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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사라지는 재래시장들

재래(在來)가 붙는 말은 왠지 서글프다.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온 것’이란 게 이미 신식, 첨단에 밀려날 운명임을 감추고 있기 때문인가. 시골 재래식 화장실처럼 재래는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재래란 말은 대개 케케묵고 비능률적이고 불편한 것에 붙는다. 재래종, 재래식 부엌, 재래식 가옥, 재래식 영농법….

재래시장도 그렇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나고 급기야 사라지고 있다. 지난주 경향신문은 이달 말 문을 닫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시장 르포를 실었다. 1968년 문을 열어 44년 된 시장이지만 왁자지껄하던 옛날 분위기는 간데없다. 남은 30여개 가게 주인들이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나” 한숨 짓고 있다. 이런 폐업의 운명은 이곳만이 아니다. 전국 재래시장은 2003년 1695곳에서 2010년 1527곳으로 줄었다. 기업형 슈퍼마켓은 234개에서 866개로 늘었다. 이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어째선가. 김윤희 대림시장 상인회장은 말한다. “재래시장의 ‘없는’ 사람들이 대형마트와 경쟁해서 버텨낼 수 없는 현실이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 아니라 ‘돈’과부적인 것이다.

 

 

여기저기 ‘폐업·처분’ 이달 말 문을 닫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시장의 한 신발가게에 16일 ‘완전폐업’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김창길 기자



하지만 둘러보면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설가 조경란도 대단한 재래시장 예찬가다. 작업실도 서울 봉천동 시장 근처에 있다. 작가로서의 영감도 시장 골목을 걸으며 얻는다. 그는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함과 활기를 글에 담는다”며 “시장이 없었다면 내가 소설가가 됐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다. 재래시장의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걸까.

시장마다 전문 품목 등 나름의 특색이 있지만 한결같은 것은 푸근함, 정겨움이다. 그곳엔 상인과 손님들이 나누는 구수한 입담과 걸쭉한 수작이 있다. 정과 생명력, 사람냄새가 넘친다. 시장 풍경은 아련한 추억의 창고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재래시장을 생활 속 타임머신이라고 했다. 그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재래시장이 떠나버린 자리는 필경 첨단과 디지털과 SNS가 채우겠지만, 우린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릴 거다. 가까운 혈육을 먼 곳으로 보냈을 때처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기보다는 지금 뭔가 행동하는 게 낫다. 그 첫걸음을 생활 속 실천으로, ‘마트 대신 시장 가기’로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