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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떼법의 조건

벌써 2년 몇 개월 전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2008년 신년사에서 “대한민국 선진화를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자”면서 “국가도, 국민도,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며 ‘법치’를 강조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떼법’을 말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이후 그가 틈만 나면 강조한 게 법치였고 개탄한 게 떼법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떼법 청산’ 의지는 국정 곳곳에 반영됐다. 지난해 초 6명이 화마에 희생된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는 대통령의 ‘지침’을 금과옥조로 떠받든 경찰 지도부의 무리한 작전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떼법 근절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네이버 신조어 사전엔 이 말이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주장 또는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불법시위를 하는 행위”로 올라왔다. 검찰은 일명 ‘떼법지수’로 불리는 법질서 확립지수를 개발해 해마다 발표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떼법은 법치를 무력화하는 행동을 엄단하기 위한 용어로 정착했다. 물론 그 대상은 불법 파업이나 시위 등을 일삼는다는 이른바 민초임이 엄연했다.

하지만 이 떼법의 개념을 대폭 확장해야 할 것 같다. 지난주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교조 명단 공개를 강행한 조전혁 의원에게 집단 동조하고 나선 일 때문이다. 여러 매체들이 이 투사들의 집단행동을 떼법으로 규정했다. 일단 말이 재미있다. 법 만드는 의원들이 떼법이라니, 절묘한 패러독스 아닌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영락없이 떼법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 같다. 우선 법 무시, 생떼, 떼거리란 삼박자가 맞는다. 뉴라이트 이론가인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올 초 이런 소견을 밝힌 적이 있다. 즉 “떼법 문화 불식을 위한 기본은 법질서 확립”이라는 것이다. 경청해야 할 것은 다음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법을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해석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는데 우선 법과 권위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이유를 “한 판사의 편향된 판결 탓”으로 돌리는 것도 ‘아전인수’란 떼법의 조건에 들어맞는다. 참고로 지난해 산업정책연구원이 조사한 한국의 법질서 경쟁력은 66개국 가운데 36위였는데 부문별로는 시민 22위, 정부 35위, 정치인 49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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