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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정보기관 개혁하기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정보기관 개혁이 관심사다. 우리 국정원은 대선개입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비밀 전자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의 존재가 폭로된 것이 계기다. 그런데 정보기관의 개혁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 개혁문제를 놓고 극심한 진통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대로다. 어느 조직이든 개혁에 거부반응을 보이게 돼 있다. 당장 내부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하물며 정보기관이라면 더 강한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정보기관은 권력기관으로 인식된다. 스스로도 외부에서도 그렇다. 또 고급정보를 권력자에게 전달하는 업무 성격은 비밀주의를 체질화한다.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이며 국가안전보장 업무를 한다. 주요 직무는 국외.. 더보기
[여적] 호모스크립투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이다. 그건 본능 같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지혜 있는 사람)는 호모루덴스(유희인), 호모로퀜스(언어인)이자 ‘호모스크립투스’, 즉 기록하는 인간이다. 원시시대엔 동굴 암벽에 그림을 그렸고, 종이에 기록을 남겼다. 종이 자체가 기록에 대한 인간 욕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엔 사이버 공간이 주요 기록 장소다. 왜 기록하는가. ‘본능이니까’라고 답하면 순환논법이 된다.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속 시원한 답을 찾기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록을 하며 살지만, 왜 기록하는지에 대해선 선뜻 답이 안 나온다. 질문이 철학적이어선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변에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초점이 안 맞고 흔들렸다. 그러나 긴박.. 더보기
[여적] '추축국' 독일과 일본의 차이 과거 저지른 잘못에 사죄하는 독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브란트는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묵념했다.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에게 올린 진심어린 사죄였다. 훗날 이 돌발 행동에 대한 브란트의 설명도 유명하다. “나는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을 꿇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 지난달 29일 도쿄 한 우익단체의 강연장.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바이마르헌법 아래서 나치정권이 탄생했다면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헌법을 바꾼 독일 나치의 수법을.. 더보기
[여적] 독주 술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술에 ‘스피르트’란 게 있다. 알코올 원액, 주정(酒精)으로, 쉽게 말해 100% 알코올이다. 20년 전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을 때 이걸 처음 마셔봤다. 러시아 친구가 ‘안전하게 마시는’ 요령을 알려줬다. 먼저 숨을 크게 내쉰 뒤 단숨에 들이킨다. 곧바로 찬물을 마신다. 화상 방지용이란다. 그 다음엔 검은 빵, 이크라(철갑상어알) 같은 안주를 먹는다. 이런 극단적 독주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러시아의 대표 술은 보드카다. 러시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 “400리는 거리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고, 40도가 못되면 술이 아니다.” 속담에서처럼 러시아인은 독한 술을 즐기는데, 그게 보드카다. 40도면 위스키와 비슷하지만 러시아는 주법이 다르다. 50g 정도를.. 더보기
[여적] 내일은 비 긴 장마 속에 김소월의 시 ‘왕십리’가 떠오른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시의 계절은 여름 장마철이다. 시인이 구태여 밝히지 않았어도 ‘(비가)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거나,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란 구절이 그렇다. 하여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있는 왕십리’에서 우리는 시가 노래하는 이별의 정한에 공감한다. ‘한 닷새 왔으면 좋지’란 표현에 대해서는 엇갈린 해석도 나오나 보다. 하나는 “(이별 때문에 가슴 아픈데) 닷새 정도만 오면 됐지 왜 자꾸 오느냐”라는 거고, 다른 건 “기왕 올 거면 좍좍 닷새는 쏟아져라”란 뜻이라는 거다. 하지만 시인은 이 부분을 모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