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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좋아하기, 이해하기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제목으로 쓰인 질문은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네 살 연상의 여주인공 폴에게 첫눈에 반한 20대 청년 시몽이 콘서트에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며 던진 질문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참고로 프랑스인들은 색깔로 치면 회색조인 브람스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브람스 연주회에 초대할 때는 이 질문이 필수란 말도 있다고 한다.

작가는 스승인 슈만의 부인이자 열네 살 연상인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평생 흠모하며 산 브람스를 염두에 두고 이런 인물 설정을 한 것 같다. 나중 이 소설은 영화 <굿바이 어게인>으로 제작되는데 이때 배경음악으로 쓰인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포코 알레그레토)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악장은 아름답고 애수 어린 선율이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이다.

대선판이 몹시 어지럽다. 어지러우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머리도 식힐 겸, 음악미학적 접근을 해보려 한다. 음악미학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음악에 대한 태도를 크게 ‘좋아한다’와 ‘이해한다’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정치인·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태도도 둘로 나눌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 필자 생각의 출발이다. 음악에서 ‘좋아한다’는 듣는 사람 중심, ‘이해한다’는 작품 중심의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칠게 나누면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다. 이 구분법을 선거판에 원용하면 그 후보에 대한 태도가 나의 호불호 중심이냐, 아니면 그의 정책과 공약에 대한 분석·평가 중심이냐의 차이가 된다.

 

사강이 소설 제목을 의문형으로 붙인 데도 나름의 뜻이 있는 듯하다. 음악 취향에 대한 질문을 할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은 ‘좋아한다’의 물음 형식이다. 시몽이 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은 건 세상 뭇 연애사의 고전적 수법에 속한다. 이에 비해 ‘이해한다’란 말은 질문으로는 많이 안 쓴다. ‘좋아하느냐’는 말과 달라서 자칫 듣는 사람이 멸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브람스를 ‘이해하느냐’고 했다가는 지적 수준을 의심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아무한테나 할 수 없고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만 쓸 수 있다. 단적으로 취향을 말할 때 ‘좋아한다’는 보편성에, ‘이해한다’는 전문성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 하겠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공약과 정책을 이해하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는 게 바람직하다.

 

대선이 일주일 남았다. 평생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게 운명인 인간이지만 이번 대선은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사다. 짐작했겠지만 이 글은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을 향한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투표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비결이 있나 하겠지만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잘살려면 근검절약하라’처럼, 평범 속에 진리가 있다. 후보를 이해하고 투표하면 된다. 후보를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론 2% 부족하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경지도 그냥 앉아서 되는 건 아니다. ‘이해한다’에는 ‘정확히 파악한다’와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두 가지 뜻이 있다. 두 의미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선 물론 앞의 의미다. 후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판의식도 필요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후보의 공약과 정책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뛰어난 감식안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상식과 논리만 있다면 족하지 않나 한다. 1952년 존 케이지는 ‘4분33초’란 극단적 작품을 발표했다.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4분33초 동안 악기를 건드리지도 않고 앉아 있다가 내려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정치가 이렇게 난해하고 전위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는 일은 없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공약도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찬찬히 살피면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는 박 후보의 주장은 현 정권의 양극화 심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충분히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며칠 전 KBS 뉴스는 박 후보 유세 장면만 ‘부감(俯瞰)샷’으로 찍은 영상을 내보내 문제가 됐다. 문 후보 유세는 평면적 촬영이었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해 꽉 찬 느낌을 전달하는 기술을 부감샷이라고 부르는 것을 필자도 그때 처음 알았다.

실망한 안철수 전 후보 지지자들도 좋아하기를 넘어선 이해하기로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달 말 안 후보로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자살소동을 벌인 김강희씨(26)는 “답이라고 생각한 3번 보기가 날아갔다. (정권을) 바꾸긴 바꿔야 하는데… 문재인을 그냥 찍어주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을 거다. 필자는 그 무렵 친구와 함께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를 협연한 연주회에 갔다. 그 친구도 “내가 할 선택은 기권뿐”이라고 했다. 부디 그 생각을 거두기 바란다. 현실 정치와 선거는 어차피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 아니던가. 계급 배반 투표든 계급에 충실한 투표든 투표는 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