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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을의 반란사

역사는 반란으로 점철돼 있다. 1198년 고려 무신정권 아래서 만적의 난이 일어났다. 최고실권자 최충헌의 사노 만적은 개성에서 노비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우리 노비들은 모진 매질 밑에서 일만 하란 법이 있는가.” 그러면서 주인들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면 자신들도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고 선동했다. 이것이 최초의 노비해방운동이랄 수 있는 만적의 난이다. 하지만 거사계획은 동료 노비의 밀고로 들통나 관련자는 모조리 처형되고 만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갑을관계 논란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말들이 여럿 생겨났다. 예컨대 갑의 횡포를 말하는 ‘갑질’, 을의 눈물이나 ‘을사(乙死)조약’ 같은 것이다. 그 가운데 ‘을의 반란’도 있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인 갑을관계에서 갑의 횡포에 더는 참지 못한 을이 들고 일어났다는 뜻이다. ‘을의 반란’ 사용은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패악적 언동을 피해 대리점주가 폭로한 것을 계기로 불붙었다.  

 

 회장 빠진 사과 남양유업 김웅 대표(오른쪽에서 네번째)와 임원들이 9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자리에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강윤중 기자

 


이런 약자의 저항을 ‘을의 반란’이라고 부르는 건 꽤 그럴 듯하다. 반란엔 5·16 같은 군사 쿠데타도 있지만 만적의 난, 홍경래의 난 같은 역사적 반란들이 먼저 떠오른다. 반란이란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켰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대로 모진 매질을 당하며 일만 해야 했던 만적이나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부정이 극에 달한 것에 절망한 홍경래가 그렇다.

따라서 영원한 을 신세였던 이번 대리점 피해자 등의 저항에 ‘반란’이란 말을 붙인 것은 적절해 보인다. 옛날 만적이 노비문서 소각을 간절히 원했다면 오늘의 대리점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갑 위주로만 돼 있는 갑을 간 ‘노예계약’의 개정을 바라는 것이다.

을의 반란에 동조한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어제 남양유업 측은 대국민사과를 통해 모든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잘못된 관행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고, 대리점과의 상생방안도 내놓았다. 그럼에도 사태는 진행형이다. 제도적 시스템 개선은 개별 회사의 노력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전근대적 갑을문화가 상존하는 한 어딘가에서 갑에게 당하는 을은 계속 나올 것이고 을의 눈물, 을의 반란도 그렇다. 법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 때문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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