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다. 정권 초기부터 입길에 오르던 영포회, 그 생명력 참 질기다. 경북 포항·영일 출신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의 모임, 1980년 만들어져 회원은 100명쯤 된다는 영포회가 다시 유명해졌다. 총리실 민간 중소기업 사찰 사건의 중심적 인물들이 이 모임 회원으로 밝혀진 것이다.
내용은 살필수록 점입가경이다. 영포회원인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역시 영포회원인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활동상황을 직보했다. 총리, 장·차관 등 공식 보고라인은 완전히 무시됐다.
이 불법 민간인 사찰 탄압의 이유 또한 어이가 없다. 시중에서 ‘쥐코’로 유명한 동영상을 블로그에 링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기업인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한번 잘못 올렸다가 사업체 대표를 내놓고 일본으로 도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행위는 마치 나치 친위대를 연상케 했다. 치가 떨린다”는 게 그의 회고다. 그가 정확하게 짚었다. 그 물불 안 가리는 행태는 오로지 히틀러에게만 충성한 나치 친위조직을 닮았다.
세상엔 동창회, 향우회 말고도 무슨 무슨 회가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른다. 그것 자체야 나쁠 것 없다. 아무렴 순수한 애향심이나 애교심을 누가 나쁘다 하겠나. 그런 건 아무리 불태워도 뭐랄 사람 없다.
문제는 그것이 배타적 지역주의로 변질할 때 발생한다. 그것은 공직사회에서 사조직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당연히 공적 기강을 흐트러뜨린다. 조직 전체의 대의와 가치보다는 ‘우리가 남이가’ 정서가 중요해진다. 좁은 울타리의 기득권 수호와 확대가 사명이 된다. 그 결과가 이번 같은 사찰 사건으로 번졌다.
2008년 영포회 송년회의 장면들은 이 사건의 필연성을 암시한다. “이렇게 물 좋은 때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속된 말로 동해안에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강석호 의원).” “이 자리는 지도자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계통을 무시한 비선 보고가 충분히 예감되지 않나.
이런 지연·학연 챙기기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라고 없었던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다 마찬가지라며 정치판에서는 어디까지나 승자독식이 원칙이라고 주장한다면 사회의 진보도 정치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그런 생각들이 퍼져있는 한 이런 저급하고 촌스러운 지연·학연주의는 계속 번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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