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 하면 나이 좀 든 사람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만큼 이 세대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1968년 12월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될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학교에선 헌장을 달달 외우게 했다. 그래선지 다 잊어버린 것 같은 구절들이 지금도 녹음기 튼 것처럼 재생된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짐작하겠지만 국민교육헌장은 그 발상이 지극히 우파적,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이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헌장의 비민주적, 비교육적 내용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국민총화니, 총화단결이니 하는 구호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 했던 그 시절이기도 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가 며칠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증오 표현과 모욕행위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가 국민들에게 위안부에 대한 착취 문제를 교육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한다. 유엔 기구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도록 국민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 의식을 개조하라? 이것은 특히나 국민교육헌장 같은 ‘원체험’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굉장히 이색적이며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주문처럼 들린다.
일본유신회의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21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시모토 시장은 종군위안부는 군기 유지와 일본군 휴식을 위해 필요했다는 망언으로 이웃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또 주일 미군의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풍속업(윤락산업)을 이용하도록 권해 비난을 샀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어쩌다 이런 권고까지 하게 됐을까. 일본은 급속도로 우경화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인들의 망언과 왜곡이 용인할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가 강제동원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공언한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하고 사과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정면 부정이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했고, 니시무라 의원은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아직도 우글거린다”고 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오죽했으면 일본에 국민교육이라는 이례적 권고를 내놓기에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효과다. 만약 이런 유엔 권고가 국가적 수치임을 깨달아 반성할 줄 안다면 양식있는 사회다. 그런데 일본 정부에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은폐돼 가는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이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이건 인권과 인륜 같은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걸 극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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