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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브라운백미팅’하면 교육정책이 잘 나옵니까?

‘갈색봉지 회의’라고 하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하지만 ‘브라운백 미팅’이라고 하면 더러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정책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른바 ‘교육정책 브라운백 미팅’이란 것을 매월 열기로 했다. 어제 첫 ‘미팅’이 교과부 차관과 일선 학교 교육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주제는 ‘수석교사 제도 정착방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회의 내용보다는 브라운백 미팅이란 생소한 이름이다. 알아 보니 브라운백은 미국 햄버거 가게 같은 데서 먹을 것을 담아 주는 누런 종이봉지로, 브라운백 미팅은 간단한 점심을 곁들인 자유로운 토론 모임이란 뜻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필자의 무지다. 몇 년 전부터 브라운백 미팅은 공무원 사회 등에서 많이 써온 말이고 따라서 낯선 이름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교과부의 무신경이다. 우리말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부 기관이 정례회의에 굳이 유래를 알아야 뜻이 통할 외국어 이름을 붙여야 하나.
근래 로드맵, 클러스터, 허브 등 정부·공공기관의 영어 사용이 폭주하고 있으나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15% 정도라는 조사도 있다. 

외국어가 남발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성의와 편의주의, 영어 우월주의, 세계화가 뒤섞여 있다. 영어를 적절한 우리말로 바꾸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영어가 필수인 세계화 시대에 영어 좀 섞어 쓰면 안 되나. 더욱이 어릴 때부터 영어몰입교육을 강요하는 세태다. 이토록 영어를 집요하게 숭배하는 사회에서 ‘브라운백 미팅’의 출현은 어쩌면 필연이다. 교과부마저 우리말을 하찮게 여긴다고 비판하기가 차라리 객쩍다. 

그럼에도 또 한 번 말해야겠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말이 생각과 다르게 나온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과 생각은 다른 게 아니다. 둘은 사실상 하나다. 생각이 난삽하면 말이 어지러워지고 반대로 말을 정리하면 생각이 차분해진다.
<혼불>을 쓴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다. 우리말 사랑은 한글날에나 꺼내는 연례행사가 아니다. 관청부터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고 우리말을 갈고 닦아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법률 용어로 ‘홈리스’를 쓰려다 부랑인·노숙인으로 바꾼 선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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