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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치킨게임

<이유없는 반항>은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이 24년의 짧은 생애 동안 출연한 세 편의 영화 중 두번째다. 이 영화에선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게임이 나온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이른바 치킨게임이다. 제임스 딘과 사랑의 라이벌인 버즈는 밤에 해안 절벽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게임을 벌인다. 담력을 겨룬 것이다. 제임스 딘은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지만 버즈는 벼랑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이 영화로 치킨게임이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치킨은 겁쟁이란 뜻이다. 게임에서 져 또래들 사이에서 치킨으로 낙인찍혀 버리면 사는 게 괴롭다. 하지만 승자라고 해서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버즈처럼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유없는 반항>의 치킨게임은 변형된 모습이다. 원래는 두 경쟁자가 마주보고 차를 몰다가 핸들을 먼저 꺾는 자가 패자, 즉 치킨이 된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두 사람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버티면 양쪽 공히 자멸하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치킨게임 이론은 국제정치 분석에도 응용된다. 대립 중인 두 나라가 있어 위협이란 ‘비둘기파’ 수단 또는 물리적 공격이란 ‘매파’ 수단을 쓸 수 있다고 하자. 두 나라 모두 매파 전략을 쓴다면 한 쪽이 다치고 다른 쪽이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한 쪽만 매파 전략을 채택한다면 비둘기파에 패배를 안길 거다. 두 쪽 모두 비둘기파가 되면 무승부가 이뤄져 양측은 매파가 비둘기파를 이겨 얻는 것보단 적은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다. 1950~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무기 경쟁도 치킨게임으로 설명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두 나라가 벼랑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며 치킨게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개인간이나 국제정치에서나 치킨게임의 주요 동력은 자존심과 모욕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소년들의 치킨게임에서 위험에 처하는 건 참가자들의 생명뿐이다. 반면 국가간에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목숨을 걸어야 할 사람은 고위 정치인뿐 아니라 수백 수천만 국민이 된다.

작금 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남과 북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인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북문제를 치킨게임으로 단순화하는 게 적절한지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어쨌든 이 이론에 따른다면 “속된 말로 잃을 것이 없는 북한이 절대로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양무진 교수(북한대학원대)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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