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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자유·민주보다 더 중요한 것

자유, 민주는 고귀한 가치다. 인간 삶에서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묻는 것은 부질없다. 자유 없는 민주 없고 민주 없는 자유도 성립 불가다. 그런데 현실에서 두 가치가 충돌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개정된 역사교과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민주주의란 표현을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사실이 드러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오른쪽)과 서상기 의원이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 지난 19일 박 의원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은 북한에 가라”는 발언으로 국감이 파행 중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 경향신문 DB
 

역사교육과정 고시는 중·고교생들이 내년부터 배울 새 역사교과서의 서술지침이 된다.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그 개편은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야 하며 함부로 고쳐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국사편찬위 산하 역사교육과정개발 정책연구위원회
, 역사교육과정개발 추진위원회, 사회과교육과정 심의위원회 등 비슷하게 들리지만 역할이 다른 기구들로부터 2중 3중의 논의와 자문을 거쳐 고시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교과부 장관이 고시할 때 느닷없이 민주주의가 빠지고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갔다.

연구진이 제출한 최종안은 가령 “4·19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민주주의의 발전을 설명한다”로 돼 있던 부분이 “1960년대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장과정을 이해한다”로 바뀌어 발표됐다.
교과부는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현대사학회란 곳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으며 최종 고시권한은 장관에게 있으므로 연구진에게 알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정은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뤄졌으며,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쓰이고 있으므로 수정 근거는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앞의 위원들은 밀실에서 이뤄진 논의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고 반발해 비판성명을 내거나 여럿이 사퇴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 논란을 처음 접한 필자의 느낌은 의아함이었다. 그 의도가 궁금했다. 왜 잘 있는 민주주의에 자유를 갖다 붙이려 안달하는가. 무슨 필연성이 있는가.
교과부는 헌법에 근거가 있다고 했다. 찾아보니 헌법 전문과 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문구가 두 번 나왔다. 그러나 국가이념을 규정하는 의미로서의 ‘자유민주주의’란 말은 단 한 차례도 안 나온다. 그 밖에는 죄다 민주, 민주적, 민주주의, 민주화란 표현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민주공화국 앞에 자유란 말은 없다. 따라서 헌법에서 근거를 찾으려는 것은 억지라고 봐야 한다.
한데 조선일보 9월22일자 ‘자유민주주의 가르치면 교육혼란 온다는 궤변’이란 사설은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헌법 조문에도 없는 ‘주의’란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어 “오늘의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바탕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뒤 안 가리고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옹호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낳은 착오일 것이다. 

이런 것보다는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의 일갈이 궁금증을 푸는 데 유용했다. 그는 국회 국감장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의원 하라”고 쏴붙였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정부의 뒤늦은 표현 변경에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한 공격적 반응이었다. 그의 발언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민주주의란 말은 소나 개나, 아무나 써먹는 말이다. 북한도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참칭하지 않나. 이 참에 자유민주주의를 우리의 정체성으로 확실히 하자.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말하려는가.’

그러나 난점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다고 해서 진정 자유주의자면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게 결코 아니란 사실이다. TV 정치토론 도중 주먹다짐을 벌이는 등 기행을 일삼는 저 러시아의 극우주의 정치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끄는 정당의 이름은 자유민주당이다. 그렇다고 이 당이 자유와 민주의 가치에 충실한 건 아니다. 이름이나 구호가 실질을 보장하진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실용, 중도, 친서민, 법치, 공정사회 등 숱한 구호는 어떻게 실천되고 있나.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정립된 제도이자 가치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되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불렀다가는 졸지에 불온으로 몰릴 것 같은 상황이 왔다. 무슨 구호든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신뢰를 깎는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멀쩡한 민주주의라도 그것만으론 못 미더우므로 자유를 붙여 보완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자유를 붙이는 방식이 이토록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이라는 게 낯설고 당혹스럽다. 그러므로 나의 자유정신은 거부한다. 민주주의에 자유란 수식어를 강요당하는 부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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