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당초 전쟁 반대론자들의 예언대로 미군의 ‘수렁’이 돼버린 아프간에서 전쟁을 수행 중인 장수를 자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일을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해임한 이래 거의 60년 만에 일어난 것이라고 소개했다.
공교롭게 해임 사유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맥아더는 만주폭격과 중국연안 봉쇄 등 강경책을 주장한 것이 트루먼의 심기를 거슬러 경질됐다. 매크리스털도 아프간 전략과 관련해 오바마를 화나게 만들었다. ‘롤링 스톤’이란 격주간지에 “대통령이 아프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 기사엔 조 바이든 부통령과 제임스 존스 안보보좌관 등도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는 “우리 팀 안에서 논쟁은 환영이지만 분열은 용납 못 한다”고 경질 이유를 밝혔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많은 한국 언론이 ‘하극상(下剋上)’이란 표현을 쓴 대목이다. “군통수권자 비난은 하극상”이란 식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하극상에 해당하는 ‘mutiny’ ‘rebellion’이나 그와 비슷한 말도 쓰지 않았다. 생각건대 매크리스털의 행위가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을 무시하고 윗사람을 꺾고 오름’이란 뜻의 하극상에 해당한다고들 판단한 것 같다.
혹시 이것이 하극상이 희소한 한국적 현실의 역설적 반영이 아닌가 한다. 세계 최강 미군의 사성(四星)장군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씹었다’는 게 색다른 구경거리로 여겨진 것이다. 공무원, 군, 검찰에 관한 한 한국은 하극상이 없는 나라다.
물론 옛날엔 더러 하극상 사건도 벌어졌다. 가령 1999년 대전 법조비리 때 심재륜 대구고검장은 “검찰을 망친 장본인은 총장 등 수뇌부”라고 일갈했다가 옷을 벗었다.
지금은 어떤가.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어도 검찰 내부에선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도 안 난다. 검사동일체 원칙 때문인가. 벌써 오래 전 검찰청법의 상명하복 규정은 사라지고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개정됐다는데도 그렇다.
이렇게 하극상이 없어진 건 갈등요인이 사라진 덕분인가. 아닌 듯하다. 소신발언을 하다보면 하극상이 되기도 하는 법인데. 4대강, 세종시, 전작권 같은 문제를 놓고 하극상 좀 안 벌어지나…. 다들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복지부동 풍토에서 하극상이라니, 몽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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