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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밀실과 광장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울산공장 앞 송전탑에 오른 지 4일로 200일째를 맞았다. 지상 25m 높이에서 참 긴 시간을 버텼다. 가을에 올라간 게 칼바람 부는 겨울을 거쳐 봄이 되었으니까. 이런 농성 장기화는 누구도 예상 못했다. 최씨도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면 올라오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최씨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2평 남짓한 하늘 위’라고 표현했다. 그 사이 청와대 주인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뀌었다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내려올지 모르는 막막함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송전탑에 올라간 최병승씨(오른쪽)와 천의봉씨가 고공농성 200일을 .. 더보기
[여적] 구로공단의 추억 1967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공단, 구로공단은 국가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 주역은 우리의 어린 누이들이었다. 그들은 부모와 오빠·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봉제, 섬유, 가발 공장 등지에서 땀을 흘렸다. 1985년 말쯤 필자는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야근 중인 여성 노동자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소녀한테서 “2년 만기 1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다”는 말을 듣고 “100만원이라고요?”라고 되물었다가 무안해진 일이 기억난다. 구로공단은 노동자들이 치열한 삶을 꾸린 터전이었지만 대학생들의 의식화 현장이기도 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 공단에 미싱사로 취업해 동맹파업을 주도했다. 1978년 출간된 조세희의 에 나오는 ‘은강공단’도 구로공단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작가는 2004년 구로동에서 .. 더보기
[여적] 조하르 두다예프의 기억 보스턴 테러가 터진 후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조하르란 이름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차르나예프 형제 중 형 이름이 타멜란(26·사망), 동생이 조하르(19)다. 이 이름은 나를 체첸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1944~1996)의 기억으로 이끌었다. 구소련에서 체첸이 배출한 유일한 공군장성(소장)인 그는 소련이 붕괴하자 체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94년엔 러시아가 침공하자 처절한 민족해방 전쟁을 벌였다. 그는 사생관이 뚜렷한 지도자였다. 러시아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이따금씩 기자회견을 했다. 1995년 초 한 신문이 “기자를 가장한 러시아 비밀정보원의 접근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나의 생명은 정보원이나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담.. 더보기
[여적] 말의 개념 “그 사람 개념이 없다”고 하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 태도가 거슬린다는 뜻이다. 이런 특수한 용례도 있지만 어떤 사물과 현상의 개념을 올바르게 안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개와 고양이의 개념이나, 춥다와 덥다의 개념 같은 게 사람마다 헷갈린다면 세상은 정상적 소통을 포기해야 할 거다. 원시인들의 말에는 ‘추상(抽象)’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예를 들어 ‘걷다’란 일반적 개념의 동사 대신 ‘어슬렁어슬렁 걷다’ ‘허겁지겁 걷다’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에 따라 다른 동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밤하늘의 달도 최초에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처럼 별개의 명사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그러다 인간 사유와 추상능력이 발달하면서 추상성을 가진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어의 추상성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더보기
[여적] ‘티나’로 기억될 여인 엊그제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1976년 1월19일 대처 보수당 대표는 켄싱턴 시민회관에서 소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한다. “러시아는 세계 지배에 혈안이 돼 있으며 역사상 가장 강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고 있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여론의 밀물과 썰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총을 앞세우기 전에 모든 것들을 제시하는 반면, 그들은 버터를 내놓기 전에 총부터 내민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소련 국방부 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붉은 별)’는 대처를 ‘철의 여인(Iron Lady)’이라고 불렀다. 대처는 이 별명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버터’를 등장시킨 이 연설은 전년도에 보수당 최초 여성대표가 된 대처의 생활밀착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