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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돈봉투

영화 <선생 김봉두(2003)>는 ‘봉투’를 밝히다 전교생이 달랑 5명뿐인 강원도 오지 분교로 쫓겨 간 불량 선생 김봉두의 개과천선(改過遷善) 얘기다. 촌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봉두는 자기 이름이 차라리 ‘김봉투’였으면 하는 인간형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는 시골 학교 아이들에게까지 촌지 봉투를 돌리며 이렇게 이른다. “중요한 건 편지지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내용물을 담고 있는 그 봉투예요.”

교사와 돈봉투. 지양돼야 하면서 지향되기도 하는 딜레마적 관계다. 따라서 영화는 과장된 현실풍자이면서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펼쳐지는 실제상황일 수도 있다.
엊그제 실제상황 쪽에 무게를 실어 주는 일이 발생했다. 전남도 교육청의 이른바 ‘돈봉투 사건’이다. 사건은 장만채 교육감 당선자가 “도 교육청 간부 몇 명이 내게 축하금 명목으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돈봉투를 건네려 해 돌려보냈다”고 공개함으로써 불거졌다.

장 당선자는 진보진영 교육감이다. ‘교육청 내부에서 진보 교육감에게까지…’란 탄식을 누그러뜨리고 좀 살펴보자. 첫째, 이 사건은 엄밀하게는 사건이라고 부르기가 적절치 않다. 한 직원에 따르면 예전부터 새로 오는 교육감에게 간부들이 축하금을 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돈봉투 전달은 무슨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며 관행이었다. 일부 간부들이 교사-교장-교육청이란 먹이사슬 구조에서 확립된 관행에 따라 무신경하게 처신했다가 문제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이번 일은 교육계의 고질적 촌지수수 관행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재확인시켰다. 아울러 교육현장에서 대대적인 ‘돈봉투와의 전쟁’이 필요함을 다시 일깨웠다. 우리 사회에선 걸핏하면 무엇과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나서지만 효과는 별로다. 사회 전반의 촌지, 뇌물 관행은 하나의 문화 수준으로 정착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뇌물 혐의로 구속된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은 얼마 전 법정에서 “부하한테 받은 100만원은 뇌물이 아니라 명절을 잘 쇠란 뜻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학교 촌지 근절, 참교육을 기치로 출범한 지 2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역부족인 듯하다. 전사회 역량이 총동원돼 학교현장, 교육계에서만이라도 ‘돈봉투와의 전쟁’이 지속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새로운 세대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제안한다. 지금은 전교조 명단 공개 같은 것으로 헛 힘 쏟을 때가 아니다. 교육계의 돈봉투 추방에 발벗고 나서는 게 훨씬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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