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국민, 비국민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이 있다는 의견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격렬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국민과 비(非)국민’을 가르는 이분법의 재등장이다. 정운찬 총리는 “애국심이 있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종북(從北)적 행태라고 비난하고 “이런 사람들을 국민이라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몇 신문들은 정 총리의 ‘어느 나라 국민인가’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이들의 ‘이적행위’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한 사회 구성원을 국민·비국민, 애국·비애국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적 발상은 기실 낯설지 않다. 지방선거 때 정몽준 한나라당 당시 대표는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를 두고 “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국민의 자격을 따지려 드는 버릇이 자주 발동하는 데는 나름의 연원이 있다. 일제 때 국민, 곧 황국신민(皇國臣民)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비국민이라고 했다. 일제에 고분고분하면 국민, 침략정책에 반대하면 비국민으로 취급됐다.
해방 후 이런 식의 이분법은 좌파와 북한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재정립됐다. 국민이 되려면 투철한 반공의식을 가져야 했다. 자나깨나 불조심하듯 ‘빨갱이’를 살펴야 했다.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투옥·처형당하는 사건들도 빈발했다. 생각이 다르면 좌파 빨갱이로 몰아 매장시키는 풍토가 퍼졌다. 지금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걸핏하면 ‘좌빨’ 공방이 벌어진다.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를 놓고 국민·비국민을 따진다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기분이 나쁠 수 있고 반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안함 발표를 믿으면 진짜 국민이고, 의심하면 짝퉁 국민이라는 식의 편가르기 발상은 지나치다. 오랜 세월 겪어온 독재 반공국가의 상흔이라고는 해도 너무 후진적이다.

애국이란 가치는 소중하지만 애국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만 강요할 수 없다. 이것만이 국민의 길이며 애국이라고 외치고 그 구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꿈꾸는가. 그건 사이비 종교집단, 파시즘 사회 아닌가.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하극상  (0) 2010.06.24
[여적] 역사의 기록  (0) 2010.06.18
[여적] 돈봉투  (0) 2010.06.10
[여적] ‘민심’, 말만 말고 읽어라!  (0) 2010.06.03
[여적]소신공양  (0) 201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