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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독재의 상처

독재는 좀체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며칠 전 KBS가 매주 목요일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광장에 모이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을 소개했다. 말이 어머니지, 이젠 백발의 할머니들이다. 어머니들은 1970~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지거나 실종된 자식의 이름을 새긴 하얀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독재가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들은 ‘더러운 전쟁’ 중 실종된 자식들을 찾고 관련자들의 처벌이 끝날 때까지 이 집회를 “결코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죽거나 실종된 자식의 사진을 들고 목요집회에 참석한 아르헨티나 5월광장 어머니회 소속 어머니들



하지만 때로는 독재의 상처가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필리핀 총선에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83)가 높은 득표율로 남편의 고향 노르테주에서 하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딸 이미(58)도 노르테 주지사에 재선됐고 그의 사촌은 부지사가 됐다. 마르코스 정치 가문의 부활을 보는 듯하다. 이 여세를 몰아 상원의원인 ‘봉봉’ 마르코스 2세(55)가 2016년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이멜다                          마르코스 2세

 

 

그렇다면 마르코스가 저지른 수많은 전비(前非)는 어떻게 되나. 1965년부터 21년간 집권하면서 수십억달러를 빼돌리고 수천명을 투옥, 살해한 그의 혐의는 망각의 카펫에 덮여버리는 것 아닌가. 그럴 만도 한 것이 2016년 유권자의 3분의 2는 마르코스 축출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한다. 필리핀 상황은 우리 정치와 묘하게 겹치는 데가 있다. 만약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2세가 대통령이 된다면 독재자의 2세 대통령을 둔 한국의 경험이 재연되는 것이다.

이건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독재는 인간의 제도부터 잠재의식까지 상상을 넘는 영향을 미치며 그 상처는 넓고 깊다. 민주화를 통해 상처가 치유된 듯해도 그 흔적, 상흔은 오래 남는다. 스탈린 독재의 상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지금까지 자취를 남기고 있다. 러시아 민중의 독재에 대한 숙명적 용인과 권력자의 국민 생명 경시 사고구조가 그런 것이다.

민주화됐다고 하는 한국이 겪고 있는 혼란을 보라. 조금만 좌파적 발언을 해도 친북 반미 빨갱이로 규정해 버리려는 단세포적 사고구조, 국가보안법을 신주처럼 떠받드는 믿음 역시 반공을 국시로 했던 극우독재의 슬픈 상흔이다. 체질화된 ‘알아서 기기’ 풍토도 그런 것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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