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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민심’, 말만 말고 읽어라!

‘민심’은 정치판에서 뻔질나게 쓰이는 말 중 하나다. 특히 선거 때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어제 새벽 한나라당 대변인은 “민심을 읽어내지 못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한표 한표에 담긴 민심을 깊이 헤아리고 마음에 새겨 앞으로…”라고도 했다. ‘…’ 이하는 안 들어도 된다. 예외없이 ‘뼈를 깎는…’ 식의 상투적 다짐이 이어지니까. 민주당 회의에서도 민심이 동원됐다. “MB정부에서 민심이 떠났다” “민심을 받들 것을 요구한다” 등.

선거에서 민심을 얻고 잃는다는 것은 사활적 의미다. 게다가 우리에겐 “민심은 천심”이란 속담이 있을 정도다. 이 생각은 어떤 종교적 신념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동양적 문화전통과도 통한다. 
영어에도 민심에 해당하는 말, 가령 ‘퍼블릭 센티먼트’ 같은 단어가 있지만 그걸 무슨 하늘의 뜻과 연결짓는 일은 없다. 따라서 민심이란 말이 풍기는 특별한 아우라는 퍼블릭 센티먼트란 말이 흉내낼 수 없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도 지나치게 남용하면 본뜻을 잃어버리고 폐해가 생긴다. 첫째, 살펴 보면 민심이란 말은 정작 국민이 아니라 민심을 조종하기를 원하는 자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일종의 주객전도다. 평소엔 민심이란 것에 별 신경 안 쓰다가 선거 때만 되면 민심을 받드는 화신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민심의 주체를 냉소하게 만든다. 

둘째, 여론 조작을 해 놓고 이것이 민심이라고 우기는 일도 벌어진다.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처음엔 부정하고 나중엔 의심하고 결국은 믿게 된다”는 게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유명한 선동정치 철학이었다. 
이 정권이 몇 개 신문과 유착하고 방송을 장악해가며 벌이는 행태가 딱 그런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의혹 제기는 친북 이적행위라며 융단폭격을 하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마구 벌이면서 ‘민심 운운’이라니. 역풍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셋째, 민심 남용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서울시장 선거를 보라. 선거 전 모든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크게 앞섰지만 개표를 해 보니 초박빙 접전이었다.
결국 강남 3개구가 똘똘 뭉쳐 던진 몰표가 오 후보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여론조사는 왜 민심과 어긋났을까. 서울의 민심을 비틀어버린 강남의 민심은 진짜 민심인가, 아닌가. 이런 문제들로부터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민심은 사기성이 있다. 입버릇처럼 가볍게 들먹이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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