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4 대 0으로 완파하자 흥미로운 해석이 나왔다.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된 이른바 ‘다문화팀’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독일 월드컵팀은 23명 중 11명이 외국계다. 독일 언론은 이들에게 다문화(Multicultural)의 머릿글자를 따 ‘M세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들은 뿌리도 다양하다.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폴란드, 외칠은 터키, 제롬 보아텡은 가나, 카카우는 브라질, 자미 케디라는 튀니지계다. 이들은 독일 전차군단의 이미지로부터 한층 진화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 해석을 받아들일 때 몇 가지 중첩적인 역설이 발견된다. 첫째,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브라질부터 202위 파푸아뉴기니까지, 지역예선부터 본선까지 자기 나라 명예를 위해 기를 쓰고 싸운다. 선수들은 적을 상대로 ‘축구전쟁’을 벌인다. 경기장엔 국가가 울려퍼지고 국기가 나부낀다. 국민은 열광하고 탄식한다. 이만하면 월드컵은 스포츠 국가주의 향연의 최고봉이다.
그런데 독일 다문화팀은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 때문에 독일 극우파들은 비독일적인 이 팀을 ‘잡탕팀’이라며 빨리 떨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이렇게 다문화팀 자체는 탈국가주의적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국가주의의 측면이 숨어 있기도 하다.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3대리그 선수들은 리그전에 힘을 쏟다 보니 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못 발휘했다. 반면 선수 전원이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독일은 월드컵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역사적인 역설이다. 일찍이 히틀러가 아리안 순혈주의를 주창한 나라에서 다문화팀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 또한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한다.
생각하건대 독일 축구팀의 사례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다문화주의가 순혈주의를 넘어섰다거나, 문화적 다원주의가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한 사례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네오나치즘은 지금도 곳곳에서 발호하고 있으며 민족분규도 심심치 않게 터지는 세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영포회 사건도 비틀어진 순혈주의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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