니얼 벨의 책 <이데올로기의 종언>(1960)과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논문 <역사의 종언>(1989)을 꼽았다. 더버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의지할 곳을 잃고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고 쓴 벨의 책이 현재의 티나가 대유행하도록 도왔다고 보았다. 후쿠야마는 논문과 책을 통해 공산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최후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라며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티나', 곧 "자본주의에는 어떤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란 생각이 거의 종교처럼 유포돼 있다. 그러나 숱하게 발생하는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그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함을 말해준다. 사진은 자본의 운동법칙과 내적 모순을 밝혀낸 <자본론>을 저술한 마르크스의 동상. 모스크바에 있는 이 동상 기단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문장이 러시아어로 새겨져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중반 티나는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았다. 티나는 21세기의 지구를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 현재의 유럽 위기국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긴축·성장, 구제금융, 재정통합 등 논란도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잘못이 있다면 5년 전 집 한 채 산 건데, 지금 내 인생은 파산”이라는 스페인 40대 가장 가르시아의 하소연을 들으며 동질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지난해 10월 세계적으로 반(反) 금융자본주의, 반 빈부격차 시위가 벌어졌을 때 서울 집회에서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한 말은 가르시아 발언의 해설처럼 들린다. “가난은 자기 탓이란 말에 속아 가난을 극복하려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20 대 80의 사회는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했고 생존권은 박살났다.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잘못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 바로 티나 때문이다. 오늘날 티나는 종교, 지배이념이며 상식이 되었다. 티나가 무시무시한 존재인 결정적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과 개선 모색의 싹마저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가을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뉴욕 주코티 공원 연설에서 “소행성의 충돌 등으로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건 쉽지만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티나는 힘이 세다. 돌이켜보면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며 오랜 세월 집필한 <자본론>도 자본의 운동법칙과 내적 모순을 밝혀내고자 함이었지 자본주의의 대안을 내놓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정황들이 티나를 다소곳이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결코 위험하고 미친 짓이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는 다시금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를 던져주었다. 올 초 열린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최대 화두는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참석한 국제투자자,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120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70%가 현행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나는 대한문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도 티나에 대한 거부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대안찾기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은 볼리비아 대통령 모랄레스의 십계명을 소개했다. 그 1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모델이 뿌리뽑혀야 하고…”이며, 10은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잘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하며 그것은 타인의 희생을 대가로 그렇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우리 안에 도사린 티나를 거부하고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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