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안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름하여 ‘아메리카노 논쟁’이다. ‘커피 심부름 논쟁’이라고도 한다. 발단은 지난주 백승우 통진당 전 사무부총장이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유시민 전 공동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대표단 회의 중에도 커피 심부름을 통해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는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도 했다.
백씨는 이날 “유 전 대표가 ‘통진당이 국민에게 해로운 당이 되었다’는 등 파괴적 언동을 했다”고 비판했고,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아메리카노 심부름 건이었다. 이게 아무래도 의식 과잉이며 논리 비약이었다. 먼저 드는 생각은 진보, 보수를 떠나 그만한 ‘일탈’도 허용 못하느냐는 것이다. 유 전 대표가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 대로다. 커피는 대중적인 음료가 된 지 오래다. 거리엔 몇 집 건너 커피점이다. 당장 “커피믹스 타서 먹으면 진보고 아메리카노 먹으면 착취하는 거냐”란 반응들이 나왔다.
맛있어 보이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 커피. 통진당 당 간부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아메리카노 커피 논란이 벌어졌다. 갑론을박이 나왔지만 진짜 커피맛을 발견한 사람들에겐 무의미한 논쟁인 듯 하다.
아메리카노 마시는 걸 친미, 반민중적인 행태와 연결지으려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 같다. 아메리카노는 이름이 그럴 뿐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어 연하게 마시는 커피다. 그런 걸 위선이라고 한다면 진보는 숫제 미숫가루를 즐겨 마셔야 할 거다. 백씨는 이런 비판이 나오자 “(유·심 두 사람이) 권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임을 지적한 것”이라며 비서의 커피 심부름을 문제삼았지만 그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마음만 통하면 그깟 커피 배달이 무에 대수겠는가.
이번 논쟁을 두고 통진당 당권파에 온존한 옛날 운동권식 경직된 논리, 사고를 다시 거론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1980~90년대 대학 운동권 일부에서는 커피나 콜라, 햄버거 따위를 미제의 음식이라며 기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이념적인 것을 떠나 때아닌 이번 논란에서 좀 가벼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나 한다. 통진당 안에서 지펴진 커피 논쟁은 역설적으로 커피가 ‘대세’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울러 전투적 논리에 길든 사람들에게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듣는 여유가 필요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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