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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진보의 길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했다. “복지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겠다는 저의 꿈을 눈물을 머금고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는 말과 함께. 그의 사퇴는 다시금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정말 이 땅에서 진보정당의 길을 간다는 건 어려운 일인가. 외로운 가시밭길인가. 이 사회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 키워낼 수 없는가.

2008년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아쉽게 패하고 정당투표에서도 비례대표 분배 기준인 3%에서 0.06% 부족한 2.94%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진보정당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선거판도가 더욱 비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물론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었다. 워낙 오른쪽으로 치우친 신자유주의 토건정권이 들어서니 정치판의 전선이 어지러워졌다.

그 전까지 사회의 정치 이념갈등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 양상으로 진화한 듯하던 것이 단숨에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 구도로 후퇴했다. 여기엔 미디어법이나 4대강 사업 강행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례가 있다. 천안함 사건을 이용한 안보논리 확산도 전형적 과거 회귀다. 이런 신종 독재가 위세를 떨치면서 그만큼 민주적 가치의 방어가 절박해졌다.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 등 이제는 더 이상 외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여겼던 ‘철 지난’ 가치들이 당대의 현안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 와중에 유탄을 맞은 것이 진보정당들이라고 본다. 복지, 교육, 인권, 노동 등 생활 속 진보적 가치의 각론을 놓고 싸워야 하는 마당에 사회는 1980년대로 퇴행해 버렸다. 심 후보가 사퇴의 변에서 밝힌 대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단순한 반대를 넘어 이명박 정권을 질적으로 극복하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세우기 위해” 싸워 왔으나 “국민의 표심은 이명박 정권 심판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진보정치 발전과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국민적 염원에 작은 밑거름으로 쓰이길 바란다”며 사퇴를 결단한 이유다.

정말로 진보는 외로운 것인가. 며칠 전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한 교수·연구자 107명의 글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선언은 “묻지마 반MB의 틀 속에서 진보는 배제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렇게 뜻을 모으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것, 진보는 미래의 진보를 믿는 것임을 생각하면 결코 비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