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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과잉 추모 논란

영국 록그룹 퀸의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싱글 앨범이 발표된 것은 1991년 10월이었다. 그로부터 6주 뒤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 이 록스타의 마지막 노래는 파란 많은 삶과 임박한 죽음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머큐리는 죽기 전날에야 에이즈 투병 사실을 밝혔지만 언론은 80년대 후반 이후 급속히 악화한 그의 건강을 두고 수많은 추측을 내놓았다. 그 점에서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이에 대한 머큐리의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머큐리가 죽은 후 이 노래는 영국 차트에 다시 올라 16위를 기록했고 미국 차트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말의 역사는 이 노래보다 훨씬 길다. 언제부턴지 쇼 비즈니스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가령 주연의 다리가 부러져도,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해 쇼는 올려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이 통용됐다. 영국 극작가 겸 배우 노엘 코워드가 이미 1950년대 초 ‘왜 쇼는 계속돼야 하나?’란 곡을 써 이 말에 의문을 제기한 것만 봐도 그 역사가 짧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가족 상 같은 슬픔을 당하고도 무대에 올라 관객을 웃겨야 하는 희극배우의 사연을 듣는다. 이와 반대 상황도 벌어진다. 사회적 불행 때문에 쇼가 중지되는 경우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많은 TV 오락 프로그램들이 결방되고 있다. KBS의 <개그콘서트>가 5주째 나가지 못했고 SBS의 <인기가요>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추모 분위기에 따른 비정상적 방송편성이 한달째 계속되면서 좀 심하지 않으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추모는 우러나와서 하는 건데 강요하는 것 같다, 도리어 역효과다. 그런 생각이다. 이에 대해 “애도 기간 그것도 못 참나”하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한 생각은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럴 땐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당장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사회에선 어떻게 하나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중국은 21일 칭하이성 지진 희생자 추모일에 모든 방송 드라마와 오락 프로를 중단하고 추모특집을 내보냈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 방송들도 오락 프로그램을 취소하며 추모 분위기를 이끌었다. 단 이 편성은 사흘 동안만 지속됐고 9월15일부터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한 영화사 회장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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