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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조·중·동’ 효과

며칠 전 대법원의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판결에 이은 ‘소동’은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의 식지 않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대법원은 명예훼손 등 혐의가 걸린 형사 상고심에선 무죄를 확정했고, 정정·반론보도 청구를 따진 민사에서도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누가 보아도 「PD수첩」 제작진의 승리였다. 보도 책임자였던 조능희 PD는 “처음부터 유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비열한 정치사건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중·동은 승복하지 않았다. 중앙은 ‘MBC 광우병 허위보도 사과해야’란 사설에서 국민을 근거없는 광우병 공포에 떨게 했다며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아는 ‘MBC 광우병 PD수첩 부끄러운 줄 알라’란 사설을 썼다. 
 

MBC 경영진은 즉각 반응했다. MBC는 엊그제 9시 「뉴스데스크」 방영 직전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광우병 보도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고 판시해 진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책임있는 언론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 몇 개 신문에 사과문도 실었다. 
그러자 이번엔 MBC 노조가 크게 반발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보도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고 판시했다는 구절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거짓말”이라고 지적하고 “회사가 판결의 취지를 무시하고 정부·여당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분노했다.
장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사과문은 그동안 「PD수첩」을 음해해 온 수구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며 “언론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중·동이 이런 식의 억지 논리를 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가령 무상급식 주민투표 후 조선은 ‘주민투표 이후 복지 포퓰리즘 누가 견제하나’, 동아는 ‘무상 남발의 국가 재앙만은 막아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어디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거나 시민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태도는 없었다. 되레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는 단계적 무상급식안 지지가 전면적 무상급식안 지지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여당 대표 입에서 “오세훈 시장이 사실상 승리했다”는 궤변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깊이 천착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신문들의 가공할 만한 영향력이다. 김재철 MBC 사장의 조·중·동 열독 정도는 알 수 없으나 「PD수첩」에 대한 그의 평소 부정적인 생각이 조·중·동 논조의 영향을 입은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본다. 또 그것이 이 뜬금없는 사과문의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논리 없는 강변도 이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면 진실처럼 여겨진다. 여론조작의 귀재 괴벨스가 그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던가. 

조·중·동이 사(詐)논리를 구사하며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마주보고 열심히 맞장구쳐주는 상대방이 있기에 가능하다. 나는 이것을 거울효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한 일간지가 촛불시위 2주년을 맞아 집중 기획을 했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이 기획한 광우병 촛불 2년 특집을 두고 한 말이었다. 문제는 기사의 내용이었다. 조선은 촛불집회를 일부의 선전·왜곡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폄하했고, 이를 위해 전문가 인터뷰를 했다.
그때 인터뷰를 한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나중에 보니) ‘언제 광우병 괴담 맞다고 했나’란 제하의 기사가 내 말을 부분적으로 발췌, 짜깁기해 만든 창작물이었다”고 말했다. 우 교수가 항의하자 조선은 “분명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우긴 모양이다. 인터뷰 당사자가 자기 말의 컨텍스트, 의도가 왜곡됐다고 해명해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영향력 있는 신문이 진실을 왜곡할 때 미치는 폐해는 전방위적이다. 덮어놓고 좌익, 빨갱이를 외치는 ‘가스통 노인들’도 피해자다. 조선이 엊그제 쓴 제주 해군기지 사설에 댓글을 달아 반대자를 ‘종북분자’ ‘매국노단체’라고 비난한 사람들도 극우병, 색깔병의 희생자에 가깝다. 

이 조·중·동이 사업을 확장해 종합편성채널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이제 이들의 사논리가 암처럼 방송으로 전이·증식될 것이다. 특히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법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직접 광고영업에 나서게 되면 언론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폐해를 끼칠 것 같다.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수는 미디어황제 루퍼트 머독 소유 신문의 불법도청 파문 이후 “머독이 영국인들의 공공생활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며 그의 시장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고 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도 조·중·동의 영향력에 정비례하는 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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