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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9·11과 천안함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란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예견했든 안했든 막상 이런 결론이 도출되니 많은 사람들이 황망(慌忙)한 심정에 빠지고 있다. 이럴 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이나 상황을 찾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든 반면교사(反面敎師)든 자기한테 참고가 되리란 생각 때문일까.

9년 전 미국이 겪은 9·11테러를 오늘 돌아보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9·11은 미국 본토가 사실상 처음으로 공격당한,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중대한이란 표현 정도론 성에 안차는 미증유(未曾有)의 재난이었다.

9·11과 천안함 사이엔 닮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우선 사건을 겪은 두 나라 국민들의 심정이 비슷하다. 충격과 공포, 황망함이 그것이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증오했다. 우리는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르고 있다.
여러 가지로 기막히는 사건이란 공통점도 있다. 9·11은 민항기를 납치해 자본주의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한 전무후무한 테러였다. 어떻게 민항기들이 항로를 이탈해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을 강타할 수 있었는지, 방공망이 허망하게 뚫렸는지 지금도 수수께끼다. 천안함 사건도 그 의외성에선 뒤지지 않는다. 북한 잠수정이 어떻게 감히 감시망을 뚫고 우리 해역으로 들어와 어뢰를 날리고 군함을 두 동강내고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나. 군은 뭘 했나. 방어태세가 그 정돈가. 의문은 이어진다. 김정일은, 북한 군부는 어떤 실익을 노리고 이런 모험을 감행했을까. 왜 우리 군은 처음부터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는가.

9·11과 천안함의 결정적 차이는 테러리즘 여하다. 테러는 비정부적 주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저지르는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다. 9·11이 그 전형이라면 군함과 군인을 겨냥한 천안함 사건은 이와 정반대 성격이다. 그 점에서 이 사건은 테러가 아니고 그렇다고 전투도 아니다.

미국은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2003년엔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은닉했고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둘 다 사실 무근이었다. 그래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응징론과 애국주의에 기대 시작한 전쟁의 관성이라고나 해야 할까. 2006년 9·11테러를 다룬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음모론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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